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티스트의 상반된 매력
애초에 비교대상도 아니지만 한번 무리수를 던져본다. 알리샤 키스와 라디오헤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표면적으로는 장르겠지만 나는 두 아티스트의 가장 큰 차이가 가사에 있다고 본다.
라디오헤드의 가사는 형이상학적이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맥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희대의 명반 'OK computer'에 수록된 곡 ‘Paranoid Android’의 화자는 안드로이드다. (영국인들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의 무기력하고 회의적인 로봇 마빈말이다. 이런 배경을 파악하면 신경질적인 가사와 정신 사나운 곡의 흐름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곡의 전제와 행간의 의미를 곱씹게 만들며 팬들을 가두리 양식장에 몰아넣는 게 라디오헤드의 힘이다. 오죽했으면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란 책도 나왔을까.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Urdlvw0SSEc
하지만 <알리샤 키스로 철학하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리샤 키스의 노래엔 전제가 없다. 한번만 들어도 어떤 상황을 상정하고 곡을 썼는지 알아챌 수 있다. 청자와 노래 부르는 이 모두가 화자가 될 수 있다. 이 개방성이 알리샤 키스의 무기다. 알리샤 키스는 청자를 자신의 세계관에 가두지 않는다. 누구나 곡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끔 쉽고 보편적인 소재를 채택해 가사를 쓴다. 유명인의 삶을 부러워할 것 없이 내 삶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unbreakable'나 썸탈 때의 설렘과 깨지기 쉬운 아슬아슬함을 담은 ‘wreckless love’같은 곡을 들어보면 알거다. 알리샤 키스가 얼마나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 노래하는지.
그래서 이유없이 세상에 반항하고 싶을 때는 라디오헤드를 듣고 위로가 필요할 땐 알리샤 키스를 찾는다. 즉, 라디오헤드에 기대 나의 특별함을 찾고 알리샤 키스를 통해 내가 처한 상황의 보편성을 확인하곤 안심한다.
오늘 우연한 기회로 잊고 지냈던 알리샤 키스의 fallin’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알앤비 역사에 길이 남을 도입부를 기록한 그 곡 말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fallin은 사랑에 홀라당 빠져 혼란스러운 마음을 담은 곡이다. ‘Sometimes I love you, Sometimes you make me blue, Sometimes I feel good’ 요 가사만 봐도 화자가 감정에 휘둘려서 오락가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귀가하는 내내 ‘I keep on fallin′~ in and out~ of love~ with you~’를 흥얼거리는 나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배드민턴 치자고 꼬셔 또는 여~수~밤~바다~’를 하루 종일 부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알리샤 키스와 버스커 버스커는 닮았다고. 이게 보통 사람 시점을 담은 노래의 힘이라고. 그래 봄꽃 냄새 흠뻑 맡고 왔겠다, 오늘은 평범함의 날로 정했다. 라디오헤드는 환멸과 염세의 감각이 차오를 때, 그때 찾는 걸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