어서와, 치쿤구니야는 처음이지?

- 죽다 살아난 이야기

by 한병철 Mikhail Khan

고요한 여름밤, 귓가에 맴도는 모기 한 마리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 작은 곤충이 생각지도 못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로 치쿤구니야(Chikungunya)열병이다. 이 낯선 이름의 질병은 1952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처음 발견됐다. 주로 이집트숲모기나 흰줄숲모기가 바이러스를 옮기며, 모기가 사람을 물어 흡혈하는 과정에서 모기 몸에 들어간 바이러스가 며칠간 복제된 후 침샘에 고여 있다가 다른 사람을 물 때 전파된다. 치쿤구니야 열병의 주요 증상은 급성 발열과 심각한 관절 통증이다.



이집트 숲모기


이 열병은 단순히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는 질환이 아니다. 극심한 고통과 함께 찾아와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치쿤구니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케냐에 장기 체류를 할 때, 치쿤구니야 열병을 앓아보았고, 그래서 이 열병의 증상과 심각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17년도까지 이 열병을 경험한 한국인은 약 15명 내외 였다고 하며, 나는 영광스럽게도 이 15명안에 들었던 것이다.


이제 그 기원부터 전파 방식, 증상과 대처 요령까지, 치쿤구니야 열병의 모든 것을 경험자의 입장에서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고자 한다.





치쿤구니야의 기원과 역사: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치쿤구니야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 유래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남부의 마콘데(Makonde) 부족 언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뼈가 휘는 병'이라는 뜻으로, 환자들이 심각한 관절통으로 인해 몸을 굽히고 다니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1952년,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댄 모잠비크 국경 지역에서 처음으로 이 질병이 공식적으로 발견되었는데, 당시에는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여겨졌지만, 이후 바이러스는 국경을 넘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서 산발적인 유행을 일으키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러다 2005년, 인도양의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에서 대규모 유행이 발생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수십만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는 치쿤구니야 바이러스가 이미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인 위협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후 유럽, 북미, 남미 등 거의 모든 대륙에서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고, 특히 2013년 카리브해에서 시작된 유행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휩쓸며 수백만 명의 환자를 만들어냈다. 이제 치쿤구니야는 특정 지역의 풍토병이 아닌, 전 세계가 함께 대처해야 할 공동의 과제가 되었다.





내가 경험한 치쿤구니야 열병


2017년에 나는 유네스코의 위촉을 받아 아프리카 케냐 마사이족에게 동양무술을 가르치는 엄청난(!) 사명을 띠고 케냐에 도착했다. 내가 갔던 마사이족 부락은 킬리만자로의 북쪽 산자락 아래여서 하루종일 킬리만자로의 하얀 봉우리를 바라 볼 수 있는 곳 이었다. 정확하게는 암보셀리 국립공원의 외곽 이었다.

암보셀리 국립공원은 TV에서 동물의왕국 방송을 할 때, 첫 시그널 장면에 코끼리와 킬리만자로가 함께 나오는 그 곳이다.



케냐 지도


내가 가르친 마사이족 청년들은 약 50-80여명 정도 였는데, 이 아이들 중에는 창으로 사자를 잡았던 ‘용사’들도 있었으며, 평소에도 하이에나와 멧돼지 정도는 동네 길냥이 정도로 취급하는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마사이족 남성들은 사자를 잡으면 ‘용사’로 인정하며, 용사가 된 청년은 부족의 아가씨를 선택할 수 있는 우선선택권이 주어진다. 그래서 또래 집단안에서 사자를 잡았다는 것은 커다란 훈장이며, 소개를 할 때도 ‘사자를 잡은 아무개~’로 주변에서 알려주곤 한다.


