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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Dec 17. 2017

아빠가 살찌지 않는 이유

기억 속 이름을 추모하며

아빠는 말랐다. 원래 날씬한 체형인데 나이 60줄 넘기면서 더 살이 빠졌다. 아마 고기와 술을 멀리하는 식습관 때문일 게다. 부산 집에선 고기가 밥상에 오르는 일이 좀처럼 드물다. 저녁 약속과 술자리가 끊임없는 엄마는 밖에서 고기와 알콜을 보충하지만 집에서만 저녁을 먹는 아빠는 밖에서 살찌울 일이 없다.

반면 나는 살이 쪘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먹는 양에 비해 살이 안 찐다고 자부했는데 술자리가 잦아지면서 체급(?)이 올랐다. 미식가들과 친분을 맺은 덕에 좋은 안주에 술을 먹는 일이 종교 의식처럼 굳고 말았다. 굶으란 말은 사형 선고다. 술 끊으란 말은 생명의 샘을 말리는 사악한 지열 같다. 차라리 추위를 뚫고 2만보 걷고 피트니스 마샬 열 판 뛰고 말지.

그런 아빠와 내가 한 쇼파에 앉아 삶은 오징어를 씹으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티비에 나오는 인물들이 고기와 술을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아빠가 입을 열었다. 아 저래 먹으면 윽수로 맛있겠다. 자주 저라믄 살도 찌겠제. 아빠 저래 술이랑 괴기 먹어본게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 매주 금요일 거행되는 나의 종교의식이 아빠에겐 연례행사같은 일이었나보다. 아빠와 나의 지방 분포, 고기와 술의 상관관계 따위를 생각하던 차에 아빠 입에서 나온 한 이름이 공상에 빠진 날 현실로 건졌올렸다. “해원이(기억이 맞다면 혜원이가 아니라 해원이일거다) 아저씨 살아있었으믄 저런거 더 자주 먹었을낀데” 해원이. 아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해원이 아저씨는 아빠의 어릴 적 친구다. 담배를 아주 맛있게 펴 내게 담배 도넛의 신기원을 보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아저씨는 미혼이었다. 때문에 살아계실 적 적적할때면 아빠를 호출하곤 했다. 사교적인 엄마와는 달리 친구와의 만남이 적은 편인 아빠는 해원 아저씨의 부름에 곧잘 응했다. 아저씨가 낮에 부를 때면 아빠는 나를 대동했다.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저씨, 나, 아빠는 셋이서 부산 밖으로 드라이브 가기도 하고 낚시도 갔다. 엄마는 딸애 앞에서 담배 연기로 도넛을 만드는, 게다가 노총각인 아저씨와 아빠가 자주 어울리는걸 못마땅해 했지만 난 아저씨가 싫지 않았다. 아저씨는 담배 연기로 도넛을 만들어 달라고 해도 화내지 않는, 어린이가 뭔가를 부탁해도 흔쾌히 들어주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내가 꽤 컸을 때 아저씨의 부음을 접했다. 아저씨는 당신이 뿜던 담배 연기처럼 한때 뚜렷한 도넛이었다가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다. 친구를 잃은 아빠의 마음을 내가 감히 헤아릴 겨를은 없었다만 나 역시 유년기의 일부분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이 허전했다. 하지만 쉬이 잊고 내 친구들 품으로 돌아갔다. 조금 더 커서는 친구의 품과 손에 쥔 수저와 술잔에 몸이 비대해졌다. 나는 그것을 ‘먹을 복’과 ‘인복’으로 포장해 나의 체중 증가에 면죄부를 줬다. 말 그대로 배부른 합리화다.

아빠는 담담하게 아니 아주 조금은 애상감을 더해 그 이름을 불렀다. 쇼파 위에서 오징어를 씹으며. 나는 반짝 떠오르는 아저씨의 얼굴을 그리며 아저씨가 더 오래 살아 계셨더라면 아빠의 홀쭉한 볼이 조금 더 통통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봤다. 이윽고 깨달았다. 삶에서 한 이름이 사라지는건 꽤 많은 지방을 태우는 일이란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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