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국은 상당히 덥다. 두장의 고기압 이불을 덮고 있는 형국이라는 뉴스가 연일 나온다. 오늘도 섭씨 37도 폭염이 이어진다는 일기예보가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기상관측 이후에 가장 뜨거운 7월이라고도 한다.
뜨거운 날 이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몇몇 더위를 떠올린다. 일부러 상기하지 않아도, 그날의 그 뜨거움이 마치 어제처럼 기억나기 때문이다. 머리는 회상하지 않으려 하지만, 몸과 피부는 그날의 열기를 소환하곤 한다.
1988년 7월에 군대에 갔다. 1988년은 88서울올림픽이 있었던 해 였다. 7월에 입대하여 신병훈련소에 들어가니, 그 해는 유난히도 더웠다. 한밤 새벽 2시에 불침번을 서면서 들여다보면 내무반의 온도계는 3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선풍기 두 대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칼잠을 자야 할 만큼 좁았던 내무반은 수십명 장정들의 체온으로 인해 달궈져 있었다.
그 기온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잘 수가 없어 그냥 침상의 날바닥에서 잠을 청했지만, 깜박 잠들었다 일어나면 바닥은 땀으로 흥건하곤 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기상해서 하루종일 훈련을 받다보면 오후 1시에는 어김없이 35도가 넘었다. 당시 훈련규정은 35도가 넘으면 모든 훈련을 중지하고 그늘에서 휴식하게 되어 있었다.
35도가 넘으면 내무반에 들어와 낮잠을 잔다고 했다. 그래서 첫날에는 신이 났다. 덥긴 하지만 낮잠이라니. 민주 군대는 훈련소에서도 낮잠을 허 하는 구나.
하지만 낮잠도 취침인 것이라, 점호를 해야 했고, 점호를 하다보면 얼차려 할 만한 껀수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1시 오침시간 시작부터 침상에 머리를 박고 원산폭격을 하고 있다보면 4시가 되고 오침 시간이 끝나곤 했다.
낮시간에 못다한 훈련은 야간시간에 보충해야 한다며 밤 10시가 넘어도 훈련을 받았다. 대개 자정쯤 훈련이 끝나 세숫대야 한 개의 물을 배급받아 전신 목욕을 하고 취침에 들면 새벽 1시 였다.
훈련때 입는 CS급 전투복은 바람이 통하지 않았다. 특히 진흙 섞인 땅바닥에서 기어다니고 나면 흙가루가 전투복 표면에 붙고 땀에 절여지면 그냥 그 자체가 바람 통하지 않는 윈드자켓 같았다. 더운 날씨인데 피복에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군복속의 피부에는 땀띠가 돋았고, 의무실에 가서 보니 온몸은 멍게가 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땀띠에는 카라민로숀을 발라주곤 했었다. 분홍색 카라민로숀으로 온몸에 범벅을 하고 거울을 보면, 마치 드래곤볼의 마인 부우 같았다.
그런데 신의 축복인지, 내가 속한 중대의 행정실에는 나의 친한 벗이 행정병으로 배속받아 근무를 하고 있었다. 훈련소 행정실 행정병은 전방 사단의 전투병 보다는 훨씬 좋다고 인정받던 자리여서 꽤 좋은 보직에 속했다. 그가 나보다 군대를 2달 먼저 갔으니, 그도 그 당시에는 군복무 3개월차의 이등병 이었다. 3개월차 이등병이어도 훈련병보다는 계급이 높으니, 훈병들 입장에서 볼 때, 노란 계급장을 단 내 친구는 분명 하늘이었다.
가끔 그 친구가 내무반에 와서 나를 불러내곤 했다. 그 친구도 이등병이어서 개인행동 하는것에 고참들 눈치가 보였겠지만, 나를 불러내서는 우리 둘은 항상 화장실로 갔다. 당시에 훈련소는 재래식 화장실 이었고, 8월의 재래식 변기 아래에는 셀수 없이 많은 구더기가 노랗게 덮여 꼬물댔다. 우리 둘은 자판기에서 뽑은 뜨거운 종이 커피잔을 들고 대변보는 화장실에 둘이 꼭 붙어 서서 커피를 마셨다. 술담배는 없어도 살지만, 커피 없이는 못사는 나를 위해 그 친구는 나와 함께 똥냄새를 맡고, 구더기 공연을 보았다. 훈련병과 이등병이 고참들 눈을 피해서 갈 수 있는 곳은 화장실밖에 없었다.
