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버튼의 고스걸 웬즈데이

by 한병철 Mikhail Khan

웬즈데이, 음악이 빚어낸 고딕적 미학


네버모어 아카데미의 고풍스러운 발코니, 한 소녀가 칠흑 같은 드레스와 양 갈래로 땋은 머리, 좀처럼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으로 첼로를 품에 안는다. 이내 그녀의 활이 현 위를 격렬하게 미끄러지자, 익숙하면서도 전혀 다른 선율이 밤공기를 가른다. 롤링 스톤스의 1966년 작, "Paint It, Black". 베트남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시대, 허무와 분노에 찬 청춘의 저항을 담았던 사이키델릭 록의 정수가, 한 소녀의 첼로 위에서 장엄하고 비장한 고딕 교향곡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하나의 선언과도 같았다. 세상의 모든 색을 검게 칠해버리고 싶다는 록 음악의 저항 정신이, 클래식이라는 가장 우아한 틀 안에서 완벽하게 재창조되는 순간. <웬즈데이>의 세계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캐릭터의 영혼을 조각하는 조각칼이자, 그녀가 세상을 향해 내뱉는 가장 정제된 언어임을 이 장면은 명확히 보여준다.


팀 버튼의 오랜 영화적 동지인 작곡가 대니 엘프먼의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오프닝 테마가 드라마의 문을 열면, 시청자는 곧바로 웬즈데이의 음악 세계로 초대된다. 팀 버튼의 세계에서 음악은 언제나 제3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웬즈데이>의 사운드트랙은 그 정점에 서 있다. 특히 제작진이 선택한 ‘록 음악의 클래식 재해석화' 라는 파격적인 카드는, 수십 년간 평면적인 '괴짜 소녀'의 이미지에 갇혀 있던 웬즈데이 아담스라는 캐릭터를 단숨에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려냈다. 그녀가 연주하는 첼로는 단순한 악기가 아닌, 감정을 드러내는 데 극도로 서툰 그녀의 유일한 목소리다. 분노, 슬픔, 고독, 그리고 세상에 대한 냉소와 같은 내면의 폭풍우를 언어 대신 선율로 토해낸다. 이 에세이는 웬즈데이의 플레이리스트를 한 곡 한 곡 면밀히 따라가며, 현의 반란 뒤에 숨겨진 그녀의 검은 심장을 해부하고자 한다.




각 장면 속에서 숨 쉬는 웬즈데이의 음악


<웬즈데이>의 사운드트랙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대니 엘프먼과 크리스 베이컨이 작곡한 오리지널 스코어, 웬즈데이가 직접 연주하는 클래식 및 록 편곡, 그리고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다양한 '니들 드롭(Needle Drop)'삽입곡이다. 이들 곡은 단순히 장면을 채우는 것을 넘어, 캐릭터의 심리와 서사의 흐름을 완벽하게 반영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1. 웬즈데이의 목소리, 첼로와 피아노 연주곡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 "Paint It, Black" (첼로 연주)

수록 장면 : 1화, 웬즈데이가 기숙사 발코니에서 첼로를 연주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

감독의 의도 및 해석 : "붉은 문을 보고 검게 칠하고 싶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웬즈데이의 세계관 그 자체를 요약한다. 다채로운 색상과 평범한 행복을 거부하고, 오직 흑백의 고딕적 세계관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그녀의 내면을 대변하는 선언과도 같다. 팀 버튼과 제작진은 이 곡을 통해 웬즈데이가 단순히 우울한 소녀가 아니라, 자신의 어두운 취향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주체적인 아티스트임을 초반부터 각인시킨다.

원곡과의 차이점 : 믹 재거의 반항적인 보컬과 사이키델릭한 시타르 연주가 특징인 원곡과 달리, 웬즈데이의 첼로 버전은 훨씬 더 장엄하고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빠르고 격정적인 운궁(bowing)은 그녀 내면의 격렬한 감정과 분노를, 애절하게 이어지는 선율은 고독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는 단순한 커버를 넘어, 원곡의 '반항'이라는 정신을 웬즈데이의 '고딕적 비장미'로 재창조한 것이다.

평가 : 이 장면은 웬즈데이 캐릭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평론가들은 익숙한 록 명곡을 고전적인 악기로 편곡함으로써 캐릭터의 복합적인 매력(고전적 우아함과 현대적 반항심)을 성공적으로 압축했다고 극찬했다.


메탈리카(Metallica) - "Nothing Else Matters" (첼로 연주)

수록 장면 : 시즌 1의 마지막 장면, 웬즈데이가 첼로로 연주하는 곡.

