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새로운 미래
새벽녘, 태권도장 무술 수련생들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편, 경기도 소도시 아파트 종합상가 지하의 크로스핏 체육관에서는 젊은이들이 ‘와드(WOD)’를 수행하며 땀을 흘린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이 두 풍경은, 동양의 무술과 서양의 스포츠가 각각 어떤 교육 철학과 조직 문화를 가지고 발전해 왔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각 지역의 뿌리 깊은 종교적 전통이 드리워져 있다.
동양의 무술 교육은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선 깊은 정신 수양을 강조한다. 그 방식은 불교 사찰의 수행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절대적인 존경과 헌신을 바탕으로 하며,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의심 없이 따르고 끊임없는 반복 수련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고자 한다. 마치 불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수행을 통해 해탈을 추구하듯 말이다.
동양에서는 무술 체육관을 ‘도장(道場)’이라고 부르며, 도장의 최고 책임자를 ‘관장(館長)’이라고 칭한다. 본래 ‘도장(道場)’이라는 단어는 불교 용어이다.
'도장(道場)'이라는 용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흔히 무술을 수련하는 곳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그 기원은 깊이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도장'은 원래 불교 용어인 '도량(道場)'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의미와 발전 과정은 불교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장(道場)' 혹은 불교 원음인 '도량(道場)'의 가장 근원적인 의미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장소"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인도 붓다가야(Buddhagaya)에 있는 보리수 아래의 '금강좌(金剛座)'를 의미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곳에서 고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셨기에, 그곳은 불도를 성취하는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초기 불교에서 '도량'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진리를 깨닫는 장소', '불도를 성취하는 장소'라는 깊은 의미를 내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량'의 의미는 점차 확장되었다.
초기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특정 장소를 지칭했지만, 이후에는 부처님이나 보살님이 머무는 신성한 공간, 즉 사찰(寺刹) 자체를 '도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수행하는 승려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에, 깨달음을 향한 수행이 이루어지는 '도량'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확대된 것이다.
그 후, 단순히 부처님이나 보살님이 계시는 곳을 넘어, 불교 수행이 이루어지는 모든 장소를 '도량'이라고 칭하게 되었으며, 참선(參禪), 염불(念佛) 등 다양한 수행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면 어디든 '도량'이라 불릴 수 있었다.
원래 불교 용어인 '도량'이 무술을 가르치는 곳을 '도장'이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도량(道場)'의 중국 오(吳)나라 발음이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도장'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한국어에서는 '장(場)'의 발음이 '량'과 '장'으로 모두 사용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도장'이라는 발음이 대중적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도장'은 태권도, 유도, 검도 등 다양한 무예를 가르치고 수련하는 공간을 총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비록 무술 도장은 불교 사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그 명칭에 담긴 '도(道)'를 닦는 '장(場)'이라는 의미는 여전히 불교의 '도량'이 지녔던 근원적인 정신적 가치, 즉 수행과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술 문파는 사찰의 승려 조직과 유사한 위계질서를 가진다. 문주, 사부, 사형, 사제 등으로 이어지는 호칭은 스님, 보살, 행자 등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도장이나 문파의 운영 방식 또한 사찰의 자급자족적인 공동체 생활과 유사한 면이 있다. 외부와의 교류보다는 내부적인 결속과 전통 계승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강하며, 새로운 기술이나 사상보다는 기존의 것을 온전히 익히고 보존하는 데 가치를 둔다.
