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은 없다

시오니즘의 신화, 이스라엘의 기원을 다시 묻는다

by 한병철 Mikhail Khan



1. 분쟁의 뿌리, 역사의 소환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은 미사일을 주고 받으며 전쟁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여하며 개입하면서 휴전을 외쳤지만, 사실상 휴전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오늘날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선다. 그 심연에는 2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의 소유권 주장과 민족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 잡고 있다. 시오니즘, 즉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이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민족 국가를 재건한다는 이념은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을 정당화하는 핵심 서사이다. 이 서사의 중심에는 “우리는 2천 년 전 로마에 의해 쫓겨난 고대 유대인의 직계 후손이며, 따라서 이 땅에 대한 역사적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주장이 굳건히 박혀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과연 역사적, 혈통적으로 타당한가? 현대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특히 건국을 주도했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정말 고대 유대 왕국의 혈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후손들인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과연 혈통에 기반하는가, 아니면 종교와 문화에 기반하는가?


본 컬럼은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주류 학계의 최신 연구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시오니즘이 내세우는 ‘혈통적 연속성’과 ‘역사적 권리’라는 신화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현대 이스라엘을 ‘고대 국가의 부활’이 아닌 ‘20세기에 탄생한 정치체’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분쟁의 본질을 이해하고, 신화가 아닌 현실에 기반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는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신화의 장막을 걷어내고, 그 안에 감춰진 진실의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지적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2. 끊어진 고리 -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기원과 혈통의 신화



시오니즘의 핵심은 ‘귀환’ 서사다. 2천 년간의 유랑(Diaspora) 끝에 마침내 ‘조상의 땅’으로 돌아온다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러나, 그 주인공인 ‘돌아온 유대인’이 과연 ‘떠나간 유대인’과 동일한 실체인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흔들린다. 특히 이스라엘 건국과 정치를 주도해 온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기원은 이 질문의 핵심에 있다.


1) 아슈케나지 유대인,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아슈케나지 유대인(Ashkenazi Jews)은 중세 시대 독일의 라인란트(Rhineland) 지역에 정착했던 유대인 공동체와 그 후손을 지칭한다. 이들은 이후 동유럽, 즉 폴란드,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로 이주하며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했다. 11세기경 약 2만 5천 명에 불과했던 이들은 20세기 초에는 8백만 명을 넘어서는 경이로운 인구 증가를 보이며 전 세계 유대인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시어도어 헤르츨(Theodor Herzl),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 등 시오니즘 운동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의 초기 정치 엘리트 대부분이 바로 이 아슈케나지 출신이었다.


따라서 현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논할 때,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기원을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시오니즘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은 2천 년 전 로마 제국에 의해 유대(Judea) 땅에서 쫓겨나 유럽으로 흘러들어 간 유대인들의 직계 후손이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와 과학은 이 단순한 직선적 서사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은 ‘혈통’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2) 하자르 왕국 가설 - 기각되었으나 의미심장한 이설(異說)

20세기 중반, 아서 케슬러(Arthur Koestler)는 그의 저서 『제13 지파(The Thirteenth Tribe)』를 통해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기원에 대한 충격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그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대다수가 중동의 셈족 혈통이 아니라,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걸쳐 존재했던 튀르크계 유목 제국인 ‘하자르 카간국(Khazar Khaganate)’의 후손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자르 왕국은 8세기경 왕과 귀족층이 유대교로 집단 개종한 매우 특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케슬러는 이 하자르 왕국이 10세기 이후 멸망하면서 그 유민들이 동유럽으로 흩어졌고, 이들이 오늘날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인구적 기반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아슈케나지 유대인과 고대 유대 땅 사이의 혈통적 연결고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시오니즘의 ‘조상의 땅으로의 귀환’이라는 명분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자르 가설은 오늘날 주류 학계에서 학술적으로 완전히 부정되었다. Y염색체(부계)와 미토콘드리아 DNA(모계), 그리고 전체 유전체를 분석한 수많은 현대 유전학 연구들은 한결같이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하자르인의 후예인 캅카스 및 튀르크계 민족이 아니라, 다른 유대인 집단(세파라딤, 미즈라힘) 및 고대 중동(레반트) 지역의 민족과 가장 높은 유전적 유사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언어학적으로도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언어인 ‘이디시어(Yiddish)’는 튀르크어의 흔적이 거의 없는, 중세 독일어에 기반한 게르만어의 한 갈래로 분류된다.


