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을까?

by 한병철 Mikhail 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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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대학원생 시절, 여의도 국회도서관 열람실은 내게 일종의 성지(聖地)와도 같았다.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는 그곳에서 나는 지성의 정수를 갈망했고, 연구에 몰두하는 연구들의 진지한 표정 속에서 경건함마저 느꼈다. 그런데 간혹 그 정적을 깨고 들어오던 불청객들이 있었으니, 바로 시끄럽게 떠드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이었다. 그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부산스러움은 내게 지적 탐구를 방해하는 소음으로만 여겨졌다. 젊음의 에너지를 이해하기보다는, 고결한 연구의 공간을 침범하는 불경(不敬)으로 치부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 올해 5월, 다시 찾은 국회도서관의 풍경은 나를 낯선 감회에 젖게 했다.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60대, 70대 어르신들이었다. 그들은 보온병에 담아온 차를 마시며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흡사 동묘시장의 노인 커뮤니티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도서관으로 수평 이동한 듯한 모습이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도서관, 젊은 날 내가 못마땅해했던 그 소란스러운 웃음소리가 사라진 정적 속에서 나는 문득 서늘한 두려움을 느꼈다. 어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 노인들의 천국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섬뜩한 깨달음이 온몸을 감쌌다. 코엔 형제의 걸작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이 뇌리를 스치며, 텅 빈 도서관은 마치 미래 없는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그 영화의 제목은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첫 구절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구절에서 '노인'은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 '오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를 뜻한다. 나이에 걸맞은 경험과 지식을 갖춘 '현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노인의 경험과 지혜대로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는 사회라면, 그곳에서 노인들은 대접받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지혜로운 노인이 가진 세계관처럼 흐르지 않는다. 즉, 이 제목은 '노인(지성인)이 안심하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나라(세상)는 없다'는 혼돈 사회의 해설에 가깝다. 국회도서관의 텅 빈 젊음의 자리는, 어쩌면 현명한 노인들의 지혜마저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우리 사회의 쓸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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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오랜만에 가족 외식을 위해 장충동 평양면옥을 찾았다. 정갈하고 담백한 평양냉면을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음에 이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부산에서 온 듯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네 명이 강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며 엄청나게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서울 여행에 대한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 찬 듯 보였다. 주변에서 항의의 표시로 쳐다보았지만, 그녀들은 자신들이 관심받는 것이 즐거운 듯 더욱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착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결국 평양면옥 사장에게 조용히 시켜달라고 요구했고, 사장이 다가가 정중히 부탁했지만 그녀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간만에 나선 가족 외식은 그렇게 짜증으로 가득 찬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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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에서는 젊은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적적하고 아쉬웠는데, 평양면옥에서는 철없는 부산 아가씨들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났다. 이 두 가지 상황은 상호 모순되며 이율배반적이다. 젊음의 부재를 아쉬워하면서도, 그 젊음의 넘치는 에너지가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 모순 앞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먹은 사람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이 사회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과연 존재하는가? 현명한 노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종종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히곤 한다. 젊음은 활기차고 미래 지향적이며, 늙음은 지혜롭고 과거를 성찰하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토록 단순하지 않다. 젊음은 때로 무모하고 시끄러울 수 있으며, 늙음은 때로 고집스럽고 닫혀 있을 수 있다. 국회도서관에서 사라진 젊음의 웃음소리는 노년의 고독과 정적을 의미하는 동시에, 사회의 활력 부족을 시사한다. 반면 평양면옥에서의 젊은이들의 소음은 그들이 가진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의 발현이기도 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미성숙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 두 가지 모순된 상황을 통해 우리는 '좋은' 젊음과 '좋은' 늙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젊음은 단순히 나이가 적은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늙음 또한 단순히 나이가 많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태도와 지혜,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배려이다.


국회도서관에서 사라진 젊은이들은 아마도 경쟁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도서관을 단순히 지식을 탐구하는 곳으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시험 준비 학원이나 스터디 카페와 같은 더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공간을 찾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들의 부재는 사회의 변화와 젊은 세대의 학습 방식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공공장소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사회 전체의 생동감이 줄어들고 있다는 쓸쓸한 신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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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회도서관을 차지한 노인들은 어쩌면 은퇴 후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외로움을 달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들의 담소는 어쩌면 고독한 노년의 삶을 위로하는 작은 축제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들의 행동을 단순한 '소음'으로 치부하기 전에, 그들이 왜 그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질책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시선일 것이다.


평양면옥의 젊은 여성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행복과 즐거움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끄러움은 과도한 자기중심성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순수하고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사회의 복잡한 규칙과 타인과의 상호작용 방식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비난보다는, 사회적 에티켓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가르쳐주는 부드러운 가이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모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 사회에 현명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젊음의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동시에 노년의 지혜가 존중받는 사회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이 절실하다. 젊은 세대는 노년층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고, 그들이 쌓아온 삶의 가치를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반대로 노년층은 젊은 세대의 변화와 역동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새로운 시도를 격려하며 때로는 자신들의 지혜를 유연하게 적용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진정한 지혜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데서 온다. 국회도서관의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사라진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평화를 찾았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세대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평양면옥의 젊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즐거움만큼 타인의 평온함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배움은 일방적인 훈계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현명한 노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을 넘어, 끊임없이 배우고 성찰하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자신의 지혜를 타인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기꺼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젊은 세대의 활기찬 에너지를 무조건적인 소음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가능성과 열정을 발견하려는 긍정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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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단순히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사회이다. 젊음의 생기가 존중받고, 노년의 지혜가 빛을 발하며, 그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서로에게 풍요로움을 더하는 사회.

우리는 이 모순된 풍경 속에서 세대 간의 단절이 아닌 연결을 찾아야 한다. 젊음의 넘치는 에너지가 노년의 지혜와 만나 시너지를 내는 사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노인도, 젊은이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현명한 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의 소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인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보고 그들의 행동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보려는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현명한 노인이 되려면, 늙음과 젊음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용과 이해의 자세이다. 젊은 세대의 활기찬 소음을 미래의 희망으로 받아들이고, 노년 세대의 조용한 존재감을 지혜의 깊이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모순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비난과 단절이 아닌, 서로를 보듬고 함께 걸어가는 공존의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노인을 위한 나라'를 넘어,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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