포교 방식 또한 비슷하다. 불교가 오랜 시간에 걸쳐 구전과 수행을 통해 점진적으로 전파되었듯이, 무술 또한 입에서 입으로,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비법이 전수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지역이나 문파 내에서만 전해지는 비전(秘傳)이 존재하며, 이는 불교의 밀교적 가르침이나 특정 종파의 비의(秘義)와 일맥상통한다. 대중적인 확산보다는 소수 정예의 깊이 있는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내와 겸손, 그리고 자기 절제를 강조하며, 기술적인 완숙함과 더불어 정신적인 성장을 중요시하는 교육 철학은 동양 무술이 단순한 싸움 기술이 아닌 '도(道)'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서양의 스포츠 교육과 전파 방식은 기독교 교회의 조직 및 선교 스타일과 궤를 같이한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선교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스포츠가 대중적인 참여와 확산을 지향하는 것과 일치한다. 교회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참여하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발전시킨다. 스포츠 클럽이나 협회 역시 이와 유사하게 감독, 코치, 선수, 그리고 서포터즈 등으로 구성되어 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한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경쟁을 통해 발전하고, 규칙과 규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독교 또한 십계명과 같은 명확한 계율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신앙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한다. 스포츠 경기의 승패는 개인의 기량뿐 아니라 팀워크와 전략에 따라 결정되듯이, 기독교의 선교 또한 개인적인 노력과 함께 조직적인 활동, 즉 부흥회나 집회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교육 방식 또한 동양 무술과는 다르다. 서양 스포츠는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이 낮고,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과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기량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성경 공부나 주일 학교를 통해 누구나 쉽게 기독교 교리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국제적인 대회나 리그를 통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발전하는 모습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기독교 선교 활동의 역동성과 닮아 있다. 개인의 능력 발휘와 팀워크를 통한 성과 창출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양 스포츠의 철학은, 기독교가 개인의 구원과 동시에 공동체적 사명을 강조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십수년전부터 한국에서도 유행한 크로스핏은 교회조직을 차용하여 활용한 스포츠로 유명하다. 서구에서는 교회 포교조직과 크로스핏의 유사성에 대한 학술 논문들도 나와 있다. 크로스핏 조직과 운동 스타일은 기독교 교계제도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크로스핏에서 매일 받아서 운동하는 ‘와드(WOD)’는 예배때 하는 ‘오늘의 말씀’에 해당하며, 크로스핏 조직의 확산도 교회 선교의 방식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 논문들의 주요 내용이다.
크로스핏과 기독교간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 논문들은 꽤 많은데, 쉽게는 다음과 같은 것 들이 있다.
"CrossFit as Church? Examining How We Gather" (Harvard University HDS News Archive)
"The Religion of Crossfit Revisited" (Reformed Journal)
"CrossFit: Fitness Cult or Reinventive Institution?" (ResearchGate / CiteSeerX)
"Training for the “Unknown and Unknowable”: CrossFit and Evangelical Temporality" (MDPI)
크로스핏 뿐 아니라, 미국에서 성공한 무술 스포츠들도 그 내용은 교회 선교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인 사범 이행웅에 의해 만들어져서 크게 성공한 'ATA 태권도'는 전형적인 북미 기독교 교계조직 스타일이다. 한국적 방식으로 미국에 가서 성공한 사례는 흔하지 않다.
이처럼 동양의 무술 교육과 서양의 스포츠 교육은 각기 다른 종교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독자적인 장점과 단점을 발전시켜 왔다.
동양 무술의 장점은 무엇보다 깊이 있는 정신 수양과 인성 교육에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겸손, 인내, 존경과 같은 덕목을 배우고, 오랜 시간의 반복 수련을 통해 신체 단련뿐 아니라 내면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소수 정예 교육을 통해 개개인에게 집중적인 지도가 가능하며, 전통과 역사를 중요시하여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선 문화적 가치 계승에 기여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폐쇄적인 조직 문화는 새로운 변화나 외부와의 교류를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스승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교육 방식은 때로 주체적인 사고를 저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접근성이 낮아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반면 서양 스포츠의 장점은 대중적인 접근성과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에 있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며, 과학적인 훈련 방법과 전문적인 코칭을 통해 빠른 시간 안에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 경쟁을 통한 성취감은 참여자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며, 팀워크를 통해 사회성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스포츠 기술과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 또한 단점을 내포한다. 지나친 경쟁은 승리 지상주의로 이어져 스포츠 본연의 즐거움을 잃게 할 수 있으며, 엘리트 체육 위주의 교육은 소외되는 이들을 만들 수 있으며, 개인의 정신적 성숙보다는 결과와 성과에만 집중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 또한, 상업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스포츠 본질이 왜곡될 여지도 갖고 있다.
