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이 나라와 키다리 나라

- 새로운 한일 관계

by 한병철 Mikhail Khan

1930년에 출간된 앙드레 모로아의 동화 '뚱뚱이 나라와 키다리 나라(Patapoufs et Filifers)'는 단순한 어린이 이야기가 아니다. 살이 찐 사람들의 나라와 빼빼 마른 사람들의 나라가 서로를 멸시하고 싸우다 결국 화해에 이르는 이 우화는, 이름이 가진 상징적인 힘과 평화의 가능성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한다. 특히, 두 나라의 분쟁이 끝나는 계기가 된 ‘장미섬(L'île des Roses)’의 이야기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동해' 명칭 갈등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소설 속 두 나라는 한 섬의 소유권을 두고 다툰다.

키다리 나라에서는 ‘키다리뚱뚱이섬(Filipoufs/Thinipuff)’으로 부르고, 뚱뚱이 나라에서는 ‘뚱뚱이키다리섬(Patafer/Fattyfer)’으로 부른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이름으로 섬을 부르는 것을 거부하고, 끝없이 대립한다. 양국은 전쟁을 계속하였고, 결국 키다리 나라가 뚱뚱이 나라를 점령한다. 그후 양국의 높으신 분 들이 교류를 하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자, 국민들도 서로 양국의 문화를 존중하고, 젊은이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이 늘어나면서 혼혈아들이 태어난다.


그후 새로운 국왕들은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섬을 '장미섬'이라 명명하며, 양국의 공유지로 선포한다. 이 새로운 이름은 더 이상 어느 한쪽의 소유가 아닌, 모두의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중립적인 이름 아래 두 나라는 비로소 평화롭게 공존하며 교류를 시작한다. 이름이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평화의 촉매제가 된 것이다.

patapoufs_et_filifers-916883-264-432.jpg


한일 간의 '동해' 명칭 갈등 또한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일본은 이 바다를 '일본해(Sea of Japan)'라 부르며, 한국은 '동해(East Sea)'라고 주장한다. 이 명칭 다툼은 단순한 지명 문제가 아니다. 이는 역사적 주권과 정체성, 그리고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다. 일본에게 '일본해'는 자신들의 주권과 해양 영향력을 상징하는 이름이며, 한국에게 '동해'는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해 온 역사적이고 정서적인 이름이다.


우리는 '동해' 명칭이 고유하고 정당한 이름이며, '일본해'는 식민지배의 잔재가 투영된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이 명칭 문제는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제수로기구(IHO)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는 '일본해' 단독 표기를 사용하거나, 병기를 권고하는 등 다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소설 속 두 나라가 섬의 이름을 두고 첨예하게 맞섰던 상황과 흡사하다.


앙드레 모로아의 소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름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이름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통해 평화를 향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지혜다.


1500img-5.jpg

'뚱뚱이 나라와 키다리 나라'는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제3의 이름인 '장미섬'을 받아들였다. 이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물론, 현실의 외교 관계는 소설처럼 단순하지 않다. '동해'와 '일본해' 문제는 단순한 지명 선택을 넘어, 역사 인식과 민족 정체성이 걸린 문제이기에 더욱 복잡하고 민감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없는 대립을 이어갈 수는 없다. 소설 속 '장미섬'의 사례처럼, 우리는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이고 유연한 접근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인이어서 일본해를 죽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국제적으로 우리의 동쪽바다가 일본해 명칭으로 굳어진다면, 나는 일본대사관앞에서 밤을 새워 촛불시위를 할 용의가 있고, 만약 한일간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떤 방식으로던 전쟁에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도 동해라는 이름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동해라는 것은 한국의 동쪽이어서 동해로 명명된 것이며, 일본에게는 동쪽바다가 될 수 없다. 동해로 명명하는 순간, 이 바다의 주인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동해는 일본에게는 서해이다.


서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름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열차와 같다. 은하철도999처럼 우주 끝까지 달려도 두 열차는 만나지 못한다.


어쩌면 '동해'와 '일본해'라는 이름 대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또는 양국의 공동 명의로 특별한 의미를 담은 이름을 병기하거나,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담은 제3의 명칭을 제안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행위를 넘어, 양국이 과거의 갈등을 넘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앙드레 모로아의 동화는 이름의 힘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과 일본이 '동해' 명칭 문제를 단순히 지명 다툼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평화와 미래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뚱뚱이 나라와 키다리 나라‘의 뚱뚱이 국왕이 '장미섬'에서 함께 평화를 찾았듯, 우리도 동해바다에서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시작이 될 것이다.


