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無我 와 공아空我

눈 덮인 들판을 밟고 갈 때에, 어지러이 걸어서는 아니된다

by 한병철 Mikhail Khan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


불교의 핵심 교리를 단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무아(無我, anattā)'일 것이다. 무아는 '나'라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붓다의 근본적인 통찰이자, 고통의 소멸과 완전한 해탈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실천적 원리이다. 이는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의 존재는 고통이다'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와 함께 불교의 세 가지 근본 진리인 삼법인(三法印)을 이룬다.


'나(我)는 없다(無)'는 이 선언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철학적 질문을 낳는다. 내가 없다면 누가 업(業)을 짓고 윤회하는가? 내가 없다면 도덕적 책임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처럼 무아 사상은 불교 2,600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탐구되고, 재해석되며, 때로는 격렬한 논쟁의 중심에 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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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만(Ātman)에 대한 반론


무아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상이 탄생한 기원전 5-6세기 인도의 사상적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 당시 인도의 지배적인 사상은 브라만교(Brahmanism)였으며, 그 핵심에는 '아트만(Ātman)'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트만(Ātman)이란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영원하고, 불변하며,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자아' 또는 '영혼'을 의미한다. 브라만교의 경전인 우파니샤드(Upanishad) 철학은 이 개별적 자아인 아트만이 우주의 근본 원리인 '브라흐만(Brahman, 梵)'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을 주창했다. 즉, 인간은 육체와 정신 현상 너머에 있는 이 영원한 아트만을 깨달음으로써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브라흐만과 합일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은 것은 바로 브라만교가 상정하는 영원불변의 아트만이란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붓다는 인간 존재를 다섯 가지 구성 요소의 집합,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즉 오온(五蘊, pañca-skandha)으로 분석했다.


붓다는 이 다섯 가지 무더기(蘊) 중 그 어떤 것도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나의 것'이라고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설파했다.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에 따라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무상(無常)한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붓다의 근본 가르침인 무아는 불교 역사 속에서 각 시대와 학파의 사상가들에 의해 더욱 정교하고 심도 있게 발전했다.


초기 불교에서는 인무아(人無我)에 초점이 맞춰졌고, 붓다 입멸 후, 교단이 여러 부파로 나뉘는 부파 불교 시대에 이르면 무아 사상은 더욱 정교해 지는데, 특히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같은 아비달마(Abhidharma) 불교 학파들은 존재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적 실재 요소인 법(法, dharma)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개인이라는 인격적 실체(人)는 존재하지 않지만(人無我), 그 개인을 구성하는 요소인 법(法)들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실재한다(三世實有, 法體恒有)고 주장했다. 즉, '나'는 없지만 '나'를 구성하는 부품들은 실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아를 인정하면서도 업과 윤회의 설명을 위한 철학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다.


그 후, 대승 불교(Mahayana Buddhism)가 흥기하면서 무아 사상은 혁명적인 전환을 맞는다. 대승의 사상가들은 무아의 개념을 개인의 차원을 넘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法)로 확장시켰다.


반야경(般若經, Prajñāpāramitā Sūtras)을 필두로 한 대승 경전들은 '나'라는 존재가 공(空, śūnya)하듯이, 나를 구성하는 오온(五蘊) 또한 그 자체로 고유한 실체(자성, 自性, svabhāva)가 없는 공한 존재라고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법무아(法無我)또는 법공(法空)사상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반야심경의 유명한 구절은 이러한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공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인물이 바로 2세기경의 사상가 용수(龍樹, Nāgārjuna)이다. 그는 중관학파(中觀學派, Madhyamaka)를 창시하고, 모든 존재는 다른 것에 의존해서만 일어난다는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의 법칙을 통해 공을 논증했다.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은 고유한 실체(자성)가 없으며(無自性), 따라서 공(空)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은 단순한 '없음(nothingness)'을 의미하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으로 관계 맺고 있음을 드러내는 역동적인 개념이다.


