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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Sep 04. 2019

30대 여자가 모두 예비신부인 건 아니잖아요

결혼이라는 사적이고도 사회적인 사건

“너는 왜 결혼 생각이 없는데?”
“그럼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있잖아”

농담 반 진담 반이다. 내게 결혼은 선택지다. 당장 버진로드를 밟을 여건이 안될뿐더러 우선순위에 없는 탓이다.

30대를 넘어서니 결혼이 대화 테이블에 자주 올라온다. 유유상종이라고, 대부분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할 수도 있지만 결혼을 목표로 교제를 하는 건 아니라는 스탠스다. 대세인 ‘서른 넘어 만났으니 결혼 생각해야지’론을 뒤집어 놓은 셈이다.

억울한 건 나이 때문인지 예비신부(?) 취급을 받는 상황이 잦아졌다는 사실이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결혼도 생각하겠네’라는 피드백을 받고 없다고 하면 ‘결혼할만한 사람을 만나야겠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어떤 이는 자기가 독신주의자라 기약 없이 나를 만나는 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보세요. 내 의중부터 묻는 게 순서가 아닌가요.

이들을 마냥 촌스럽다고 삿대질하고 비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생애주기라는 걸 무시할 수 없으니까. 다만 인생의 우선순위와 사고관이 ‘다른’건데 그것을 ‘비정상’ 취급하는 관습이 답답할 뿐이다.

나는 예비신부 취급을 받을 때마다 역정을 내기보다는 결혼을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길을 택했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내게 이득이 될 선택지인가, 하게 된다면 어떤 사람과 해야 하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공적이다’란 말을 믿는 편인데 결혼이 여기 해당하는 것 같다. 마음 맞는(혹은 경제적 여건이 맞는) 두 사람의 결합이란 측면에서 결혼은 지극히 사적이다. 하지만 혼인신고서에 서명하는 순간 결혼은 사회적인 사건이 된다. 앞으로 두 사람은 정부가 신혼부부에게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받기 위해 부부임을 공적으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독신에서 기혼자로 바뀐 지위는 그에 맞는 행동 양식을 요구한다. 새로이 파생된 가족관계는 법적으로도 얽히고설킨다. 결혼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알콩달콩 살림을 꾸리는 로맨틱한 결말로만 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결혼은 또 하나의 관문이며 앞으로 걸어야 할 가시밭길이 훨씬 많다며 두려워하고, 회피하려는 내가 때때로 불쌍하기도 하다.

그래서 서로에게 귀속된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적 관계임을 확신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결혼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 관계가 사회적인 사건으로 격상됐을 때 그에 따른 책임을 동등하게 질 수 있고, 서로의 영역을 인정한다는 합의가 있어야만 버진로드 위에 오를 자신이 생길 것 같다.

물론 내가 지나치게 걱정이 많을 걸 수도 있다. 가까운 친구 중에 결혼하고 나서도 삶을 잘 꾸려나가는 이들이 몇 있다. 다만 이들도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혹은 결혼생활에 안착하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게다가 내가 앞서 말한 ‘전제’가 충족된 결혼이었다. 예컨대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친구 A는 자녀 계획이 없다. 자기 커리어와 비전이 우선순위인 걸 상대방이 이해하고 한 결혼이었다. 동반자적인 관계다.

친구 B는 박사 학위를 위해 미국행을 앞두고 결혼을 했다. 상대방은 친구의 유학길에 동행하는 조건으로 퇴사하고 미국에서 새로운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삶의 기로를 바꾸는데 서로가 ‘합의’했기에 가능한 결합이었다.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거나 빅 딜을 감행하고 결혼에 성공한 두 사람이 신기하고 부럽다. (두 사례 모두 사랑이 깔려있으니 가능한 선택이긴하다) 동시에 저 정도 협상이 가능한 상대의 이름을 혼인서약서에 올려야겠다는 의지도 강해진다. 그저 지금 사랑해서 만나는 이가 아니라 내 삶과 결혼생활이 병행 가능한 상대와 혼인하겠다는 소리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결혼을 못 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누군가의 삶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그걸 강요하고 싶지 않다.

결혼의 사회적 무게를 덜어주면 사람들이 결혼을 덜 두려워하지 않을까. 30대에 결혼해야 한다는 도그마가 제거되면 결혼이라는 선택지가 되레 매력적인 대안이 되지 않을까. 기혼자에게 스테레오 타입의 책무를 요구하지 않으면 결혼 부담이 줄어들지 않을까. 혼자 별의별 생각을 해보다 문득 결혼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이 무척 비루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A와 B처럼 앞으로 많은 부부들이 멋진 삶을 꾸러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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