나는 그런 마사이족의 사부님이 되어, 32일간 집중적으로 무술을 가르치게 되었던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별도의 글에서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



암보셀리 지역 마사이족에 최초로 바벨 트레이닝과 기능성 운동을 전파하였다


32일간의 집중 교육이 끝나고, 유네스코측의 허락을 받아 귀국 날짜를 한달 이상 뒤로 연기하였다. 그 이유는 킬리만자로 등정과 탄자니아와 잔지바르 여행을 하기 위함이었다. 킬리만자로를 등정하고, 프레디머큐리의 고향인 잔지바르에서 일주일을 지냈고, 귀국을 위해 케냐 몸바사 항구로 이동했을 때부터 사달이 났다.

몸바사 항구는 인도양 서쪽에 있으며, 몹시 습하고 더운 곳이다. 낮기온은 40도 전후를 왕복하는데, 밤에도 3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대낮에 걸어다니면 땀이 줄줄 나는 곳이며, 해가 진 후에야 겨우 시내 활보가 편안해 진다.



6.5도의 기네스 맥주


몸바사는 사실 볼거리가 별로 없지만, 흥미로운 것은 아일랜드 기네스 맥주 공장이 있다는 것 이었다.

기네스는 1827년부터 아프리카에 맥주를 수출하며 시장을 개척해왔으며, 특히 케냐를 포함한 동아프리카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현지 생산을 통해 운송비를 절감하고, 신선한 제품을 빠르게 공급하며, 현지 입맛에 맞는 맥주를 개발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지 생산은 고용 창출과 같은 경제적 효과로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기네스는 1965년부터 케냐의 주요 주류 회사인 EABL(East African Breweries Limited)과 협력하여 ‘기네스 포린 엑스트라 스타우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는 아프리카 시장 확장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EABL을 통해 케냐와 동아프리카 지역에 맥주를 공급하고 있다.


케냐의 기네스 맥주는 특이하게도 알콜돗수가 6.5도 이다. 6.5도의 기네스맥주는 극히 드문 것이어서, 케냐가 아니면 마시기 어렵다. 몸바사의 현지인 바를 돌아다니며 기네스 맥주를 마시곤 했는데, 맥주를 많이 마신 후에 잠들면 모기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기 마련이다.


몸바사는 해가 지면 모기가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곳 이다. 호텔방에 모기향을 피워놓긴 했으나, 그래도 구름처럼 많은 모기떼를 모두 퇴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침이면 꽤 여러군데 물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몸바사에서 나이로비로 돌아온 이후에 일어났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나이로비로 돌아왔는데, 원래 계획은 나이로비에서 3-4일 쉬면서 체력을 보충하고 나이로비 다운타운에서 놀 계획이었다.


나이로비에 도착한 날 오후,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시내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미 몹시 피곤함을 느꼈다. 하도 입맛이 없어 호텔앞 스낵바에서 감자튀김과 콜라로 저녁을 때우고 호텔방에 돌아왔다. 두달이상 강행군을 했으니, 당연히 피곤하겠거니 하고 여겼을 뿐 이었다.


다음날 오전, 눈을 뜨고 보니 이미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에서는 고열이 났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침대 시트는 땀으로 흥건히 젖어, 마치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밤새 돌아간 에어콘 소리가 아스라이 윙윙 들렸을 뿐이다.


아침이니 응당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야 하는데, 도무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몸을 돌려 누울 수 조차 없었다. 무려 15분 이상 혼자 고생을 한 끝에, 겨우 몸을 옆으로 뒤집어 침대 밑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침대 아래 바닥에 떨어지긴 했는데, 전신의 관절 마디마디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정신은 있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한참 이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했다. 처음에는 전신 마비가 온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법을 잊어먹은 듯, 손을 움직이려 해도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 뿐 아니라 전신 관절과 근육은 움직이는 방법을 잊은 것 같았다.


전신 마비가 온 중풍환자나 식물인간이 이런 느낌일까? 20분쯤 노력한 끝에 어찌 어찌 겨우 침대를 붙잡고 일어설 수 있었다. 일어섰으나 계속 넘어지기 때문에 침대와 테이블, 벽에 기대어 기다시피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손잡이는 옆으로 돌리는 동그란 것 이었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으니 핸들을 돌릴 수 조차 없었다. 몸을 벽에 기댄채 두손으로 핸들을 눌러 잡고 한동안 승강이를 했더니 화장실 문이 삐걱하며 열렸다.