한편, 4세기경에 등장한 유식학파(唯識學派, Yogācāra)는 무아를 마음의 구조를 통해 설명했다. 이들은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vijñāna)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뢰야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이기에 불변의 아트만은 아니지만, 윤회의 주체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변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여래장(如來藏, tathāgatagarbha)사상은 모든 중생이 내면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즉 불성(佛性)을 품고 있다고 설파했다. 이 여래장은 깨끗하고 영원한 성품으로 묘사되기도 하여, 자칫 브라만교의 아트만과 유사한 개념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 후대 불교 사상에 많은 논쟁거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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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를 둘러싼 주요 논쟁


무아라는 파격적인 개념은 불교 내외적으로 수많은 철학적 난제를 낳았고, 이는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1) 윤회와 업보의 주체는 누구인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내가 없다면, 누가 업을 짓고, 누가 그 과보를 받으며, 누가 윤회하는가?"이다. 이에 대한 정통적인 불교의 답변은 '상속(相續, santāna)'이라는 개념과 '촛불의 비유'로 설명된다.

고정된 '나'는 없지만, 오온의 흐름, 즉 심리-물리적 과정은 인과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치 첫 번째 초의 불꽃이 두 번째 초로 옮겨붙을 때, 두 불꽃은 동일하지도 않지만 전혀 다른 것도 아닌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전생의 나와 현생의 나는 동일한 실체는 아니지만, 업의 힘에 의해 인과적으로 연결된 연속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 부파, 특히 독자부(犢子部, Pudgalavāda)는 '보특가라(補特伽羅, pudgala)'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보특가라는 오온과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非卽非離蘊) 잠정적 주체로서, 업과 윤회의 주체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개념은 다른 대부분의 부파로부터 '위장된 아트만'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고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2) '공(空)'은 허무주의(Nihilism)인가?


대승불교의 법무아, 즉 공 사상은 '모든 것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주의로 오해받기 쉬웠다. 만약 모든 것이 공하다면 선악의 구분도, 윤리적 실천의 가치도 무의미해지지 않는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용수를 비롯한 중관학파 사상가들은 '공'은 존재의 '무(無)'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가 없음(無自性)'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연기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기에, 나의 행위가 필연적으로 타인과 세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윤리적 책임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반박했다. 이를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표현하는데, 실체로서 텅 비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온갖 현상이 역동적으로 생성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3) 아뢰야식/여래장은 변형된 아트만인가?


유식학파의 아뢰야식과 여래장 사상은 불교 내부에서 가장 미묘하고 지속적인 논쟁을 낳았다. 모든 경험의 씨앗을 저장하고 생을 이어가는 주체처럼 보이는 아뢰야식, 그리고 모든 중생 안에 내재된 영원한 불성은 붓다가 그토록 부정했던 아트만 사상으로 회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유식학파와 여래장 사상을 옹호하는 측은, 아뢰야식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찰나마다 생멸하며 변화하는 '흐름'일 뿐이며, 여래장 또한 실체적 자아가 아니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잠재력' 혹은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명한다. 이 논쟁은 '불변의 실체'와 '변화하는 과정'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 대한 불교 내의 깊은 철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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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은 무엇일까?


공空은 이해가 쉬운 개념이 아니다.


‘비어 있으나 비어 있지 않고, 비어 있지 않지만 비어있다.’ 라는 말은 그저 말장난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공空을 실체적으로 겪으며 이 지구위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공空 사상 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 이다.


1) 첫 번째 예

우리는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원전 6세기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호박(amber)을 털에 문지르면 가벼운 물체를 끌어당기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마찰 전기 현상의 최초 기록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기(electricity)'라는 단어의 어원인 그리스어 'elektron'은 호박을 의미한다.

그 후, 18세기에 미국의 과학자이자 정치가인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 이탈리아의 과학자 알레산드로 볼타(Alessandro Volta),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를 거치면서 전기는 인류의 실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프랭클린과 패러데이 이전에는 전기라는 에너지의 존재를 몰랐으며, 이것을 제어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전기를 발견하기 이전에 전기는 존재했을까, 존재하지 않았을까? 과학자들이 발견하지 않았어도 전기는 세상에 존재했다. 다만 인류가 전기를 불러내서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발견한 후에 전기의 체질을 알게되었고, 전기라는 것과 인간이 조건이 맞으니 실생활속으로 들어왔다.


