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혼자의 재미에 눈 뜬 순간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노트북도 없는 시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퇴마록을 빌려 읽었다. 기숙사방과 열람실을 오가며 진도를 꽤 많이 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방학에도 고시 공부를 하는 선배들 틈에서 에어컨 냉기에 식은 자뎅 커피를 홀짝이며 읽는 책은 소소한 낙이었다. 시험 기간이 아니라도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지성인이라는 셀프 포지셔닝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2008년 여름은 도서관 에어컨에서 나오는 쉰내와 활자를 무너뜨리며 쏟아지는 낮잠을 막아주는 자판기 커피의 맛으로 기억된다.
엄청난 다독가는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도서관이란 공간을 좋아했다. 고대의 비밀 유적 좌표마냥 복잡하게 조작된 숫자를 따라 원하는 책을 찾았을 땐 오랜 수수께끼를 풀어낸 고고학자라도 된 듯 기뻤다. 오랜 기간 금서였던 <소돔에서의 120일>같은 책을 후방주의를 고수하며 책장 틈에서 몰래 읽은 짜릿함은 또 어떻고. 아무렴 도서관은 나 자신을 원하는 곳 어디든 초대할 수 있는 공항이자, 보물섬이자 놀이터였다.
한때 정독도서관을 꽤 자주 드나들었는데 지금 회사로 이직하면서 도서관에 발을 끊었다. 짧게는 3000자 길게는 5000자에 육박하는 인터뷰 기사를 쓰거나 고치면서 텍스트라면 진절머리가 난 까닭이다. 어쭙잖은 직업 윤리(?)에 입각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말 밥을 많이 막고 말 살을 찌워야 할 때인데 긴 글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얼마나 지겨웠으면 정독도서관에서 책 2권을 빌려 놓고 존재를 잊어버렸다. 연체료가 비대해지는 속도보다 귀찮음이 망각으로 이행되는 속도가 더 빨랐나 보다. 신혼집으로 이사하기 직전에야 존재를 알아채고 고이 반납했다. 그렇게 내 허벅지만한 금액이 연체료로 부과됐다. 그만큼 도서관과 사이도 소원해졌다.
2023년 2월 XX. 도서관 통합 사이트에서 확인한 내 상태는 예상보다 더 참담했다. 연체료를 내지 않으면 100원을 하루로 치환한 기간만큼 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내가 선고받은 기간은 내년 초까지다. 하지만 인간은 성장의 동물이랬던가. 연체료로 두드려 맞은 만큼 맷집이 생겼나 보다. 흥 나 남편있거든? 오늘 연차인 남편에게 부탁해서 남편의 회원증으로 읽고 싶었던 책을 빌렸다. 남의 명의로 빌린 거라 그런가, 언니의 샤넬 램스킨 가방을 몰래 들고 나가서 평양 냉면을 흡입한 그날처럼 독서가 그렇게 짜릿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차명계좌로 거래하는 악당들도 이 스릴에 빠진 걸까.
도서관은 입시 도그마가 지배했던 청소년기와 언론고시의 압박에 시달렸던 20대를 상기시킨다. 동시에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의 즐거움에 눈 뜬 시절들을 떠오르게 한다. 존재에 대한 불안과 이에 대한 답을 책장에서 찾아나섰던 그런 시절. 이제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나에 대한 답을 우연히 마주한 글귀에서 발견하는 센치한 습관 같은 것도 사라진지 오래다. 불확실성이 제거될수록 내면 상태가 건강해지는 것 같다만 인생의 다이내믹스가 줄어 아쉬운 맘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차명회원증으로 앙큼하게 책 빌리는 재미라도 남겨둬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