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Right Hands Nov 27. 2018

두서없이 풀어보는 국제개발쟁이의 흔한 고민들

답은 딱히 없지만...

환경은 변하는데손에 쥔 건 예전 지식

종종, 국제개발협력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로, 세상의 여러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 같은 묘한 의무감을 느낄 때가 있다. 넓은 국제개발협력 분야 모두에서의 변화야 감히 다 따라가기 버겁겠지만, 최소한 내 업무 분야에서 만이라도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랄까.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의무감만큼 행동이 따라가고 있지 못할 때가 더 많아서, 의무감과 죄책감이 혼재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많은 업계가 비슷하겠지만, 과거의 지식과 방법, 사례에 정체되어 있으면 좋은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특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분야가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종사자와 국제개발 단체들의 ‘정체’는 특히 더 위험할 수 있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는 상당히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고민, 논의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졌고, 사람의 삶을 다룬다. 그래서 업무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 형태와 지향점, 사용하는 사업방법과 대상들이 계속해서 변화한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은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나간 지식이 되어 있을 확률이 아주 높고, 변화하는 현상에 맞추어 업계 종사자에게 기대하는 바는 더 다양해진다.      


그러다보니, 과거에 사용했던 소득증대 방법, 과거에 사용했던 교육사업 방법 등등.. 과거에 사용되고 꽤 좋은 성과를 냈던 사업방법들을 그대로 적용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기존에 사용하던 방법을 지금 상황에 적용하고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상당히 신경 쓰이고 고된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벅차서 더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게 최선입니까확실해요?”

블록체인, 가상화폐, 유튜브 크리에이터, 3D 프린팅, SNS 마케팅, 에드포스트, 4차 산업혁명 같은 단어들을 접하고 있는 시대에,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의 가난한 아이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바느질하고 재봉틀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정말 충분한 걸까? 우리는 교육이 힘이라며 기존 교육 지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대상이 된 아이들은 돈이 생기면 옷이라도 몇 벌 떼다가 페이스북을 통해 팔아보려고 하고 있는데?     


물론 사회와 경제의 발전 과정은 각 국가마다 다르고, 그 상황에 따라 처한 환경이 다 다르니 과거에 사용했던 방법이 지금 이 시점 어떤 특정 국가에서는 꽤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정말 이 정도 까지만 해도 괜찮은건가. 이게 정말, 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인가. 가난을 이기는 과정을 이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게 혹시, 인지하고 있지 못한 무책임의 다른 모습이면 어쩌지? 누군가에게 선의로 한 길안내가, 사실은 오히려 멀리 돌아가게 하는 잘못된 정보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가난과 선택지의 관계

우리가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뭘까?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가지고 있는 이유나 목표가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는 아이들이 그냥 아이답게 살 수 있길 바라서, 누군가는 기본적인 의식주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아파서, 또 누군가는 우리나라가 6.25이후 많은 나라의 원조를 받았었으니 우리도 다른 어려운 나라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나의 경우는 가난으로 인해 누군가의 삶에서 선택지가 삭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몇몇 저개발국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의 여자 아이들이 외국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것도 그 아이의 선택이었으니 함부로 불쌍히 여기는 것은 무례하다고 할 수 있다. 맞다. 국제개발협력 일을 한다는 것이 저개발국의 누군가를 함부로 불쌍히 여길 자격을 갖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나는 이런 케이스를 볼 때, 그 아이가 과연 ‘선택’을 할 수 있었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정말 스스로 그 방법을 ‘선택’한 것인지, 혹 상황에 강제당한 것은 아닌지 보고싶어 한다. 지역 내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먹고 살 길이 정말 전무해서, 살기위해 성을 파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면, 이걸 ‘선택’했다고 할 수 있는가? 이 환경이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두고 선택을 ‘강제’했다면? ‘굶어 죽거나, 성을 팔거나’라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결정했다면, 그것이 ‘강제적’이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선택의 자유’가 부족하게 주어진다. 심지어 선택지가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가난 속에 삭제되는 선택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

환경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는데, 기존의 방법에 너무 메여있으면, 자칫 중요한 선택지를 전달하는 데에 실패할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새로운 내용을 배우고 일에 접목해보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운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최적의 것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것들을 뒤져보고 적용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시도는 힘이 든다. 참고할만한 사례가 부족한 경우가 많고,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 당황하는 경우도 많다. 기존 성과가 없다면 펀딩을 받기도 쉽지 않다. 남들 다하는 일 비슷하게 하면 되지 왜 새로운 걸 들고 나와서 고생만하고 성과도 못 내느냐고 핀잔을 듣게 되기도 한다.      


나는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용해야 하는 상황이 이전과 다르다고 느꼈고, 기존 방식에 의문이 들었다면, 번거롭고 귀찮아도 반드시 다른 방안이 있는지 찾아보고 정말로 기존 방안을 그대로 따라가도 괜찮은지 확인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일이 사람의 삶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의 결과에 누군가의 삶이 달렸다고 생각하면, 결코 상황을 간과하거나 방관할 수 없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하다. 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의 선택지도 절실하고 절박하다.           



그래서 계속되는 고민그리고 시도

누군가의 삶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택지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환경이나 가난, 개인의 힘으로 혼자 헤어 나오기에 턱없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돕는 것, 누군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지가 삭제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망을 치는 것, 나는 그게 이 일의 아주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흔하고, 답을 몰라 답답한 고민들을 계속하고, 혹 참고할만한 좋은 방법이 있을까 다른 분야를 두리번거린다. 다행히 우리 단체는 지금까지 이런 고민들을 존중하고, 다양한 시도를 응원해 줬다. 뜬금없이 미술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베트남에 갈 봉사단을 만들어보겠다고 해도 응원해줬던 동료들 덕분에 지난여름 정말 봉사단과 함께 미술봉사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 얘긴 다음 글에서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공부 끝내고 취직하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일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생각을 안 하면 누군가의 삶에 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 사실 종종 이 일이 무섭다. 일하다보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점도 많고, 놓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고민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못하지만,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도 내 일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고민 끝에 몇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 시도 끝에 단 하나라도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면, 또는 최악의 결과를 막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한국인 국제기구 들어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