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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Feb 07. 2018

두개의 달

세상을 움직이는 두 축

https://youtu.be/J42UclOsCGQ


기어이 두개의 달이 뜨던 날,
금기의 주문으로 강물을
검고 시고 쓰게 만드는 장난을 일삼던,
남반구 어느 대륙의 네 난쟁이들은
더 이상 이계의 짓을 행하지 않게 된다.
-실리카겔 두개의 달 -

청각강탈. 1년 전 실리카겔의 ‘두개의 달’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올린 네 글자다. 귀에 착착 달라붙는 중저음의 내레이션과 서사에 따라 흐르는 전자음. 나는 실리카겔을 알려준 친구에게 ‘이 노래 미친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고 친구는 한건 했다는 듯 흐뭇하게 웃었다.

마이구미스러운 청량함

가까운 사람들은 알겠지만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를 별로 안 좋아한다. 바이브가 티그리스 강 뺨치게 넘쳐흐르는 60~80년대 올드팝이나 따라 불렀다간 정신병자 취급 받거나 뇌에 렉걸렸냔 소리 들을법한 일렉, 라운지 음악을 주로 찾는다. 감히 따라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경외감에 심취된 까닭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두 개의 달은 합격이다. 귀에 콕콕 박히면서도 익살맞은 가사와 M83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이키델릭 사운드(두 밴드의 음악은 공통적으로 ‘우주’를 연상케 한다고 평가된다), 마이구미 향기 나는 청년들의 싱그러움은 덤. 내가 무슨 평론가도 아니지만 새로운 음악이 플레이리스트에 영구 추가되는 기쁨을 표현할 방법이 따로 없네 그려.

크으... 거장과 거장의 만남이라니


두 개의 달을 들으며 떠올린 곡이 있다. Daft Punk(이하 다펑)의 Random Access Memories에 수록된 ‘Giorgio by Moroder’다. 보컬 대신 내레이션을 삽입했다는 ‘형식’이 두 개의 달과 비슷하다. Random Access Memories가 발매됐던 2013년, 이 앨범을 정주행하고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불안과 설렘을 하루에도 수백 번 오갔던 나는 Giorgio by Moroder를 듣고 감동해서 거의 울었다 (오버아님). 일종의 뮤직 다큐멘터리인 이 곡은 세계적인 작곡가 조르지오 모로더의 독백으로 이뤄진다. 그는 지난했던 과거, 음악 철학 등을 이탈리아 억양 섞인 투박한 영어로 읊조리며 9분을 채운다. 나는 선배 뮤지션을 자기 노래에 직접 끌어들이는 다펑의 세련된 오마쥬 방식과 형식적 파괴에 동참한 조르지오의 관용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숨막히는 사랑스러움!


실리카겔과 다프트 펑크(와 조르지오 모로더), 존재만으로도 신선한 뉴 페이스와 확고한 입지를 도전의 발판 삼는 역동적인 기성. 이 두 존재 덕분에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비단 음악뿐일까. 신흥강자의 참신함과 기성의 영향력이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은 진일보 한다. 물론 두 주체 간 균형이 무너질 때 주로 피해보는 쪽은 전자라는 불편한 진실이 남아있지만 이 두 주체 모두 두 개의 달임 에는 틀림없다.  


실리카겔 낮잠

실리카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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