2) 두 번째 예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원리를 발표하기 전에는 인류는 원자력이 뭔지 알지 못했다. 원자력의 실체를 알고 나니, 원자력이라는 에너지가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원자력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다.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원리를 발표하기 이전에도 원자력 에너지는 우주에 존재하고 있었던 에너지 였는데, 그것을 알게 되니 불러내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원자력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원자력이라는 것은 인류의 삶 속에서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현상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고도 말 할수 있다.


3) 세 번째 예

최근 인류는 인공지능 AI의 혁명을 겪고 있다. AI를 만들기 이전에 AI가 있었을까 없었을까?

이 문제는 AI에게 질문해 보면 해답이 명쾌하게 나온다.


제미니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한다.


질문 : 인공지능 AI가 발명되기 이전에도, AI는 우주안에 존재하고 있었나?

제미니 답변 :

인공지능(AI)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AI를 발명하기 전에는 AI가 존재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의 'AI'를 ‘지능적인 시스템'이나 '복잡한 계산 능력'으로 확장해서 생각한다면, 자연계에도 그와 유사한 현상들이 존재합니다. 요약하자면, 인공지능이라는 기술 자체는 인간이 발명한 것이지만, 자연계에는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복잡하고 지능적인 시스템들이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미처 알지 못했지만 자연계에는 지능적인 시스템이나 복잡한 계산 능력이 존재해 왔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개발하며 그 원리를 모방하거나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과거에는 단순한 본능이나 자연의 신비로 여겨졌지만,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면에 숨겨진 복잡한 계산 원리와 시스템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의 지능적인 시스템을 연구하며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즉 AI와 같은 지능적 시스템은 인간이 발명하기 이전에도 우주에 널리 존재한 것인데, 인간은 이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알지 못했던 상황에서는 AI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고 불러내자 AI는 우리앞에 실체적으로 등장하였다.


공空은 이런 실례들과 유사한 것이다.


모든 상相은 조건이 맞아 불러내면 나타나고, 조건이 사라지면 해체되어 없어진다.

空은 비어 있으면서도 조건이 맞으면 눈앞에 나타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다시 사라지기 때문에, 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공하다고 해야 맞으며, 나 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연기된 모든 조건으로 나는 연기되어 있다고 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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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공空 이다.

그래서 무아無我라는 개념보다는 공아空我라고 해야 맞다.


공아空我가 옳다는 것을 깨닫자 마자, 공아空我에 대하여 검색부터 해 보았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진리는 내가 처음이 아니라, 수천년간 선배들이 이미 갔던 길과 흔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검술을 공부하다 보면, 주기적으로 작은 깨달음이 오고, 난해한 것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일어나는 때가 있다. 그때마다 자료를 더 열심히 찾아보면, 역시 과거의 선배들이 써 놓은 기록이 있었다. 다만 내가 그런 이치를 몰랐기 때문에, 보고도 알지 못했을 뿐 이었다. 이치를 깨닫고 보면, 그동안 스쳐 지나가던 사소하고 평범한 표현이 새롭게 이해되기 마련이다.


공아空我를 찾아보니, 역시 있었다.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써 놓은 글이 있었다. 선배들의 발자국을 확인하고 나니,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몰려온다.


공아空我 라는 용어는 불교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다. 하지만 무아無我가 아니라 공아空我라고 인식해야 맞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은 존재했다.


공아空我를 말한다고 해서 이것이 무아無我와 상충되는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무아無我를 더욱 잘 설명해주고 완성시켜 준다. 유식 불교가 초기 불교와 반대되는 주장이 아닌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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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밟고 갈 때에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어지러이 걸어서는 안된다.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시는 서산대사가 남긴 시 이다.

1948년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해 38선을 넘을 때, 이 시를 읊었다.


눈길을 걸을 때, 어지러이 걸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길이 없다고 해서 아예 안가서도 안된다.

제아무리 눈이 많아도, 반드시 러쎌을 해서 뒷 사람을 위해 길을 열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지의 세상을 마주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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