섭씨 35도의 재래식 화장실, 뜨거운 자판기 커피, 수천마리의 살아 움직이는 구더기들, 화장실에 가득한 암모니아 냄새, 암모니아 가스로 인해 눈에서는 눈물이 났다. 암모니아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수십년전 일 인데도 뜨거운 여름날이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이다. 그때의 냄새, 색깔이 점점 더 선명해지곤 한다.
영화 와일드오키드에서, 천정에서 돌아가던 실링팬 장면은 낭만적이 었는데, 실제로 보는 실링팬은 그렇지 않았다.
90년대로 기억난다. 방콕 카오산로드에 도착하니 그날 낮기온은 40도가 넘었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실내 기온은 3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복학해서 다니던 학교를 다시 휴학하고 처음으로 장기 배낭여행을 시작했던 나는, 여행 초반부에는 경비를 절약해야만 했다. 그래서 에어콘이 없는 ‘Fan room’ 도미토리를 체크인했다. 에어콘룸과 팬룸은 가격차이가 두배나 났기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견딜 수 있을거라 믿었다. 제아무리 더워봐야 팬티바람에 웃통벗고 선풍기 밑에서 자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1시를 향해 가는데, 실내의 열기는 도무지 누그러지질 않았다. 천정 선풍기에서는 히터처럼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숫자를 세기도 했고,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은 허사였고, 침상이 땀으로 젖어 물바다가 되었을 즈음에야 내가 미친짓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 프론트에 가서 에어콘룸에 남아 있는 베드가 있는지 확인을 했고, 2층침대의 2층자리가 하나 남아 겨우 대피할 수 있었다.
지금도 더운 밤이면 천정에서 무심하게 돌아가고 있던 그날의 실링팬이 악몽처럼 떠오른다. 어슴프레한 실내등 불빛속에 실링팬의 날개는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분절되어 보였고, 희미한 빛 속에서 점점 더 몽롱하게 보였다. 하시시를 피우면 이런 기분일까? 하지만 담배도 안 피우는 나는, 하시시는 맛을 본 적도 없다.
그날 나는 뫼르소가 왜 권총을 쏘았는가를 깨달았다. 태양이 뜨거우면 사람에게 총을 발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살인은 나의 탓이 아니다, 그저 태양의 책임 일 뿐이었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가수 비도 '환하게 비추는 태양이 싫어 태양이 싫어'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이집트에는 사우디 사람이 아스완에서 와서 더위먹고 죽었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아스완의 더위는 살인적이다. 아스완 댐이 있는 이 곳은,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게 뜨거운 지역이다.
그렇게 뜨겁다는 아스완에 8월달에 여행을 했다. 이집트는 여러번 다녔었지만, 그때 8월의 아스완은 나도 처음이었다.
아스완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5시면 이미 상점들이 문을 열고, 통행인이 늘어난다. 오전 일찍부터 업무와 상업이 개시되고, 오전 11시가 되면 모두 상점의 셔터문을 내린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집에 보내며, 우체국과 은행도 문을 닫는다. 이렇게 문을 닫은 아스완 사람들은 낮 시간에는 어딘가 그늘에서 낮잠을 잔다. 오전 7시에 이미 35도가 넘고, 11시가 넘으면 45도가 되기 때문이다. 제일 뜨거운 1-2시 사이에는 50도에 육박하는 날도 있다.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대개 2시간 전후인데, 아스완의 낮잠 시간은 무려 5-6시간쯤 된다. 낮시간에는 식당도 닫기 때문에 어디 가서 뭘 먹을 수도 없다. 이런 뜨거운 한낮에는 길바닥에 개도 한 마리 안 보인다. 어느 생명체가 이런 기온에 밖에 돌아다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뜨거운 기온에 아스완 거리에 움직이는 생명체들이 종종 있다. 그것은 한국인 이라는 생명체들이다. 한국인들은 덥다고 입에 욕을 달고 다니면서, 그 기온에서도 둥둥 떠 다닌다. 과연 한국인은 특이하다.
