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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Jan 19. 2018

스마일 라인. 비자발적 친절의 또 다른 이름

경향신문의 인사하는 SRT 청소원 기사를 읽고

대학생 때 모 백화점에서 알바하던 시절 직원 탈의실에서 매장으로 연결된 통로에 ‘스마일 라인’이 있었다. 모든 직원은 스마일 라인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무조건 서서 (허공에 대고) 배꼽인사를 하고 자신들이 일 하는 매장에 가야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옷을 갈아입고 거기 서서 영혼없는 인사를 하고 본진(?)으로 향했다. 22살의 나는 이 기이함을 도통 이해할 수 없어 매니저에게 물었다. 언니 왜 허공에다 인사해야해요? 돌아온 답은 그랬다. “몰라. 뭐 서비스 정신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니 뭐라니 하는데 보는 사람이 더 불편해 ㅆㅂ”.

무서운 건 백화점 이라는 공간에, 정확히 물자와 서비스가 오가는 제곱미터 곳곳에 보이지 않는 스마일 라인이 도사리고 있단 사실이다. 더더욱 무서운 건 스마일 라인의 존재 이유(?)를 직원 보다 고객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점. 스마일 라인의 미덕은 공급자의 자발성에서 피어나는 법인데 이 분들은 그걸 그렇게 강제로라도 누리고 싶었나보다. 내가 여길 몇 번 왔는데 이걸 못해줘요, 내가 여기서 뭘 샀는데 이것밖에 안되나요,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내가 어떤 사람인데’란 말엔 대화 속 청자에 대한 멸시가 깔려있다.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는 오만, 하등한 네 놈이 감히 내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노말이다. 물론 모든 거래에서 ‘갑-을’ 관계는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임대인과 임차인, 원청과 하청, 손님과 고객 모두 예외없이. 문제는 이 관계도가 당사자들의 거래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상대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월권’ 행위로 변질되기 일쑤라는 사실이다. 제발 살 공간을 제공했다고, 일거리 줬다고, 돈 몇푼 좀 썼다고 생색내지 말자. (진짜 없어보인다) 응당 받아야 할 걸 못 받아서 항의 하는거야 당연하다 쳐도 기름짜듯 쥐어짠 영혼없는 대접 그렇게 받고싶나. 인사 못받아서, 존경 못받아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진심으로 궁금하다.


http://h2.khan.co.kr/20180116135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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