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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Mar 21. 2018

두려움과 동경의 바다

영화 그랑블루를 보고

바다는 내게 두려움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스무 해 남짓 바다 도시에서 살았지만 수영은 고사하고 튜브 없이는 바다에 뛰어 들 엄두도 못 낸다. 그럼에도 바다를 동경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걸음 물러나 바다를 지켜보는걸 좋아한다. 친구들이 부산에 놀러오면 꼭 동백섬에 데려갔고 바다 도시로 여행을 갈 때면 높은 곳에서 바다를 지켜봤다. 크로아티아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도 전쟁의 상흔이 묻어나는 성벽 뒤로 반짝이는 아드리아 해의 무심함에 압도 됐기 때문이다.

그랑블루는 바다에 대한 나의 양가적 감정을 어루만져 준 영화였다. 항상 호기롭지만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엔조(장 르노)와 말수는 적지만 깊은 내면세계를 지닌 자크(쟝 마르바), 세속적이지만 동시에 순수한 뉴욕 아가씨 조안나(로잔나 아퀘트). 그랑블루 속 인물들은 모두 다면적이다.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엔조는 자크만 보면 결핍을 느낀다. 자크에게 바다는 아버지를 집어 삼킨 원수지만 동시에 치유의 공간이다. 사랑하는 자크와 ‘보통 연인들’처럼 정착하고 싶어했던 조안나는 자크가 바다로 회귀할 수 있게 잡은 손을 놓아 준다. 이처럼 영화 그랑블루는 바다와 잠수라는 도구로 인간의 다면성을 푸른빛으로 그려냈다.

바다는 자크의 트라우마이자 돌아갈 공간이다 @그랑블루


영화를 보는 동안 두려움과 감탄이 교차했다. 등장인물들이 깊고 까만 물에 수직하강 할 때면 등골이 서늘해 온몸에 이불을 감싸야 했다. 동시에 반짝이는 지중해의 풍광에 넋이 나갔다. 러닝 타임 내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다 보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 갈 때 맥이 탁 풀렸다. 영화가 끝나고 슬픔도 기쁨도 아닌 이상한 감정이 명치에 차올라 찬물을 벌컥벌컥 마셔야 했다. 나는 현실과 픽션을 오가며 이 영화를 감상했던 것이다.  

어쩌면 삶을 대하는 내 감정도 바다에 대한 그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생각했다. 매일매일 두려움과 동경이 공존하는 이 이상한 마음 말이다. 미래를 상상하면 가슴이 뛰는데, 가까이 마주하면 겁쟁이가 되고 마는 나날들. 갑자기 큰 파도가 일어 나를 덮치지 않을까, 저 푸른 수면 아래 괴생물체가 숨어있진 않을까, 수온이 얼음장처럼 차갑진 않을까하는 자질구레한 불안과 두려움의 바다에 발을 담궜다 빼길 반복했던 시간들. 시간이 지나면 이 미시적인 망설임들마저 하나의 풍경이 될 텐데.

바다에 뛰어드는 엔조와 자크를 보며 생각했다. 나도 조금 더 용기 내 볼까, 심해에서 평화에 도달한 엔조와 자크처럼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괜찮지 않을까. 깊은 바다든 멀리서 보는 바다든 명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다 푸른빛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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