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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Mar 15. 2017

동숭동 집을 추억하며

집을 내놓았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집을 보여주는 건 꽤나 신기한 일이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내밀한 이야기를 터놓는 이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나도 모르게 이들의 삶을 상상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 내가 사는 집에서 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가구는 어떻게 배치할까, 누가 큰방에서 머물게 될까 뭐 이런 잡다구레한 망상들 말이다.


터무니없는 액수의 에누리를 요구하던 고집쟁이 아주머니는 중학생 딸이 있다고 했다. 그 딸은 아마 엄마의 눈을 피해 좋아하는 아이와 낙산 공원을 거닐거야. 직장이 을지로라던 동년배의 청년은 금요일, 토요일 밤마다 4번 출구 근처 주점에서 술을 진탕 먹고 코를 골겠지. 일련의 상상이 흩어지는 눈발처럼 내 머리를 스쳤다 사라진다. 이름대신 전화번호로 기억될 얼굴들.

여름 밤의 마로니에 공원. 늘 이곳을 가로질러 집에 갔다.

예비 세입자에 대한 상상이 무심히 휘발되던 시점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언제 집을 보러오겠단 약속 대신 몇 가지 질문으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집이 언덕에 있나요? 아 어린 아이를 키워서 너무 높은 곳에 있으면 안사람이 힘들어요. 주변 여건은 어때요? 문화공간은 많나요? 아 집사람이 너무 무료해해서요. 지금 한성대에 사는데 아기랑 같이 좋은 시간 보낼 곳이 대학로에 더 많은 것 같아서요. 그는 내게 상상의 여지 대신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얼마나 사셨어요?” 1년 2개월. 나는 이 집에 1년 2개월 머물렀다. 그 1년 2개월 동안 만삭의 언니와 맛집을 누비다 조카가 태어났다. 혼자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가 폭설에 갇혀 서울로 제때 돌아오지 못했다. 티타임즈에서 일하던 시절 침대에서 발제거리를 찾으며 발을 동동 구른 기억도 난다.


봄에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낙산공원엘 올랐다. 이름모를 꽃들에 둘러싸여 서울을 내려다보는 게 일상이자 탈출구였다. 여름엔 곱등이, 깔때기 거미와 치열하게 싸웠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새 식구 미오가 생겼다. 미오가 없었더라면 가을을 어떻게 버텼을까. 잔혹했던 그 계절이 스치고 새해가 밝아왔다. 그 사이 룸메이트가 생겼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는 별 탈 없이 지낸다. 어느 밤에 영화를, 어느 밤엔 웹툰을 함께 보며. 1년 2개월의 시간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풍경을 이뤘다.

이 집이 괜찮은 캔버스가 되길 바라며

그 집이 마음에 들어요. 실제로 보고 싶네요. 몇 가지 관문을 통과했는지 그가 집을 보러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약속을 잡았다. 그가 다음 세입자가 됐으면 좋겠다. 이 집이 괜찮은 캔버스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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