이렇게 뜨거울 때는 공기 조차 다르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한줄기 바람이 들어오면 커텐이 흔들리고, 실내 공기도 움직인다. 뜨거울 때는 공기도 진득 진득 해 진다. 매우 건조한데도 불구하고 공기는 마치 액체처럼 나의 몸을 감싸고 돈다. 아스완에서 잠깐이지만 섭씨 52도를 경험했다.
‘아, X같이 덥네’를 주문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한국인이라는 생명체들이 모이는 곳은 나일강가에 있는 맥도널드이다. 낮시간에 문을 연 곳이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고, 맥도널드 바깥으로 보이는 나일강과 엘리펀트섬이 멋지기 때문이다.
맥도널드에 들어서는 순간, ‘으악 추워~’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맥도널드 실내는 마치 한겨울처럼 추웠고, 직원들은 파란색 공장점퍼를 입고 있었다. 흔히 공장점퍼라고 불리는 옷은 약간 두께가 있고 긴팔이어서 늦가을과 초겨울에 입을 만한 의복이다.
직원들이 그런 공장점퍼를 유니폼으로 입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추우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감자와 콜라를 마시며 땀이 식고 나자, 그제서야 벽에 걸린 온도계가 보였다.
온도계는 섭씨 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에서 실내기온 35도는 덥다고 난리 날 기온인데, 이곳의 35도는 마치 한겨울처럼 추웠다. 나는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한참 생각을 해야 했다. 내 머리가 고장났나? 아니면 온도계의 고장인가? 드디어 내가 미친것인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니, 창밖은 섭씨 50도이고, 실내는 35도이다. 온도차가 15도가 난다. 대개 실내가 실외 기온보다 5도가 낮으면 시원하다고 느낀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에어콘 설정을 실외보다 5-8도 정도 낮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외보다 무려 15도가 낮으니, 한겨울처럼 춥다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아스완에 체류하는 동안 매일 낮에 맥도널드를 갔지만, 매번 그런 현상을 경험했다.
아스완에서 체류하던 시절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았다. 뜨겁고 차가운것도 마음먹기 나름이고 마음의 장난이다. 요새처럼 뜨거운 날에는 추워서 벌벌떨고 있던 섭씨 35도의 맥도널드를 생각한다. 섭씨 35도는 충분히 추울 수도 있는 기온이다.
꽤 오래전 일 이다. 여름 8월에 그리스 아테네에 갔다.
그리스에서는 한달 살기만 세 번쯤 했던 터라, 이미 구석구석 낯익은 도시였다.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은 전체가 바위여서, 한낮에는 관광객들의 입장을 규제한다. 돌이 너무나 뜨겁게 달궈지기 때문에, 인파에 밀리다보면 사고가 날 수 있어서다. 한낮에는 계단 돌멩이들도 만지지 못할만큼 뜨거워진다.
아크로폴리스가 입장 통제되면, 라키비토스 언덕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 관례다. 이 곳은 한낮 통제도 없고, 여기서 바라보는 파르테논 신전과 아테네 전경이 멋지기 때문이다.
라키비토스 언덕 정상에는 정말 예쁜 정교회 교회가 있고, 인생사진 남기기도 좋은 곳이다. 올라가는 길목의 거리는 꽤 좋은 카페와 옷가게들이 있어서 눈요기 하기도 좋다. 더운 날씨에 쉬엄 쉬엄 걸어 올라서 라키비토스 정상에 닿았다.
뜨겁지만 수고해서 올라갈 만한 곳이다.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떤 한 사람이 눈에 띈다. 젊은 아가씨인데, 아무리 봐도 제시카 알바와 닮았다. 친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키와 몸매, 피부색까지도 흡사했다. 군계일학이라, 그녀에게서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소심한 에겐남인 나는 멀리서 그녀를 몇장 도촬하고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 눈이 마주쳤다.
원래 스타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녀는 화중선畵中仙 일 뿐이다. 그날 그렇게 그녀를 내 가슴에 묻고 라키비토스를 내려왔다.
그후 며칠이 지나, 피레우스 항구에서 산토리니 가는 페리를 탔다. 산토리니에 가서 오토바이를 실컷 타려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배는 산토리니까지 1박2일을 항해하는데, 이 배의 갑판이 그렇게도 유명하다는 소문을 들어서 기대가 되었다.
부산스러운 승선 절차를 거쳐 갑판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명당 자리는 쟁탈전이 치열해서, 일찍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지중해를 떠다니는 페리의 갑판은 젊은이들의 별천지다. 낮에는 선탠하고, 밤에는 별을 보며 누워서 파도소리와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신다.