변기앞에 서 있을 힘도 없어, 변기위에 쓰러지듯 앉아 겨우 소변을 보고, 다시 아까 했던 고생을 역순으로 수행하며 30여분이 걸려서 침대로 돌아왔다. 화장실 다녀오는데에 40여분쯤 걸렸던 기억이 있다. 침대에 돌아오자 마자 다시 기절하여 의식을 잃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고열이 났고, 전신 관절이 아프고 힘이 없었다.


혼미한 의식속에서도 이렇게 있다가는 분명히 죽을 것 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것이 말로만 듣던 말라리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옷을 꿰어 입고 호텔 프론트까지 20여분이 걸려 기다시피 걸어갔다. 프론트 매니저에게 ‘내가 말라리아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니, 가까운 병원을 소개해주고 택시를 불러달라’라고 요청하였다.


매니저는 ‘가까운 병원은 케냐인 의사가 진료를 하는데 좀 믿기 어렵다. 거리는 조금 멀지만 인도인 의사가 있는 대형병원을 소개해 주겠다’ 라고 했고, 매니저의 부축을 받아 불러준 택시를 타고 30분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말라리아 의증으로 검사를 위해 피를 뽑았고, 2시간쯤 환자대기실에 쓰러져 누워 있다보니, 검사결과가 나왔다. 담당 의사는 인도인 이었는데, 나는 말라리아가 아니며 치쿤구니야 열병으로 보인다는 진단을 내렸다.


의사가 써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고, 약국 약사가 진단서를 보더니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검사결과와 진단서를 보니 당신은 말라리아가 아니네요. 치쿤구니야 열병은 현재까지는 정확한 약이 없습니다. 약이 없기 때문에 해열제와 진통제, 그밖에 몇가지 약을 처방하는 거지요. 약이 아주 독하니까 뭔가 음식도 먹는게 좋고, 이 약 안에는 소화제가 들어 있습니다. 잘 견뎌보세요’ 라고 말하였다.

약봉지를 들고 다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약이 독하니까 음식물을 꼭 섭취하라는 말이 기억났다.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그래서 전날 먹었던 호텔앞 감튀집에서 감자튀김과 콜라를 주문했다.


치쿤구니야 열병에 걸리면 인간은 입맛을 상실한다. 생수 조차도 써서 목구멍을 넘길 수가 없게 된다. 물이 소태처럼 쓰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감튀집에서 감자튀김에 케첩을 뿌리고 코카콜라를 마셨지만, 평소에는 달달한 케첩이 도무지 먹을 수 없었고, 코카콜라가 한약처럼 써서, 절반도 마시지 못하고 그냥 버려야 했다. 의사의 조언대로 살기위해 먹고 마셨지만, 케첩과 콜라가 한약 익모초보다도 훨씬 쓰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호텔방에 돌아와 약을 먹고 눕자 마자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3시간 정도 나들이 한 것 만으로도 체력을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날밤 고열에 들떠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였고, 역시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렴풋이 창밖이 밝아오자 눈을 떴지만,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어제보다는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 수월해 졌다는 것이 희망이었다. 어제 저녁에 병원 다녀오면서 사온 페트병에 든 생수와 환타, 과일이 몇 개 있었지만, 입맛이 써서 아무것도 목을 넘기기 어려웠다. 그렇게 하루를 침대위에서 보냈다. 그래도 저녁이 되니 열이 조금 떨어졌고, 방안에서는 걸어다닐 만 해 졌다.


치쿤구니아에 걸린지 3일차가 되니 시내 나들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고, 3일차 오후에는 기린 농장에도 가 볼 수 있었다.



