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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Mar 15. 2018

관성의 부정

새 동네에서 마주한 고서점에서

(2년 전에 작성한 글)


자취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거주지를 여행하듯 거닐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생활 8년, 햇수로 9년 차로 접어 들었다한들 새로운 곳에 이사라도 하면 그렇게 새 동네가 이채로울수가 없다. 어쩌다 오랜 추억이 스민 지역과 새 동네를 잇는 대중교통이나 접점이라도 발견한다면 중학교 동창과 고등학교 동창이 같은 대학이나 직장에서 만나 아는 사이가 됐단 소식만큼이나 신기하고 반갑다.

혜화로 이사온지 두 달 반이나 됐을까, 집 바로 근방은 다 접수했다고 자부하던 찰나에 지하에 숨어있던 고서점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이끌려 내려갔지만 책장 곳곳에 꽂힌 친숙한 이름을 보고있자니 이내 그 공기에 익숙해졌다. 20대 초반 치기어린 지적 허영에 젖어 도전했다가 던져버린 책도 보이고 가슴 뜨겁게 읽다가 차가운 눈물을 흘렸던 소설도 보였다. 그러다 문득 진로 때문에 방황하던 2013년, 짧게 인연을 맺었던 친구가 추천해준 '이갈리아의 딸들'이 눈에 띄었다. 메갈리아 덕분에 요즘 더 자주 거론된다만 아직도 내겐 2013년의 공기를 환기시켜주는 매개체 같은 존재다. 나는 타임머신이라도 본 심정으로 이갈리아의 딸들을 집었다.

부족한 것을 채우고싶어 발버둥치던 25살, 새로운 지식을 얻을때마다 우쭐하던 철없는 자부심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그때와 지금의 나를 굳이 비교하자면 체중과 넉살이 늘었고 창작물에 반영된 자의식이 줄었다는 것 정도인 것 같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주관에 맞춰진 초점이 점점 객관과 타자의 세계로 무게를 두고 있다는거?(흠 과연)

이갈리아의 딸들은 '관성'에 도전하는 소설이다. 철저한 미러링을 통해 남성이라는 중력에 기반한 사회적, 생물적 관념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보다는 방법론적인 부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기존의 관성에 의존하기보단 관성의 '근원'을 뒤틀어서 기존의 관성을 통렬히 비판하는 방식 말이다.

 '관성의 부정'. 페미니즘 같은 사회 운동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 인간 관계의 재배치, 낯선 고서점을 발견하는 일, 그곳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줄 책을 찾는 일 이 모든 게 관성을 부정하며 겪은 변화들이고 살아온 방식이다. 사상의 추가 주관에서 객관의 세계로 기운 것도 비슷한 맥락이고. 관성의 지속성은 일상을 지탱할 힘이 되지만 때론 방향을 틀고 시작점을 바꿀 용기도 필요하다. 중고서점 모퉁이에서 손길 한번 받지 못하고 먼지만 쌓여가는 철 지난 책같은 신세를 면하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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