명당 자리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보장되면서, 낮에는 바다가 잘 보이고, 밤에는 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으며 한밤중에 부는 바닷바람을 피할수도 있는 자리다.
적당한 명당을 찾아 자리를 펴고 누우니 항해가 시작됐다. 출항하고 얼마 안되어 석양이 되었고, 갑판 난간에는 석양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날 갑판의서쪽 방향 난간에서 라키비토스의 제시카알바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아는척 하는 듯한 눈인사를 한다. 라키비토스에서 내가 그렇게도 티를 냈었던가? 나를 기억하다니. 몹시 부끄러웠다. 그녀도 혼자 여행중 인 것 같았다.
그녀의 자리는 내 자리에서 멀지 않았고, 고개만 들면 보이는 위치였다. 그날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가끔 쳐다보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산토리니에 도착했고, 예약해 둔 호텔로 갔다. 호텔앞 바이크 렌탈샵에서 오토바이를 빌렸고, 산토리니 뿌시기에 돌입했다. 별로 크지 않은 산토리니섬에서 하루에 100km 가까이 달리곤 했으니, 꽤나 들쑤시고 다닌 셈이다.
여행자들은 이아 마을의 석양을 최고로 치고, 석양때 이아 마을 뷰포인트에 가면 발 디딜틈도 없다. 하지만 섬의 정반대 지역인 아크로티리쪽 등대에 석양을 보러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며칠 지나서 석양을 보러 저녁때 아크로티리 등대에 갔다. 이날은 몹시 더웠는데, 건조한 산토리니에서도 꽤나 견디기 힘들만큼 뜨거운 날 이었다. 오토바이로 달리고 있으면, 뜨거운 바람에 얼굴과 팔이 익을 정도였다.
더위 안 먹으려고 바이크 뒤편에 여러통 싣고 다닌 생수를 꽤나 많이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크로티리 등대에 도착하니, 불과 십여명 정도의 서양 사람들이 석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중에 제시카알바가 있었다.
배에서 인사한 사이라고, 제법 반가워 해 준다. 네가 제시카알바 닮아서 기억한다고 하니까, 그냥 자기 이름을 제시카로 부르라며 웃는다.
옹기종기 서서 석양을 보고나니 해가 졌고, 조금 미적대다 보니 아크로티리에서 피라 마을까지 가는 마지막 버스가 떠나버렸다. 이미 컴컴해 진 아크로티리, 그녀에게 나의 오토바이 뒤편에 탈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좋다고 한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그날, 제시카알바를 뒤에 태우고 산토리니 국도를 밤늦게까지 달렸다. 그날 밤 라이딩에서 천공의 성 라퓨타의 테마 ‘기미오노세떼(君をのせて)’를 흥얼댔던 것 같다. 그날밤 아크로티리에서 출발해서 이아마을에 가서 야경을 보고 다시 피라마을까지 돌아오는 장거리 라이딩은, 몹시 더운 날 이었음에도 하나도 덥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서로 통성명도 안하고 연락처도 모른채 그렇게 헤어졌다. 이름을 굳이 묻지 않은 이유는 나의 머릿속에 그녀를 제시카알바로 기억해 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포선라이즈에서 에단호크와 줄리델피가 별 약속도 안하고 시크하게 헤어지는 모습이 멋있어서, 나도 한번쯤 그래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리터급 바이크의 엔진은 발열이 심해서, 여름이면 난로를 안고 달리는 것처럼 뜨겁다. 그래서 대형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은 엔진과 시트 사이에 가죽으로 된 가리개를 부착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뜨거운 바람이 사타구니에 직접 닿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견딜만 해 진다. 여름의 바이크 라이딩은 그만큼 괴롭다.
한국에서 몹시 더운날 도로를 달리다보면 가끔씩은 산토리니의 뜨거웠던 해변도로가 떠오른다. 40도가 넘는 여름이었지만 그때는 뜨겁지 않았다. 당시 젊었던 내 심장의 온도가 기온보다 높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그녀가 제시카알바 라고 믿으며 살고 있다. 내가 제시카알바라고 믿으면 제시카알바 인 것이다. 네번째 동방박사 알타반도 결국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았던가.
믿는자에게 복이 있나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