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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손 Jan 10. 2021

24. 기억할 만한 장례식에 갔는가

너의 아이도 아버지처럼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하게 될까?

여는 말: 최근 친구의 제안으로 ‘101가지 질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질문 하나씩 답하며 101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채우는 여정입니다. 친구와 저를 포함한 10명의 여성이 모였습니다. 같은 질문에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답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재밌습니다.

한 질문에 대한 모든 답변을 공유할 수 없어, 논의를 거친 후 질문 당 하나의 답변을 매거진에 정리합니다. 매거진에 공개되지 않은 답변 중에서도 매력적인 글들이 많은데 모두 공유할 수 없어 안타깝네요. 모든 답변을 읽을 수 있는 건 프로젝트 참가자만의 특혜겠죠? 낄낄.


삶은 때때로 엄혹하리만큼 매정하다. 오랜 친구인 A의 아빠는 그의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생명의 끈을 겨우 쥐고 있었던 친구의 아빠는 의사선생님에게 “우리 딸래미 시집갈 때 까지는 숨 붙어있게 해주소”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어느 가족이나 그렇겠지만 A와 아버지 사이가 마냥 애틋했던 건 아니다. 고인이 정정했던 시절 A는 아버지를 두고 고집불통, 꼰대, 노답이라고 종종 흉을 봤고 나는 맞장구를 쳤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너무 달랐던 부녀는 시종일관 으르렁댔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중계하는 TV 앞에서만큼은 조용했다. 둘 다 야구 골수 팬이었던 것. 이럴 때 보면 가족관계란 설탕과 고춧가루가 얽히고 설켜 중독적인 맛을 내는 비빔국수 같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당시 A의 약혼자 오빠(현남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장례 준비에 바쁜 K 장녀인 A를 대신해 내게 부고소식을 알려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나는 오빠를 보고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터졌다. 고인과 그 오빠 사이에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득 미래의 남편과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흥미로운 대소사를 중간에서 모두 지켜본 A의 마음은 얼마나 황망할까 싶어 가슴 한 켠이 시렸다. 내 등장에 얼굴을 비춘 A의 눈두덩이는 예상대로 빨갛게 부어 있었다.



“바보같이 오랜만에 가을야구 진출했는데 그것도 못 보고 가나. 진짜 팬 맞나.” 아버지의 관이 화장터로 들어가는 영상을 보고 목놓아 울던 A는 메인 목소리로 떠난 아버지에게 핀잔을 줬다. 우리는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얼굴로 서로 부둥켜안으며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다. 생전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우렁찼던 A의 아버지는 한 줌 재가되어 돌아왔다.


한 달 뒤 치러진 A의 결혼식. 버진로드에 오른 둘을 보자 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정작 A는 씩씩한데, 영혼에게 육신을 하루라도 빌려줄 수 있다면 한 달 전 떠난 A의 아버지에게 내 육신을 빌려주고 싶다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했었다. 현재 A는 지금 자기랑 똑닮은(남편이 섭섭할 정도로 A의 유전자가 몰빵됐다) 아이를 낳고 잘 산다. 늘 그래왔듯이 씩씩하고 당당하게. 다시보면 A와 떠난 아버지도 참 닮았다. 문득 A의 딸아이도 훗날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되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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