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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Mar 15. 2017

12월 말 어느 날

관찰일지. 속도가 달랐던 두 남녀 이야기

“나에 대해 궁금한 건 없어? 남자친구와 해보고 싶었던 거...뭐 그런 환상 같은 건?”

카페에서 책을 읽으려는데 옆 테이블의 대화가 내 귓전을 두드린다. 한 쌍의 남녀다. 둘의 대화를 훔쳐 듣고 알게 된 것은 그 둘은 최근에 소개 받았으며, 남자는 성질이 급하지만 여자는 그 반대라는 것. 그리고 아직 연인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 


주변 사람에 관심 없는 내가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건 남자의 급한 성미에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서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고 애매모호한 관계를 확실하게 만들고 싶었던 그는 맞은편에 앉은 그녀를 들볶는다. 오늘 시간이 됐으면 술 한잔 했을 텐데, 나에 대해 궁금한 건 없니? 편하게 물어보렴, 뭐? 오글거린다고? 어느 부분에서? 정확히 말해줘, 어떤 운동 좋아해? 아 나도 운동 좋아하니까 같이 할만한 거 알아보려고. 끝없이 추궁하고 합의점을 도출하려 애쓰던 남자 앞에서 여자는 움츠러든다. 그가 조급해할수록 그녀는 함구했다.


@중경삼림 스틸컷

때마침 카페에선 중경삼림의 OST 몽중인이 흘러나온다. 크랜베리스의 Dreams를 번안한 곡이다. 끊임없이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하는 남자와 컵 속 얼음만 바라보는 여자. 이방인에서 ‘the one’으로 발전하기 위해 애쓰던 남자는 이방인들의 연애담으로 가득 찬 영화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카페에서 상대를 설득하고 있었다,


나는 중경삼림을 아주 옛날 남자친구와 봤다. 같이 보자고 제안한 건 나였다. 나도 애인과 홍콩 영화를 함께 보는 그런 연애가 해보고 싶었다.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그런 만남은 진부해보였다. 나는 그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그땐 그냥 남자친구가 필요했다. 해보고 싶은 거, 자질구레한 환상 모두 다 시도해볼 수 있는 그런 사람. 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쓰고 성을 냈다. 결국 그 연애는 짧게 종지부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땐 연애가 협상인줄 알았다. 그때의 이별은 협상 결렬같은 것이었다. 


그 모든 계획이나 이정표를 내던져야 서로 자유로워 진단걸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중경삼림 스틸컷

그 모든 계획이나 이정표를 내던져야 서로 자유로워 진단걸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당신은 이래야 한다’는 반죽틀 같은 것도. 나나 상대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아닌 이상(아마 그도 남녀일은 섣불리 재단 못할게다) 예측가능한 관계란 없다. 그래야 상대도 더 매혹적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무사히 새해를 맞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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