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버스가 다시 돌아온 이야기

- 나는 희망한다

by 한병철 Mikhail Khan

때로는 인생이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짊어지게 할 때가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든 모함의 화살이 심장을 관통하고, 그 고통스러운 상처를 부여잡고 일어서려 할 때, 우리는 의지할 만한 손길을 찾기 마련이다. 그 손길이 바로 오랜 시간 곁을 지키며 나의 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들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세상은 잔인하게도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 손들을 거두어간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절망 속에서, 차라리 적대자의 공격보다 더 아프고 뼈아픈 침묵과 중립이라는 이름의 방관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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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몇 년 전, 나의 삶에도 예고 없는 폭풍이 불어닥쳤다. 이유 없는 모함과 거짓 소문들이 나를 짓눌렀고, 믿었던 이들은 등을 돌렸다. 가장 큰 충격은 나의 편에 서줄 것이라 믿었던 이들이 오히려 가해자의 편에 서는 모습이었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저를 덮치는 듯한 혼란 속에서 나는 끝없이 표류했다.


나의 결백을 굳건히 믿어주고 목소리를 내어준 이는 정말이지 극소수에 불과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노골적인 비난이나 적대적인 태도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인 '중립'이라는 이름의 침묵이었다.


그들은 나의 고통을 외면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고, 나의 이야기가 튀어나오면 화제를 돌리거나 자리를 피했다.

어떤 이들은 ‘섣불리 개입할 수 없다’거나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는 양비론을 들먹이며 방관했다. 그들의 침묵은 마치 거대한 벽처럼 나와 세상을 가로막았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예전에는 나의 편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사건이 마무리되어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고 가해자들이 모두 민형사상의 처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배신한 이들에 대한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았다. 흔히 세상에는 인과응보가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삶에는 때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노자가 말한 대로 ‘천지는 불인하다(天地不仁)’는 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일어날 일은 그저 일어나고, 우주는 아무런 감정 없이 흘러갈 뿐이라는 냉정한 진실 앞에서 나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사람들은 왜 중립을 지키는가?


사건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중립을 지키려 할까? 특히 나의 편이라 믿었던 사람들마저 침묵으로 관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나를 밤잠 못 이루게 했으며, 수많은 밤을 새우며 그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해하려 애썼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불확실성 속의 자기 보존 본능일 것이다.

사람들은 복잡한 상황에 휘말리기를 꺼려한다. 개입함으로써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섣부르게 한쪽 편을 들었다가 혹시라도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비난받거나 관계가 틀어질까 봐 몸을 사린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는 것이 진실을 규명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 이었다.


또한, 공동체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대다수가 침묵하거나 특정 입장을 취할 때, 소수의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나 혼자 튀고 싶지 않다', '괜히 미운털 박힐 필요는 없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암묵적인 다수의 동조에 대한 압력은 개인이 용기를 내어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무관심과 공감 능력의 부족 역시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나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나의 사건이 그저 뉴스 속의 한 조각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이입하기 어렵고, 결국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것 이었다.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섣부른 판단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모두가 등을 돌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소문이 진실보다 빠르게 퍼지는 세상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진실을 파악하려 노력하는 대신,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따라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중립을 가장한 방관을 선택하는 것이다. 믿었던 이들의 침묵은 이러한 복합적인 심리들이 작용한 결과임을 깨닫고 나니, 이해는 가지만 아픔은 여전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억울함은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나의 어깨를 짓눌렀고, 나는 그 무게를 견디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형사 소송, 민사 소송... 수많은 법정 싸움을 거치며 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공공IP와 닉네임과 가명속에 숨어서 범죄를 저지른 익명의 사람들을 하나 하나 찾아냈다.


증거를 모으고, 증인을 찾고, 변호사와 밤을 새워가며 논리를 다듬었다. 고통스럽고 지루한 과정이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 나를 옭아맨 거짓의 사슬을 끊어내야만 했다.