하자르 가설은 기각되었다. 그러나 이 가설의 등장과 퇴장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혈통이 아닌 ‘개종’을 통해서도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기원이 단일하고 순수한 혈통의 문제가 아님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주류 학계가 하자르 가설을 기각하고 채택한 ‘라인란트 가설’ 역시 순수한 혈통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3) 라인란트 가설과 혼혈의 역사

주류 학계가 지지하는 ‘라인란트 가설(Rhineland Hypothesis)’은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조상이 로마 시대에 유대 땅을 떠나 이탈리아를 거쳐 독일 라인란트 지역으로 이주한 소규모 공동체라고 설명한다. 이들이 이후 동유럽으로 이주하여 인구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이 곧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2천 년 전 고대 유대인의 혈통을 ‘순수하게’ 보존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유전학 연구는 정반대의 사실을 말해준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부계 혈통(Y염색체)은 중동 기원의 특성을 강하게 보이지만, 모계 혈통(미토콘드리아 DNA)의 상당 부분은 유럽 현지인, 특히 남유럽 여성의 것임이 밝혀졌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대 유대 땅을 떠난 소수의 유대인 남성들이 유럽 각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현지 유럽 여성들과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했음을 시사한다. 2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유럽 각지에서 살아오면서 지속적인 혼혈이 이루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로마 제국 시대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대인 공동체가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채 살아왔다는 것은 역사적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2천 년 전 유럽 땅으로 흩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고대 유대인들은 이미 유럽 각지에서 현지인들과 혼혈되어 혈통의 순수성은 사라졌다. ‘순혈 유대인’이라는 개념은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신화에 불과하다. 그들의 정체성을 지탱해 온 것은 혈통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었다.



4) 유대교 : 혈통이 아닌 믿음의 공동체


유대교는 본질적으로 혈통주의가 아닌 속교(屬敎)주의에 가깝다. 즉, 유대교의 율법(할라카)에 따라 정식 절차를 거쳐 개종하면, 그의 혈통이나 인종과 관계없이 누구나 유대인으로 인정된다. 이는 유대교가 민족 종교의 성격을 띠면서도, 동시에 신앙 공동체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유대교로 입교한다면 그 순간부터 유대인이 된다.

역사적으로도 유대교로의 개종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도 수많은 이들이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과 윤리관에 매료되어 유대교로 개종했다. 앞서 언급한 하자르 왕국의 집단 개종은 그 극적인 사례이다. 물론 유대교는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선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지는 않았지만, 공동체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이러한 유대교의 본질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인종적·혈통적 개념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신앙과 율법, 문화를 공유하는 종교·문화적 공동체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시오니즘은 이러한 유대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민족주의적 혈통주의를 덧씌워 ‘유대 민족’이라는 인종적 개념을 발명해 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믿는 유대교의 역사와 교리 속에서도, 그리고 현대 과학의 연구 결과 속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허상일 뿐이다.


3. 정치체의 탄생 - 현대 이스라엘 건국의 실체


혈통적 연속성이라는 신화가 허구임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현대 이스라엘의 탄생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고대 국가의 부활이 아니라, 20세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탄생한 하나의 새로운 정치체로 말이다.


1948년 5월 14일 유태인 지도자 벤 구리온(단상 가운데 일어나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 건국 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단상 뒷쪽의 초상화는 시오니즘의 선구자 테오도르 헤르츨.


1) 20세기 지정학의 산물, 이스라엘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은 2천 년 전의 약속이나 혈통적 권리의 실현이 아니라, 20세기 초중반의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사건이다. 그 배경에는 제국주의의 종식,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서구 열강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시작된 시오니즘 운동은 처음에는 소수의 지식인과 활동가들의 이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아랍 민족주의와 유대인 시오니즘을 동시에 지원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1917년의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은 영국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고향(National Home)’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약속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는 팔레스타인에 이미 수 세기 동안 살아온 아랍인들의 권리를 무시한, 제국주의 열강의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레반트 지역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비극은 시오니즘에 강력한 도덕적, 정치적 명분을 부여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하자, 유대인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될 독립 국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국제 사회의 폭넓은 공감을 얻게 된 것이다.


결국, 전쟁이 끝난 후, 영국과 연합군의 지원 속에서 유엔은 1947년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채택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토지의 90% 이상을 소유하고 있던 아랍인들에게는 영토의 43%를, 인구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토지의 10% 미만을 소유했던 유대인에게는 56%의 땅을 배분하는 지극히 불공정한 결정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유대인이라는 것은 2차대전 이후에 영국과 연합군의 지원을 받아서, 현재 레반트 땅을 불법으로 차지하고 정부를 세운 집단이다. 그들이 2천 년 전에 패망한 고대 유대 왕국의 정통 후손으로 자동적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그들의 국가는 고대의 영광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20세기 국제 정치의 힘의 논리와 지정학적 역학 관계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2)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정치 집단


