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이방인의 눈을 거울삼아

오랜만에 소개팅을 했다.

그동안 두 사람과 오래 연애 했던 터라 낯선 이성에게 나를 어디까지 밝히고 포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전무한 상태. 교제를 목적으로 한 만남이 그저 어색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덮쳤다. 그러나 기우였다. 그동안 ‘말’을 업으로 하는 일들을 거치다보니 아이스 브레이킹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녹은 얼음이 물이 되고 그 물이 팔팔 끓을 정도로 긴장감이 사라졌다. 아 나란 인간...칠푼이 팔푼이 같으니라고 상대가 말했다. “포스 있으세요. 멋있어요” 여장부인걸(이 표현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들키고 만 것이다. 상대의 말이 내 기준 칭찬이었지만 그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우리는 재빨리 헤어졌다. ‘아 나에 대한 확신이 커질수록 연애가 쉽지 않겠다’ 집에 와서 내린 결론이다. 한때의 나는 남자가 좋아하는 행동이나 옷차림 따위를 알아보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굳이 내 모습을 숨기고 상대 비위를 맞춰주며 하는 연애에 대한 의문만 커질 뿐. 이런 말 하면 엄마는 ‘적당히 숨기고 맞춰주라’며 등짝 스매싱을 날리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연애할 땐 양보하고 타협한다. 하지만 나의 본성이 타협과 양보의 대상이 돼 버리는 상황은 못 견디겠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일 테고. 내게 연애 대상은 ‘소유물’이 아니라 ‘또 하나의 우주’다. 나는 그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사랑하되 바꾸고 싶지 않다. 그만의 우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고 외부 충격에도 망가지지 않게 지켜주는 그런 연인이 되고 싶다. 상대도 내게 그랬으면 좋겠다.   상대를 알아보러 간 소개팅에서 되레 나의 연애관을 확인하고 왔다. 지루했을 나의 인생관과 넋두리를 들어준 상대에게 고맙다. 당신의 우주도 충분히 근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