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손 Apr 05. 2017

독점

대체불가능한 관계의 흔적

 https://youtu.be/OjP7VTHUais

우리 만날래? 막 씻어서 차가운 내 손에 자기 손을 살포시 얹고선 그 아이가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당황한 나는 어리둥절 창문 밖만 바라봤다. (누군가는 꼴 사납다 하겠지만) 때마침 운명처럼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It's not hard for me to love you. Hard for me to love you. No, it's not a difficult thing. It's not hard for me to you love you. Oh I really love you unconditionally. - Jason Mraz The world as I see it -

제이슨 므라즈의 친환경적 철학이 담긴 곡이지만 내겐 독점적 관계의 신호탄이었다. 남산타워의 불빛이 조용히 우리 둘을 비췄다. 벅차는 가슴에 야경이 오버랩됐다. 이토록 광활한 서울이지만 우리 둘은 항상 붙어다니자. 그날부터 난 나 아닌 누군가를 이유 없이(unconditionally) 좋아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그 아이는 적어도 저 노래하나 독점하는 덴 성공했다. 대상에 대한 현재의 감정과 별개로 저 노래만 들으면 그 순간이 떠오르니까. 간주가 흘러나올 때면 난 화장실에서 막 손을 씻고 나온 그때의 나로 플래시백된다. 수줍음이 많았던 그 아이는 내가 화장실에 가있는 동안 꽤나 초조했을게다. 그 용기에 감동받은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2년을 만났다. 이젠 추억의 뒤안 길에 새겨진 이름이지만 차마 떨어지지 못한 조각들이 여전히 내 삶에 밀착해있다.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처럼. 그 아이만의 특권은 아니다. 잠깐이라도 머물렀거나 스치기만한 인연마저도 그 만이 독점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 아주 어릴 적의 (끔찍한) 흑역사도 마찬가지. 다음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선점된 영역은 영원히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굳이 갈아치울 필요성도 못 느끼겠다. 인연은 리셋하는 게 아니라 누적 되는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노래가 몇 곡 있다. 그 노래들을 재생하며 지난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자의든 타의든 내 일부를 독점해버린 얼굴들. 나는 당신들 무의식의 어느 지점에 자리하고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12월 말 어느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