감독의 의도 및 해석 : 이 곡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아웃사이더의 자기 확신을 담은 노래다. 웬즈데이는 이 곡을 통해 네버모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연주한다. 흥미로운 점은, 원곡이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것과 달리, 웬즈데이의 연주는 철저히 고독한 독백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성장과 미묘한 감정 변화를 상징하는 음악적 장치로 기능하며, 'Paint It, Black'이 외향적인 분노의 표출이었다면, 'Nothing Else Matters'는 내향적인 자기 고백에 가깝다. 이 두 곡을 통해 제작진은 웬즈데이가 단순히 어두운 소녀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킬 줄 아는 깊이 있는 아티스트임을 분명히 한다.

비발디(Vivaldi) - "L'inverno" (사계 중 '겨울' 1악장)

수록 장면 : 3화, 포컵(Poe Cup) 보트 경주를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될 때 연주.

감독의 의도 및 해석 : 비발디의 '겨울'은 차갑고 날카로우며,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격정적인 선율이 특징이다. 이는 웬즈데이의 냉철한 지성과 예측 불가능한 행동, 그리고 목표를 향한 집요함을 완벽하게 상징한다. 평화로운 네버모어 아카데미에 불어닥친 '겨울'과도 같은 그녀의 존재감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클래식에 대한 깊은 조예는 그녀가 단순한 반항아가 아닌, 뛰어난 재능과 지성을 갖춘 인물임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크랜베리스 - Zombie (피아노 버전)

수록 장면 : 시즌2에서 음악선생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곡

평론가들은 시즌2에서 만약 이 곡이 사용된다면, 시즌 1의 음악적 성공을 이어가는 또 다른 상징적인 재해석이 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예상대로 피아노 버전의 Zombie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Paint It, Black'과 'Nothing Else Matters'가 그랬듯, 웬즈데이의 새로운 심리적 국면을 음악으로 표현해낸 팀버튼에 대한 찬사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즌1에서의 첼로 연주 "Paint It, Black" 만큼이나 앞으로 회자되리라 생각한다.



2.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니들 드롭'

더 크램프스(The Cramps) - "Goo Goo Muck"

수록 장면:4화, 네버모어 아카데미의 댄스파티 'Rave'N'에서 웬즈데이가 무표정으로 독특한 춤을 추는 장면.

감독의 의도 및 해석 : 이 곡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1981년 발표된 이 곡은 펑크, 로커빌리, 호러 감성이 뒤섞인 '사이코빌리(Psychobilly)'장르의 대표곡이다. 주류 팝 음악이 흐르는 파티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 괴짜 같은 곡에 맞춰 춤을 추는 웬즈데이의 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의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평가 : 이 장면은 제나 오르테가가 직접 안무를 구상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으며, 소셜 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인 바이럴을 일으키며 <웬즈데이> 신드롬의 기폭제가 되었다. 40년도 더 된 곡이 각종 음원 차트에 재진입하는 기현상을 낳았으며,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캐릭터와 음악, 연기가 완벽하게 삼위일체를 이룬 명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ien"

수록 장면 : 1화, 웬즈데이가 남동생을 괴롭힌 학생들에게 피라냐를 푸는 장면의 배경음악.

감독의 의도 및 해석 : "아니,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라는 제목의 이 샹송은 웬즈데이의 행동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자신의 복수에 한 치의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없는 그녀의 단호함이 에디트 피아프의 힘 있는 목소리와 결합되어 기괴하면서도 통쾌한 블랙 코미디를 완성한다. 우아하고 고전적인 샹송을 잔혹한 복수극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함으로써 팀 버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유머 감각을 극대화했다.

로이 오비슨(Roy Orbison) - "In Dreams"

수록 장면 : 유진 오팅거가 웬즈데이에게 자신의 벌 동아리를 소개하고 함께하는 장면에 주로 사용.

감독의 의도 및 해석 : 몽환적이고 애틋한 멜로디의 이 곡은 웬즈데이의 차가운 세계에 들어온 유일한 온기, 유진의 순수하고 낭만적인 캐릭터를 대변한다. 둘의 독특한 우정과 연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 - "Don't Stop"

수록 장면:부모님의 과거와 얽힌 살인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장면에 삽입.

감독의 의도 및 해석 : "어제를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마"라는 긍정적인 가사가, 어두운 과거의 비밀을 파헤치는 장면에 사용되면서 오히려 섬뜩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처럼 <웬즈데이>는 단순히 '힙한' 곡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가사와 멜로디가 장면에 어떻게 기능하고 충돌하는지를 세심하게 계산하여 극의 깊이를 더한다.