나의 변호사는 나에게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한다(君子報仇十年不晩)’라면서, 금방 끝날 일이 아니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마침내, 오랜 송사 끝에 시시비비가 가려졌다. 법원은 나의 손을 들어주었고, 나의 억울함이 공식적으로 해소되었다.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을지라도, 적어도 나를 향한 터무니 없는 모함이 사실이 아님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가슴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 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다. 나를 외면했던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다가와 사과하고,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또 한 번 나를 실망하게 했다. 민형사상 소송을 통해 나의 결백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중립을 지키며 침묵했던 사람들은 다시 나의 편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나와 거리를 두었고,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도 있었고, 억지로 웃으며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예전과 같은 따뜻함이나 친밀함이 없었다. 여전히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법적인 승리는 얻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여전히 패배한 기분이었다. 이 사실은 나에게 또 다른 형태의 고통과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냉정하게 만든 것일까?



결백이 밝혀져도 돌아오지 않는 이유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나의 결백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중립 입장을 지켰던 사람들이 다시 나의 편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내가 법정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도 나를 가장 괴롭히는 숙제였다. 그 답은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체면과 자존심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섣불리 판단하여 나를 외면했거나, 혹은 비겁하게 방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이나 비겁한 행동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차라리 침묵을 유지하며 과거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다.


둘째, 불편함과 죄책감이다. 그들은 나를 다시 대하는 것이 불편할 것이다. 자신들의 침묵과 방관으로 인해 내가 겪었던 고통을 알기에, 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죄책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나와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기보다는, 불편한 상황을 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셋째, 관계의 본질적인 변화이다. 사건을 겪으며 나는 그들의 민낯을 보았다. 그들이 나의 편이 되어주리라는 나의 믿음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깨달았다. 그들 역시 나에 대해 이전에 없던 선입견이나 감정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사건을 통해 관계의 본질이 이미 변질되어 버린 것 이었다. 금이 간 도자기는 아무리 정교하게 붙여도 예전과 같을 수 없는 것처럼, 관계 또한 한 번 금이 가면 완벽하게 복원되기 어렵다.


넷째, 새로운 관계의 형성이다. 나를 외면했던 그 시간 동안,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공고히 했거나, 혹은 나의 사건과는 무관한 새로운 삶의 지류를 형성했을 수 있다. 그들에게 나는 이미 '지난 일' 혹은 '잊고 싶은 기억'의 일부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들의 현재 관계나 삶에 불필요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다섯째, 인간 본연의 이기심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평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의 결백이 밝혀졌다고 해서 그들이 나에게 돌아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지 않다면,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관계 회복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세상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을 헤아려보니,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당연함은 때로는 나를 분노하게 했다.

믿었던 이들의 침묵과 외면, 그리고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현실은 나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해 주었다.


바로 나의 인생은 계속 흘러갈 것이며, 지구는 변함없이 자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통해 나는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삶과 인간관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삶을 좀 더 관조적(觀照的)인 태도로 대하게 되었고, 마치 한 발짝 물러서서 거대한 그림을 보듯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것이 변하고 흘러가는 과정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큰 소득은 역시 진정한 나의 편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곁을 지키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고 지지해 준 극소수의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벗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나의 빛나는 순간뿐만 아니라, 가장 초라하고 약한 순간에도 나를 놓지 않았다.



영화같은 이야기


인생을 정말 속없이 착하게 살아온 어떤 여인이 있다. 자기 명의로 은행에 보증서서 수십억을 대출받아 비영리 사회단체의 사옥을 건립하고, 무려 12년동안 대표직을 수행하며 월급 한푼 안받고 무보수로 봉사를 했다.


처음에는 월급인상과 관련되어 직원들에게서 불만이 나왔다는 것 같다. 그래서 비영리 봉사 사회단체는 대기업처럼 급여를 충분히 주기는 어려우니, 급여가 불만이라면 이직을 하시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한다. 여기서부터 사달이 난 모양이다. 불만을 가진 몇몇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행동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 들이 터져나왔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허위사실 유포와 모함, 고소 고발, 외부세력 개입, 단체행동, 인격적 모욕, 영업방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등장하였다.


얼마전에 커피숍에서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앞에 놓고 그분은 나에게 물었다.

‘일이 모두 충분히 해명되고 정리되면, 떠난 사람들이 돌아올까요?’


나는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그 사람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헛된 기대는 안 하시는 것이 좋아요. 한번 떠난 버스가 돌아오는 것을 보셨어요?’


