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Nobody)'라고 지칭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이름을 숨기는 행위를 넘어, 이는 때로는 가장 강력한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문학과 예술 속에서 'Nobody'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인물들은 단순한 익명성을 넘어 '자유와 이상을 향한 항해' 라는 거대한 서사를 이끌어 왔다.
'Nobody'의 가장 오래된 조상은 바로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영웅, 오디세우스 일 것이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히게 된다.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키클롭스 폴리페모스가 살았던 섬은 현재의 시칠리아 섬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키클롭스의 섬은 화산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묘사되는데, 이로 인해 시칠리아 동부 해안에 위치한 에트나(Etna) 산이 있는 지역으로 많이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와 마주쳤던 동굴은 시칠리아 동부 해안 어딘가에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키클롭스에게 구속된 오딧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우티스(Οὖτις)", 즉 '아무도 아닌 자'라고 속인다. 키클롭스가 술에 취해 잠들자, 오디세우스는 그의 눈을 찌르고 탈출을 감행한다. 고통에 울부짖는 키클롭스에게 다른 거인들이 "누가 너를 해쳤느냐?"고 묻자, 그는 "아무도 아닌 자(Nobody)가 나를 해쳤다!"라고 외친다. 이 기발한 기만술 덕분에 오디세우스 일행은 무사히 동굴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Nobody'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는 오디세우스가 지닌 지혜와 기지를 상징하며, 규칙과 힘의 논리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보여준다. 그는 '이름 없는 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거인의 막강한 힘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쟁취했다. 오디세우스의 'Nobody'는 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유연한 정체성이었던 셈이다.
19세기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는 또 다른 'Nobody'가 등장한다. 바로 최첨단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선장, 네모이다. '네모(Nemo)'는 라틴어로 '아무도 아닌 자'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철저히 숨긴 채 바다 밑에서 홀로 살아간다.
네모 선장은 인류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과학 기술의 정점에 서 있었지만, 자신의 지식과 발명품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해양 생물들을 탐구하고, 해저 세계를 여행하며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 세상과 단절된 삶을 선택한 네모 선장은 당시 제국주의와 산업 혁명의 폭력성에 환멸을 느낀 인물이었다.
그는 'Nobody'가 됨으로써 문명의 부조리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네모 선장의 항해는 단순히 바다를 탐험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당시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질서, 그리고 폭력에 대한 저항이자, 개인의 자유와 이상을 추구하는 가장 낭만적인 방식이었다.
쥘 베른의 영향을 깊이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마츠모토 레이지는 우주 해적 캡틴 하록을 탄생시킨다. 하록의 전함인 아르카디아호는 쥘 베른의 노틸러스호처럼, 압도적인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지구로부터 소외되고 외롭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록은 지구가 타락하고 부패한 정부에 의해 지배되는 디스토피아 시대에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를 법이나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우주 해적'으로 칭하며, 우주를 항해한다. 하록의 항해는 단순히 약탈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만의 신념과 의리를 따르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길'을 홀로 걸어간다.
캡틴 하록은 자신을 'Nobody'라고 직접적으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를 상징한다. 부패한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네모 선장이 추구했던 '자유와 이상'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한 것과 같았다. 아르카디아호가 펼치는 항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고독한 투쟁이자, 영원히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 그 자체이다.
오디세우스부터 네모 선장과 캡틴 하록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스스로를 '아무도 아닌 자'로 규정함으로써 오히려 가장 강력한 주체성을 획득했다.
그들은 세상의 기대나 규정된 역할에 갇히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이상과 자유를 향해 나아갔으며,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가 되도록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좋은 직장인', '이상적인 배우자', '성공한 부모' 등 다양한 이름표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 모든 이름들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만의 '아르카디아호'에 올라탈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공개석상에서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Nobody)’ 이라고 지칭한 어떤 여인이 있다.
위에서 열거한 ‘아무것도 아닌 사람(Nobody)’과 그녀와의 차이점이라면, 그녀는 그저 추악한 범죄자 일 뿐, 그 외에 그 어느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범죄자 일 뿐, 그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이라고 정의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고백은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이제 이름이 아니라 감옥 독방에서 수인번호로 불리고 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Nobody가 또 있다.
2008년에 원더걸스가 발표했던 노래 ‘Nobody’이다.
오늘, 원더걸스 노바디의 가사는 작금의 현실과 꽤나 적절한 듯 보인다.
I want nobody nobody but you
You know I still love you baby And it will never change
Back to the days when we were So young and wild and free
Why do you push me away
I don't want nobody nobody Nobody nobody but you
나에게는 당신 말고는 아무도 필요 없어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베이비. 그리고 그건 결코 변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젊고 야생적이고 자유로웠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왜 나를 밀어내는 거야?
나에게는 당신 말고는 아무도 필요 없어. 아무도, 아무도, 당신 말고는 아무도 필요 없어.
지금 그 노바디女에게 필요한 것은, 한때 힘 있었던 ‘당신’과 함께 화려했던 지난 날로 돌아가는 것 이리라.
스스로 'Nobody' 라고 선언하려면, 기존 사회의 질서에 맞서서 자신만의 이상과 자유를 위해 나아가려는 자 이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언한다는 것은, 기존 가치관의 관점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며, 세상의 기대나 규정된 역할에 갇히지 않고 가장 강력한 주체성을 획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때 시작된다. 문학과 예술 속의 'Nobody'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이 세상에서 만들어져 나에게 주어진 기존의 상像을 버리고, 자신만의 '자유와 이상을 향한 항해'를 시작할 준비가 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