다음날 오후는 나이로비 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 이었다. 4일차가 되니 열이 꽤 많이 내렸고, 등산용 스틱을 짚으면 겨우 걸을 수 있었다.


나이로비 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탔는데, 공항까지 가는 길이 내내 몽롱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준비해둔 아스피린을 여러알 입에 털어 넣었다. 고열이 나면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할 수 도 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는 방콕을 거쳐 서울로 오는 항공편 이었는데, 방콕 공항에서 8시간을 체류해야 했다. 평소 건강한 상태였다면, 공항에서 시내에 나가 맥주라도 한잔 하고 돌아올 수 있었겠지만, 그날은 그럴만한 사정이 아니었다.


공항 내부의 레스토랑과 식당에서 쉬면서 8시간을 지냈는데, 방콕 공항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망고 스티키 라이스’가 있었다. 찹쌀밥위에 망고를 슬라이스로 깔아 덮고, 그 위에 연유를 뿌린, 아주 달달한 디저트 이다.


평소에는 몹시 달다고 느낀 것 인데도, 이날은 전혀 달지 않았다. 망고와 연유에서 아무맛도 느낄 수 없었다. 이러다가 나중에 후유증이 남아서 맛을 못 느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다음날 국립중앙의료원에 전화를 걸었다. 치쿤구니야 열병이 어떤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고, 나로 인해서 한국에 전파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국립의료원의 담당자는 전후 사정을 자세하게 설명을 듣더니,


‘치쿤구니아는 한국내에서 전파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전파 매개체가 되는 이집트 숲모기가 한국에 서식하지 않기 때문이고, 겨울이 되면 모기가 거의 죽기 때문에 동계 시즌에 전파의 단절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마시고, 국립의료원에 내원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마 당신은 한국인으로써는 15번째쯤 치쿤구니야를 겪은 사람일 것 같다’는 말을 해 주어서, 매우 안심이 되었다.


그 후, 두어달 정도는 관절이 뻑뻑한 느낌이 있었고, 운동할 때 부담스러운 경험을 했다. 고강도의 스트레칭과 웨이트 훈련을 해서 관절과 근육은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지금도 치쿤구니야의 악몽은 잊혀지지 않는다.

이역만리 아프리카에서 조용히 혼자 죽으면, 내 시체가 한국까지 돌아오려면 며칠이나 걸릴까도 생각했고, 내 부모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어떻게 될까 싶었다.


평생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꼈던 3일간 이었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해 보지 못했는데, 치쿤구니야 열병은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되었다.


그런데 그 치쿤구니야 열병이 이제 중국 남부에서 창궐하고, 베이징까지 뚫렸다고 한다. 치쿤구니야의 매개체가 되는 모기가 북쪽까지 올라 왔다는 뜻 인데, 이제 이집트 숲모기가 한반도로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치쿤구니야 열병은 한번 걸렸던 사람은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안 걸린다고 하니, 아마도 나는 다시는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치쿤구니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체는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생성하게 되는데, 이 항체는 평생 지속되는 면역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열병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위협할 수 있게 되었고,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미리 알아두고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전파 방식의 이해: 모기가 옮기는 보이지 않는 위협


치쿤구니야 열병은 주로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가 다시 건강한 사람을 물면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두 종류의 모기가 가장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집트숲모기 (Aedes aegypti) :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모기는 치쿤구니야의 가장 주요한 매개체 중 하나이다. 낮에 활동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집 주변의 고인 물에서 번식한다.


흰줄숲모기 (Aedes albopictus) : ‘아시아 호랑이 모기’라고도 불리며, 아시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모기 역시 이집트숲모기처럼 낮에 주로 활동하며, 깨끗한 물뿐만 아니라 오염된 물에서도 서식하는 등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 두 모기의 서식지가 점차 확장되면서 치쿤구니야 바이러스의 전파 가능 지역도 넓어지고 있다. 특히 도시화와 지구 온난화는 모기의 번식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 치쿤구니야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다행히도, 치쿤구니야는 사람 간 직접 전파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혈액을 통해 전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혈이나 장기 이식 시에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임신 중인 산모가 감염될 경우, 출산 과정에서 신생아에게 바이러스가 전염될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한다.





