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으로 말해주는 베트남 가족의 변화
베트남 식수 캠페인 이야기
식수 캠페인.
많은 국제개발협력 기관들이 기본적으로 많이 하고 있는 사업 아이템이다.
대세를 따라간다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우리 단체에서도 작년에 이어 식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식수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베트남 시골마을, 특히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역 정부 자체에서도 예산이 부족해서 상수도 시설이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자신의 돈을 들여서 집 안에 우물을 파야 한다. 그리고 물탱크를 집 지붕이나 마당에 두고 그 물탱크에서 나온 물로 생활을 한다. 이런 얘기는 하루에 2천 원을 버는 가난한 집에는 남의 이야기 이란다. 물탱크를 사는 비용이 고작 $100 정도인데, 하루에 2천 원을 벌어서 쌀도 사고, 반찬거리도 사고, 아이들 학비도 내야 하는 집에서는 우선순위가 밀리는 물품이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이들의 선택은 이웃집에서 물을 길러오는 것. 매일 이웃집 우물에 가서 양동이 가득 물을 길러서 어깨에 이고 온다. 한 번에 옮겨올 수 있는 양동이 수는 딱 2개. 물을 가득 담은 양동이 무게는 40kg나 된다. 워낙에 깡마른 베트남 사람들인데, 40kg이나 되는 무게를 어깨에 이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왠지 아슬아슬하다..
아프리카에서 물 문제를 해결하려면 땅을 깊숙이 파야 하거나 대용량의 물탱크를 설치해야 한다. 즉,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베트남 이 마을은 그보다 훨씬 사정이 낫다!
현지 직원에 물어보니 양수기를 이웃집 우물에 설치하면 된단다. 그리고 물탱크를 연결하면 끝. 비용도 $200-$300이면 된다고 한다. 너무 간단했다! 적은 예산에 비교적 간단한 설치 과정이면 이들의 생활을 바꿀 수 있다는 결론에 우리 단체도 작년에 이어 식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진행했던 식수 사업의 결과보고서를 베트남 현지 직원에게서 받았다. 수혜가족들 사진과 함께.
사진 속의 가족들은 얼굴이, 표정이 너무 달라져 있었다.
그중 눈에 유난히 띈 할머니 한 분의 사진.
사진 속 환하게 웃는 할머니는 세상 행복해 보였다!
매년 사업의 진행하고 결과보고서를 받고 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고 있지만,
사업비가 어떻게 잘 쓰였나, 영수증 증빙은 제대로 왔나, 변화된 수치는 어떤 게 있나 등의 내용을 확인하느라
그동안 정작 이들의 표정에서 말하고 있는 변화를 알아차리진 못했다.
결과보고서를 쓰다 상상해보았다.
매일 무거운 양동이를 짊어지고 다녔던 아침 일과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변화는 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일까? 아이들에게는 다른 집들처럼 내 집 앞마당에서 물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변화일지.
사실 어렸을 때부터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환경에 살았던 나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생활의 변화가 얼마나 편리한지 충분히 가늠하기 힘들 거 같다. 단지 가끔 아파트 물탱크 청소로 물이 단수되어 물을 몇 시간 동안 못써본 경험? 대학생 때 봉사활동을 갔던 아프리카에서 며칠 동안 물을 아껴서 써본 경험?
물을 사용하는데 제약이 있던 경험은 이런 것이 전부일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경험도 몇 시간, 몇 일자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역시 추억이 될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이 가족들은 다르다.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 어깨가 짓눌리는 고통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다른 집 아이들과 자신의 집의 경제적인 차이를 매번 실감하게 만들고,
더운 베트남 날씨에 아이들은 물장난을 칠 수 도 없고 물 양동이에 채워진 물의 눈금을 보며 어머니의 눈치를 봐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일상을 살던 이들에게 집 마당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생활의 변화는 그 자체만으로 놀라운 변화일 것이다.
우리는 물품을 지원해주고 이 물품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설사 발병률, 가족의 소득증대, 가족 구성원의 건강 개선 등의 객관적인 자료를 무던히 찾아내서 후원자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지만...
(이 역시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객관적인 수치보다 수혜 가족들에게는 수도꼭지를 틀고 물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변화이자 만족이 아닐까 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상상을 해본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노동이 아닌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물을 나르느라 생겼던 어깨의 굳은살이 없어지고,
아이들은 대야 하나 가득 물을 담아 목욕을 가장한 물놀이를 할 수 있고,
다른 집과 우리 집을 비교하며 처졌던 아이들의 어깨가 올라가고,
이런 변화로부터 오는 이들의 만족을 가족들은 자신들의 표정에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에겐 양수기와 물탱크, 수도꼭지에 나오는 물 자체만으로 놀라운 변화예요!" 라며..
굳이 우리가 다른 수치들을 찾아내서 우리의 지원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왔는지 증명하지 않아도
가족들의 얼굴 표정에서 그 효과를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사실 가족들의 생활이 편리해지고 삶의 만족감이 높아졌으면 사업의 목적을 달성할 것이 아닐까..?
(물론! 결과보고서를 써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고자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모금이 잘 된다면..!) 베트남 가족들을 위한 식수 캠페인은 지속될 것 같다.
이다음엔 어떤 가족들의 표정이 이처럼 환해질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