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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Apr 08. 2017

Heaven's on fire(천국이 불타고 있어)

되돌릴 수 없는 시간

https://youtu.be/r0FoVuUYh4w

"라디오 디파트먼트 좋아하는 사람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어요.”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밥을 먹자고 한 적이 있다. ‘이상한’ 의도가 아니라며, 정말 라디오 디파트먼트라는 밴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단다.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호기심이 당혹감을 압도해버렸다. 대체 저 사람에게 라디오 디파트먼트가 어떤 의미길래 다짜고짜 밥을 먹자 하는 거지?

A는 동갑내기였다. 작곡하는 사람이었다. 방에 드럼과 신디사이저, 기타 등을 두고 수시로 녹음하고 고치는 게 일상이란다. 그러면서 자기 작업실 사진을 보여줬다. 음악을 듣기만 해온 내겐 마법 세계 같은 삶이었다.

A에게 라디오 디파트먼트는 음악적 이정표였다. 신디사이저 베이스의 드림팝을 만드는데 골몰해 있던 A는 이 아티스트의 음악을 즐겨 듣는 ‘보통 사람(=예술 하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며 날 신기해했다. 그때가 2011년이었으니 한국에서 라디오 디파트먼트가 그리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않았을 때다. (그 해 처음 내한했다) 그래도 새삼스러웠다. 취향에 장벽이란 게 존재했던가. 물론 이런 방식으로 별종 취급 받는 건 꽤 유쾌한 경험이었다. '내 취향 죽지 않았어 크으으’라며 잠깐이나마 자아뽕에 취할 수 있었으니.

애석하게도 자아도취는 거기까지. A가 자기가 만든 노래를 들려주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편곡한 곡도 있었다. 신기했다. 음악에 있어선 영원히 수용자에 그칠 수  밖에 없던 내게 곡을 분해하고 재해석하는 그 아이는 작은 조물주처럼 보였다. 그에 비해 내 삶은 무척 비생산적이고 밋밋한 것처럼 느껴졌다.

A는 4학년을 앞둔 내게 졸업하고 무엇을 하고 싶냐 물어봤다. 오기가 생긴 나는 ‘라디오 피디’라는 (내 나름대로의) 강 스파이크를 날렸다. 작은 조물주의 훅에 맥없이 쓰러지기 싫어서 뱉은 말이 씨앗이 됐다. 그전까진 이중전공인 경제를 살려 금융권에 가거나 과 사람들처럼 해외영업으로 지원 하겠거니 막연히 생각만 했는데. 이후 그 직업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디파트먼트 마니아 두 명이 모인 자리가 얼떨결에 진로탐색 시간이 된 셈이다.

A와 만난 건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듬성듬성 연락을 이어가다가 내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 곧 4학년을 맞이했다. 스페인을 다녀오며 구멍 난 이수학점을 채우느라 1년 내내 학업에만 열중했다. 그 다음 해 9학기를 끝마치며 ‘라디오 피디'라는 꿈에 불을 지폈다. 무심코 던진 말에 삶의 무대가 송두리째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라피를 시발점으로 지금까지 돌아 왔으니.

가끔 생각한다. 라디오 디파트먼트를 좋아하는 걸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더라면, 열등감을 자극했던 A같은 존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난 어떤 모습일까. 일찍 취업해서 비싼 가방과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다녔겠지? 이미 짝을 만나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퇴근 후 필라테스와 요가로 소시지 같은 팔뚝을 매끈하게 다졌을지도. 하지만 글감이나 소재가 떠오르면 재깍 메모장에 옮기고 매일 밤 졸음을 참아가며 (뻘)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게다. 그럼 라디오 디파트먼트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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