두 방식은 마치 음과 양처럼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 동양 무술이 깊이와 내면을 중시한다면, 서양 스포츠는 확장성과 외향성을 강조한다. 하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 하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이길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다.
미국에서 발전한 태권도 단체들은 동양의 가치와 덕목을 서구 스타일로 포교하여 성공하였다. 인성교육과 효도 등등을 강조하는 동양적 가치를 북미기독교 선교 방식으로 지도하여 현지화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의 경영학과 대학원은 미국 국방성의 자료들을 수업에 활용해 왔다. 미국 국방부가 매년 각 분야별로 방대한 매뉴얼을 선보였는데, 인사, 조직, 심리, 유통, 물류, OR, 등등의 분야는 군대가 민간보다도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 미 국방성은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발표해 왔었다. 그래서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들은 수천페이지 분량의 DoD(미국방부) 문서들을 구해서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에 무술계가 불교의 방식을 배워왔고, 서구 스포츠가 교회를 벤치마킹 한 유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대에 불교조직은 가장 선진적인 엘리트 집단이었고, 서구에서 교회와 수도원은 2천년동안 대표적인 지식의 창고이자 최고의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신세대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동양 무술과 서양 스포츠 중 어떤 방식이 이들에게 더 적합할까? 혹은 우리는 이 둘의 장점을 어떻게 융합해야 할까?
신세대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방적인 가르침보다는 스스로 탐구하고 선택하며,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또한, 다양성과 유연성을 추구한다. 정해진 틀에 갇히기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려 한다. 동시에 재미와 몰입을 통해 학습 효과를 높이고자 하며, 단순히 결과만을 쫓기보다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전통적인 동양 무술의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교육 방식은 신세대의 가치관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물론 무술이 주는 정신 수양의 가치는 변함없이 중요하지만, 이를 현대적인 교육 시스템에 맞게 변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개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며, 다양한 무술 스타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서양 스포츠의 대중성과 체계성은 신세대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과 성과주의는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리고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승패보다는 참여 자체의 즐거움과 건강한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며 자신의 적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엘리트 체육 중심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스포츠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생활 체육의 활성화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21세기 신세대에게 적합한 교육 방식은 동양 무술의 깊이 있는 정신적 가치와 서양 스포츠의 대중적인 접근성, 그리고 유연하고 개방적인 교육 철학이 융합된 형태가 될 것이다. 단순히 기술을 배우고 승패를 겨루는 것을 넘어, 몸과 마음의 균형 있는 성장, 개인의 잠재력 발휘, 그리고 건강한 공동체 의식 함양을 목표로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어쩌면 미래에는 무술 도장이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명상과 정신 수양, 그리고 다양한 신체 활동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또한, 스포츠 클럽이 단순한 승리만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참가자 개개인의 행복과 성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생활 속 활력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성공한 무술도장들은 이런 가치를 도장내 현실에서 구현하고 있다. 대구에 있는 ‘한미르 태권도장’은 미래의 무술도장이 요구하는 이러한 가치들을 실제로 보여준다. 태권도장은 유아와 초등학생들만 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이곳에는 성인반이 200여명이 넘는다. 성인들이 무술도장을 오랫동안 다니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한미르 태권도장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반대로 가고 있다.
동양무술과 서양스포츠는 종교에서 비롯된 종교적 색채를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다. 동양무술은 불교를 모방하면서 발전해 왔고, 서구 스포츠는 기독교 선교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양쪽은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동서양의 콜라보 이다. 무술과 스포츠가 내포하고 있는 중세스타일의 교조적 색채를 제거하고, 현대에 적응해야 할 시기이다.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실용주의가 만나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열어갈 때, 우리의 신세대들은 더욱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두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각자의 고민과 실천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