1500img-2.jpg


나는 오래전부터 동해바다의 명칭은 동해도 일본해도 아닌, 제3의 명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동해바다는 수심이 깊고 매우 검푸른 바다이다. 그러니 파랗다는 의미의 ‘창해(蒼海)’는 어떤가? 아니면 ‘청해(靑海)’도 괜찮지 않은가? 창해나 청해는 일본에서도 받아들일 여지가 있지 않은가? 영어로는 Blue Ses 정도로 명명할 수 있겠다.


동해바다의 명칭이 한일간에 서로 용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재명명 되지 않는다면, 한일간의 평화는 시작하기 어렵다. 한일간의 모든 갈등은 동해 명칭 갈등으로 상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뚱뚱이 나라와 키다리 나라에서 평화의 시작은 양국 사람들의 만남과 친교로부터 시작되었다. 서로를 증오하던 사람들이 전쟁 패전후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다보니, 서로간의 이해가 생겨나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사랑이 싹텄다.

이 소설에서 웅변하고 있듯이, 평화는 복잡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서로 이해하다 보면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1300457_625967_1736.jpg 소설제목이 연상되는 한일 정상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결과에서는 흥미로운 것이 발표되었다.

한일 양국은 젊은이들의 워킹홀리데이를 1년에 2회로 늘리기로 했다는 합의였다. 하고 많은 문제중에서, 왜 하필 워킹홀리데이를 2회로 늘리기로 했을까?


이 문제를 상정하고 해결한 정부 당직자들은 한일간의 갈등해소를 위해 젊은이들의 교류가 우선함을 인식한 것 같다. 나이먹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젊은이들은 노인과 달리 열린 사고가 많다. 젊은이들이 서로 상대국에서 1년씩 장기체류를 하며 일하고 만나고 부대끼다 보면, 한일간의 문제는 눈녹듯이 풀릴 지도 모른다.


이미 최근에 한국남성과 일본여성 결혼 커플은 5배나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다. 한일간 젊은이들이 결혼하는 빈도수가 늘어나다보면, 20년후에는 한일 국제커플은 매우 흔한 일이 될 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국인이 국제결혼을 해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국민은 일본인이다.


만약 새로 태어나는 신생아들의 한쪽 부모가 일본인 여성 인 경우가 전체의 1/3정도 되는 날이 온다면, 한일간 갈등은 이미 사라져 없을지도 모른다. 뚱뚱이 나라와 키다리 나라도 그렇게 서로 융합되었듯이.


나는 24살부터 배낭을 지고 전세계를 여행해 왔다. 90년대초에는 아프리카 사하라나 중동, 인도와 히말라야 같은 곳에서 한국인을 만나기는 매우 힘들었다. 그럴때마다 본능처럼 뭉치는 사람들은 한국인과 일본인 이었다.

견디기 힘든 오지에서 서로를 도와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인종은, 한국인 다음으로는 일본인이 최고였다. 그런 곳에서는 일본인들도 한국인에게 의지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자포니카 쌀밥을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고, 한자사용과 비슷한 언어, 음식과 생활습관이 비슷하여, 해외 오지에서는 서로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지역에서 일본인들과 생활해 본 경험이 늘어나면서, 나는 일본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1500img-1.jpg


언젠가는 한일간에 평화가 오길 바란다. 옆집 사람과 평생 원수가 되어 사는 것은 바람직 한 것이 아니다. 평화가 와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위(當爲)이다.


그러나 한일간의 평화는 가해자의 진솔하고 성의있는 사과와 배상이 우선해야 한다. 사과받지 않았는데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어리석음과 비굴함 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평화롭다면, 서로 증오하지 않고 친밀감이 높아질 수 있다면, 그 평화는 갈등보다 많은 관계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의 공동발표문을 보면서, 뚱뚱이 나라와 키다리 나라를 떠올린다. 장미섬으로 명명함으로써 항구적인 평화를 찾아낸 뚱뚱이나라와 키다리나라의 현명한 국민들을 생각해 본다.



Patapoufs.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무것도 아닌 사람 Nobo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