치쿤구니야의 증상과 위험: 단순한 감기를 넘어선 고통


치쿤구니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보통 3일에서 7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난다. 초기 증상은 다른 바이러스성 질환과 유사하여 단순한 감기로 오인하기 쉽다. 하지만 그 고통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주요 증상은 다음과 같다.


갑작스러운 고열 : 39°C 이상의 고열이 갑자기 시작된다.

심한 관절통 : 손가락, 손목, 발목, 무릎 등 여러 관절에 극심한 통증이 발생한다. 이름의 유래가 된 '뼈가 휘는' 듯한 고통이 바로 이것이다.

근육통 및 두통 : 전신 근육에 통증을 느끼며, 심한 두통이 동반될 수 있다.

발진 : 증상 시작 후 며칠 이내에 몸통과 팔다리에 붉은 반점이나 발진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환자는 감염 후 일주일 이내에 고열과 근육통이 호전되지만, 문제는 만성 관절통이다. 일부 환자들은 수개월에서 심지어 수년 동안 관절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는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며,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특히 고위험군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어린 영유아, 65세 이상의 노인, 그리고 당뇨병, 고혈압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다. 뇌염이나 심근염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드물지만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예방과 대처 요령: 스스로를 지키는 현명한 방법


불행하게도 아직 치쿤구니야에 대한 효과적인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따라서 예방이 최선의 대책이다. 특히 모기 매개 질병이 유행하는 지역에 거주하거나 여행할 때는 다음과 같은 예방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모기 물림 방지

개인 보호 : 긴팔, 긴바지 등 노출을 최소화하는 옷을 착용한다. 옷은 밝은 색을 입는 것이 좋다.

모기 기피제 사용 : 노출된 피부에는 DEET, 이카리딘성분이 포함된 모기 기피제를 사용한다.

모기장 활용 : 밤에 잘 때는 모기장을 사용하고, 방충망이 훼손된 곳은 없는지 확인한다.


모기 서식지 제거

모기는 고인 물에 알을 낳는다. 집 주변의 화분 받침, 버려진 타이어, 웅덩이 등 물이 고일 수 있는 곳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물을 비워야 한다.

정기적으로 물탱크나 빗물받이를 청소하여 모기가 번식할 환경을 없애야 한다.

만약 치쿤구니야 감염이 의심된다면, 즉시 의료 기관을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과 의사의 지시에 따라 치료받아야 한다. 현재 치료는 주로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요법에 의존하고 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수분을 섭취하며, 관절통 완화를 위해 아세트아미노펜과 같은 해열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때 아스피린이나 이부프로펜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출혈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의사와 상의 후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전 세계의 대응과 미래 전망: 인류의 공동 과제


치쿤구니야는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등과 함께 ‘신종 감염병’으로 분류되며 국제 보건계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상용화된 백신은 없다. 몇몇 후보 물질들이 임상 시험 단계에 있지만, 안전성과 효능을 최종적으로 입증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국제 보건 기구(WHO)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감시 시스템이 강화되고 있다. 바이러스의 확산 경로를 추적하고, 유행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국의 보건 당국 역시 치쿤구니야 유입 가능성에 대비해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국민들에게 예방 수칙을 알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에필로그 : 치쿤구니야,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


치쿤구니야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모기의 서식지가 확장되고, 활발한 국제 교류로 인해 바이러스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언제든 우리 주변으로 다가올 수 있는 현실적인 위협이 되었다.

우리는 이 작은 모기 한 마리가 가져올 수 있는 거대한 위협을 인지하고, 개인적인 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치쿤구니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이 열병의 파괴적인 확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치쿤구니야는 단순히 한 개인의 건강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 할 인류 공동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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