그날 그 분에게는, 나의 말이 아이스커피의 얼음보다 더 차가웠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떠난 버스도 돌아온다


한번 깨진 도자기는 붙여도 예전같지 않다. 한번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버스는 떠나도, 다른 버스가 또 온다’며 정신적인 자위를 한다.


그렇다.

떠난 버스가 돌아오지 않듯이, 한번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슬픈 진실이어서 입밖에 내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떠난 버스는 안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이륙한 비행기는 나를 태우러 다시 돌아와서 착륙하기도 한다.



SNC13288.JPG 마사이마라 공항 간판
SNC13289.JPG 마라 세레나 공항 청사
SNC13306.JPG 우리를 태우고 이륙한 비행기
SNC13311.JPG 이륙 직후의 마사이마라 초원


2007년에 내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케냐 마사이마라 공원에서 며칠간 사파리 투어를 마치고, 나이로비로 돌아가는 경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이마라 초원에는 영화에서나 볼 만한 야외 경비행기 공항이 있다.

비포장 흙길 활주로에 도착한 비행기는 잠시뒤 우리 일행을 태우고 털털 거리며 날아올랐다. 이륙하여 한바퀴 돌면서 고도를 높인 비행기는 이제 나이로비를 향해 기수를 돌린 시점이었다.


기장의 휴대폰으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아프리카 말로 한참 떠들던 조종사는 갑자기 기수를 돌려 다시 활주로에 착륙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은 알 수 없는 상황에 불안해져서 웅성대기 시작했지만, 케냐 사람들은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느긋한 것 이었다.


이윽고 비행기가 다시 착륙하여 공항청사(?) 건물앞에 도착하자, 깨끗하게 옷을 차려 입은 케냐 사람 두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알고보니 그 들은 비행기 출발시간에 맞춰서 도착하지 못했고, 기다려도 그들 2명이 오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기장은 그냥 이륙해 버렸던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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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륙한 비행기를 휴대폰으로 불러 세워 다시 돌아오게 만든 이 상황은, 후일 두고 두고 술자리에서 안주거리가 되었다.


한번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지만, 이륙한 비행기는 휴대폰으로 전화하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는, 시트콤에서나 나올 듯한 황당한 이야기는 듣는 사람마다 포복절도를 했다.


때로는, 인간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일 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일은 어쩌면 해가 서쪽에서 뜰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로또에 맞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웃다가 기절해서 죽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느냐?’고 물어보신 분에게 이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었다.

비행기가 다시 돌아온 이야기를, 그리고 존레논의 노래 ‘GOD’를 들려드리고 싶었다.



God -존레논


God is a concept

신이란

By which we measure Our pain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재는 도구야

I'll say it again

다시 말해줄게

God is a concept

신이란

By which we measure Our pain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재는 도구야

I don't believe in magic

나는 마법을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I-Ching

나는 주역을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Bible

나는 성경을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tarot

나는 타로를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Hitler

나는 히틀러를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Jesus

나는 예수를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Kennedy

나는 케네디를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Buddha

나는 부처를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mantra

나는 만트라를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Gita

나는 기타를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yoga

나는 요가를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kings

나는 왕을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Elvis

나는 엘비스를 믿지않아

I don't believe in Zimmerman

나는 짐머맨을 믿지 않아

I don't believe in Beatles

나는 비틀즈를 믿지않아

I just believe in me

오직 나를 믿어

Yoko and me

요코와 나만

And that's reality

그게 현실이야

The dream is over

꿈은 끝났어

What can I say?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The dream is over

꿈은 이미

Yesterday

어제 끝났어

I was the dream weaver

나는 꿈을 만들던 사람이었지

But now I'm reborn

하지만 지금은 다시 태어났어

I was the Walrus

나는 바다코끼리였어

But now I'm John

하지만 지금은 존이야

And so dear friends

그러니 친구들아

You just have to carry on

계속 나아가렴

The dream is over

꿈은 끝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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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다시 돌아오듯이,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다시 돌아오듯이,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그래도’ 나는 희망한다.


I hope to see my friend, and shake his hand.

I hope the Pacific is as blue as it has been in my dreams.

I hope.

- The Shawshank Redem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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