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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Feb 16. 2018

개인주의자의 근무윤리

“일할 땐 이거 하나만 지켜요. 근무 중엔 ‘미안하다’고 ‘감사하다’고도 하지 않기로요” 짧게 몸담은 회사에서 평생 잊히지 않을 조언을 건넨 선배가 있었다.

요지는 이렇다. 근무 중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선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자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대안을 찾으면 되니 미안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내게 부족했던 걸 선배가 대신 찾는 건 나에 대한 호의가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그의 한마디는 숱한 ‘미안함’과 ‘감사함’에 점철된 과거 직장생활에 일격을 날렸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명제를 왜 보통의 직장인들은 실천하기 힘든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직장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애착이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상명하복식 기업 문화가 시작점일수도 있다. 아마 이런저런 사회, 문화적 맥락에 개인의 성격이 맞물려 우리는 계속 미안하거나 감사해하며 직장생활을 해왔을 것이다. 미안하고 감사하는 데만 그치면 차라리 다행이다. 직장에서 근무 외적인 걸로 감정소모하는 일이 다반사다. 남초 회사의 유일한 여직원인 후배는 직장 경력이 5년 가까이 되지만 흡연 사실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따라붙을 잔소리와 편견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꾸미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안 꾸미면 남자에게 사랑받기 힘들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퇴사 의사를 밝혔다가 ‘네 깜냥에 이 회사 이상은 못 갈 거다’란 저주를 들은 이도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부족한 퍼포먼스로 비판받는 건 언제든 받아들이겠는데 그 이외의 요소로 재단 당하는 건 참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회사’라는 틀 안에서 자행되는 인신공격과 사생활 침해가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양산하는 셈이다. 사무실에선 ‘일’로만 머리를 쥐어뜯는 세상은 아직 요원하다.



내가 퇴사하던 날에도 선배는 쿨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뭐이리 빨리 나가냐, 뭐가 문제냐’는 볼멘소리 대신 내가 퇴사하는 이유를 조용히 경청했다. 내 말이 끝나자 그가 입을 열었다. “ㅇㅇ씨 이야기를 들으니 면접 때 내가 ㅇㅇ씨를 잘못 본 게 아니란 확신이 드네요. ㅇㅇ씨의 선택을 존중해요. 꼭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라요.” 너는 잘했다, 못했다는 평가 없이 건넨 이 말이 심금이 울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아 찌질하게 천장을 보고 말았다. 다시 자리 잡으면 그 선배에게 꼭 연락할 생각이다. 선배의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됐고 큰 지침이 됐는지 아냐고 고백할거다. 이제 일로 엮인 사이가 아니니까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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