현대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민족 국가(Nation-State)’와 ‘종교 국가(Religious State)’의 불안정한 결합이다.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유대 민족을 위한 민주 국가’로 규정한다. 그러나 여기서 ‘유대 민족’의 정의는 혈통이 아닌 유대교 신앙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귀환법(Law of Return)’은 전 세계 모든 유대인(유대교로 개종한 사람 포함)에게 이스라엘 시민권을 부여하지만,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비유대인(팔레스타인 아랍인 등)에게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현대 이스라엘이 고대의 순수한 혈통을 계승한 민족 공동체라기보다는, 유대교라는 종교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뭉친 하나의 강력한 정치 집단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결속력은 공유된 혈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홀로코스트라는 공유된 트라우마, 시오니즘이라는 공유된 정치 이념, 그리고 유대교라는 공유된 종교·문화적 배경에서 나온다.


따라서 이들이 예수 생전에 존재했던 고대 유대인의 직계 후손이라고 보는 것은 역사적 비약이다. 고대 유대 사회는 헤롯 왕가,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젤롯파 등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분파로 나뉘어 있었으며, 그 사회 구조와 신앙 체계는 현대 이스라엘과 매우 다르다. 2천 년의 단절을 뛰어넘어 현대의 정치 집단을 고대의 민족과 동일시하는 것은, 현재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거를 도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3) 20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국가


결론적으로, 현재 이스라엘을 고대 유대인과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혈통적 연속성은 과학적으로 부정되었으며, 종교·문화적 정체성 역시 2천 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현대 이스라엘은 고대 국가의 부활이 아니라, 19세기 유럽 민족주의의 영향 아래 탄생한 시오니즘이라는 정치 이념을 동력으로 삼아, 20세기 중반 국제 정치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정치 집단이자 정부라고 보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화의 안개를 걷어내고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안보와 생존권이 중요하듯, 수 세기 동안 그 땅에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과 자결권 역시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적 접근은 ‘신이 약속한 땅’, ‘조상의 땅’이라는 신화적 명분이 제거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4. 공허한 메아리, 시오니즘을 넘어서


1) 시오니즘, 역사와 혈통의 신화가 낳은 이념

이제 우리는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시오니즘의 근간을 이루는 두 개의 기둥, 즉 ‘혈통적 연속성’과 ‘역사적 권리’는 모두 허구적인 신화 위에 서 있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기원은 중동에 뿌리를 두고 있을지언정, 2천 년간의 유럽 역사 속에서 현지인들과의 지속적인 혼혈을 통해 그 혈통적 순수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순혈 유대인’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대인의 정체성은 혈통이 아닌 종교와 문화라는 유동적인 토대 위에 세워져 왔다.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은 고대 국가의 계승이 아닌, 20세기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지정학적 격변이 낳은 정치적 산물이다. ‘귀환’이라는 서사는 2천 년간 단절되었던 역사를 인위적으로 봉합하고, 현재의 영토 점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정치적 발명품에 가깝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들 위에서 우리는 시오니즘이라는 것은 공허하며, 역사적으로나 혈통적으로 순수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시오니즘은 19세기 유럽의 민족주의 모델을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적용하여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이를 고대의 역사와 결부시켜 신성한 영토권을 주장한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유대인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했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그 땅에 살고 있던 다른 민족에게는 추방과 고통의 역사를 안겨주었다.


5. 신화를 넘어 현실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은 총과 칼이 아닌, 역사에 대한 정직한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현대 이스라엘을 ‘2천 년 만에 부활한 고대 왕국’이라는 신화적 존재가 아닌, ‘20세기에 탄생한 주권 국가’라는 현실적 존재로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역시 동등한 주권을 가진 정치 실체로 존중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우리 한민족의 시원은 천산 그 어딘가 였다고 한다. 환인이 환웅에게 땅으로 내려가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고 말한 그 곳은, 어쩌면 키르기즈스탄 이식쿨 호수 근처의 출폰아타라는 믿을 수 없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 만약 21세기 현대에 키르기즈스탄 길기트족의 어떤 집단이 한반도에 와서, 이 땅은 수천년전에 갈라진 우리 후손이 세운 나라이니 앞으로 우리가 차지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주장은 신문에 가십거리로도 보도되지 않을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시오니스트 유태인들이 레반트 땅을 차지할 때, 이런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1948년 5월 14일에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있다.


‘누가 더 오래된 주인인가’를 따지는 소모적인 역사 논쟁은 이제 멈춰야 한다. 혈통의 순수성과 고대의 권리를 내세우는 신화는 오직 증오와 갈등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다. 지금 그 땅에 살고 있는 두 민족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정의와 평등의 원칙 위에서, 신화가 아닌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시오니즘이라는 거대한 신화의 공허한 메아리가 잦아들 때, 비로소 평화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공간이 열릴 것이다.


유태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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