왜 록 음악을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했는가?

<웬즈데이>에서 가장 혁신적인 음악적 시도는 단연 록 음악의 클래식 편곡이다. 이는 단순한 이종결합을 넘어, '웬즈데이 아담스'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다.

내면적 이중성의 표현 : 첼로는 깊고 어두운 음색을 지녀 '고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시에, 클래식 악기로서의 '우아함'과 '지성'을 상징한다. 반면, 록 음악은 '저항', '분노', '청춘의 반항'이라는 에너지를 담고 있다. 웬즈데이는 아담스 가문의 일원으로서 고전적인 가풍을 이어받았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의 규범에 저항하는 10대 소녀다. 첼로로 연주되는 록 음악은 바로 이 '고전적 아웃사이더(Classical Outsider)'로서의 정체성, 즉 그녀의 내면적 이중성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감정의 예술적 승화 : 웬즈데이는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표정으로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에게 첼로는 유일한 감정의 배출구이자 소통의 창구다. "Paint It, Black"을 격정적으로 연주하는 행위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환멸을 언어 대신 예술로 폭발시키는 것과 같다. 이는 그녀의 어둠이 파괴적인 충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캐릭터에 깊이를 더한다.

드라마에 끼친 영향 : 이러한 음악적 장치는 <웬즈데이>를 단순한 하이틴 미스터리물에서 독창적인 스타일을 지닌 '고딕 누아르'로 격상시켰다. 첼로 선율은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미스터리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며, 시청자들이 웬즈데이의 시선과 감정선을 따라가도록 이끄는 강력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또한, 익숙한 명곡의 파격적인 변주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지적인 유희를 선사하며 드라마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팀 버튼이 창조하고 싶었던 ' 고스걸 웬즈데이’

팀 버튼에게 '웬즈데이'는 그의 오랜 창작 세계를 관통하는 '아웃사이더'의 완결판과도 같은 캐릭터다. 가위손 에드워드, 비틀쥬스, 유령 신부의 에밀리 등 그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세상과 불화하는 외톨이였다. 팀 버튼은 <웬즈데이>를 통해 기존의 아담스 패밀리 시리즈에서 단편적인 '괴짜 소녀'로만 그려졌던 웬즈데이를,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관과 능력을 지닌 주체적인 히로인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했다.

그가 창조한 웬즈데이는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다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힘의 원천으로 삼는다.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성'의 기준을 비웃고, 자신만의 규칙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음악은 이러한 팀 버튼의 비전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대니 엘프먼의 기괴하고 아름다운 스코어는 웬즈데이의 세계에 판타지를 더하고, "Goo Goo Muck"과 같은 니들 드롭은 그녀의 독보적인 취향과 독립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첼로로 연주하는 록 음악은 "나는 너희와 다르지만, 나의 다름은 천박한 반항이 아닌 고상하고 예술적인 선언이다"라고 외치는 웬즈데이의 자존감을 완벽하게 대변한다.


웬즈데이의 캐릭터는 고스 록의 미학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녀의 검은 의상, 짙은 아이라인, 무표정한 얼굴은 고스 록의 시각적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다.

고스 록(Goth Rock)은 1970년대 후반 영국의 펑크 록에서 파생된 음악 장르인데, 음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어두운 가사, 그리고 멜로디와 리듬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특히, 롤링 스톤스의 "Paint It, Black"을 첼로로 연주하는 장면은 웬즈데이의 고스적인 면모를 음악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이다. 원곡의 거칠고 반항적인 펑크 사운드가 첼로의 음울하고 비장한 선율로 바뀌면서, 웬즈데이의 내면에 숨겨진 고독과 허무함이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웬즈데이>의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BGM)을 넘어, 캐릭터의 심장을 뛰게 하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특히 첼로 현 위에서 재탄생한 록의 선율은 팀 버튼이 그리고자 했던, 차갑지만 뜨겁고,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며, 세상의 모든 색을 거부하지만 누구보다 강렬한 자신만의 색을 지닌 새로운 시대의 고딕 아이콘, '웬즈데이 아담스'의 영혼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위대한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웬즈데이 시즌2는 1, 2부로 나뉘어 있다. 시즌2의 1부에서는 크랜베리스의 Zombie로 우리를 놀라게 했는데, 오늘 9월 3일에 공개되는 시즌 2의 2부에서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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