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들어본 가장 이상한 질문
“너희 중에 샤넬백 있는 사람?”
화기애애했던 채팅방에 정적을 불러 일으킨 질문. 질문 다음엔 질문자의 추론이 이어졌다.
“음 내가 맞혀볼게. A랑 B있지?”
추론의 논거는 사실 별 거 없었다. 둘 다 굉장한 미인인 데다 여자친구감으로 선호하는 직업의 종사자라 옛 애인에게 받았을 가능성을 가장 크게 계산한 듯하다. 부모님의 경제력도 한 몫 한 것 같다. 아 SNS 속의 사진도 있겠구나.
공교롭게도 정답이었다. A와 B는 다소 머쓱한 말투로 자신이 샤넬을 가지게 된 경위를 소상히 밝혔다. (내가 가진 건 누구나 마음먹으면 살 수 있는 클러치야, 난 진짜 몇 년 고민하다 지른거야)
어쩌다 이런 판이 벌어졌는지 의문이었지만 얼떨결에 샤밍아웃 당한 당사자들은 친절히 그 질문에 답했다. 나는 그 질문이 살면서 들어본 가장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초라함이 몰려왔다. 그녀의 계산속에 나일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됐다는 걸 인식한 순간 ‘나는 그런 걸 가지고 있을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구나’란 생각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누군가의 인식체계에서 우리 무리는 어떤 기준으로 철저히 계급화 되고 있었고, 그 계급의 상단에 나는 없다는 자각이 피부에 싸늘하게 닿았다. 겨우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인데 괜히 분했다. 샤넬이 없어서 서러운 건 아니었다. 무리를 대하는 질문자의 노골적인 선긋기가 불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자의 품평과 계급 설정은 대담해졌다. 한 친구가 공기업 합격 소식을 알린 날, 질문자는 바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무슨 직무야?” 그 기업의 특성상 문과 출신은 무기계약직인 경우가 많은데,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고용형태가 어떻든 간에 쉽지 않은 절차를 밟고 당당히 합격한 것인데 말이다.
나중에 질문자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샤넬 질문으로 그녀의 계급체계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이들은 그런 질문이 오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마 ‘예뻐도 나보다 직업은 아쉬운 애’에서 ‘예쁘고 공기업에 재직하는 애’로 뼈아픈 승격(?)을 거치기 전에, 그렇게 배 아파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판단하려 했던 것 같다.
사회란 곳은 잔혹하리만큼 냉정해서 투입한 노력이 결과로 나오지 않을 때가 다반사다. 내가 어떤 인간이기를 보여주기에 앞서 소속된 조직, 직군, 연봉, 걸치고 다니는 것들이 가장 간편한 판단 기준이 되다 보니 같은 무리에서도 위화감이 조성되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내가 많은 친구들과 아름다운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 진실 어린 응원과 배려 덕인 것 같다. 밑바닥을 쳐도, 잘 나가도 한결같이 넌 못 생겼다며 맥주를 건네주는 그런 호방함이 매일매일을 버티게 하는 동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세속성의 굴레로 무리를 빨아들이는 그 사람의 존재가 나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를 논거로 삼는데, 그 사람의 모든 언어에 세속성이 먼지처럼 붙어있었다.
“전 애인을 만났어. 걔는 여전하더라. 엄마가 사준 벤츠 끌고 오고선.”
“내가 헤어지자고 했지만 걔는 잘 살겠지 뭐. SCI급 논문도 게재하면서.”
항마력이 딸리지만 모두 그가 실제로 했던 발언이다. 만약 자기 자신도 그 체계에 편입시키는 사람이라면 참 투명하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진짜 문제였다. 누군가 자신의 학벌을 물어보기라도 한 날엔, 그 사람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노발대발했다. 그의 발언들을 일종의 길티 플레저로 삼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견디기 힘들어졌다.
너무 당연한 결과지만 짧은 인연을 끝으로, 질문자와의 우정은 끝이 났다. 아니 애초에 나는 동등한 계급인 적이 없었으니 우정도 아니었던 것 같다. 길티 플레저가 사라진 건 아쉽지만, 그가 떠나고 그 무리엔 전례 없던 평화가 찾아왔다. 누군가 세속적인 성취를 거둬도 한없이 기뻐해주는 사랑스러운 군단이 됐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예물로 샤넬 가방을 받았다. 그런데 그걸 받았다고 인생이 기똥차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갑자기 계급이 뒤집히는 기적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어떤 순간엔 스스로가 초라하고,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지나고 보니 겨우 가방 하나를 재단 기준으로 삼은 그 당시 그의 마음 상태가 황무지였을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좋은 인연은 아니었지만 자기가 설정한 계급 체계의 상단을 꿰차며 행복했으면 한다. 다만 그런 종류의 질문을 또 받고 싶지는 않다. 제발 “샤넬 백 있는 사람”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혹시 집이 자가인 사람?” 이런 질문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