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감상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기회에~
지난 추석, 딱히 갈 데는 없고 하던 대로 고향집에 다녀왔다. 연휴가 길다고 다들 설레어했지만, 막상 긴 연휴 동안 집에만 있으려니 오랜만에 만난 부모형제라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암 쏘리 마 풰밀리!). 그렇다고 가족들 다 모여 있는데 나만 나돌아 다닐 수가 없어서 집 근처에 어디 갈 데 없나 하고 찾아보던 중 옥천 장령산 용암사(長靈山 龍巖寺)를 발견했다.
사실 용암사의 존재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회사 홍보실에서 일할 때 이 절을 소재로 홍보콘텐츠를 만든 적도 있었다. 일출 명소로 꽤 이름이 알려진 절이었던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야 하나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너무 가까이에 있는 것은 어쩐지 가치를 낮춰보는 요상한 통념 때문에, 심심해서 벽을 긁거나 바닥을 뒹굴지언정, 10년 전 5년 전에 봤던 영화를 또 보고 볼지언정 용암사에 가 볼 생각은 안 했었다.
그러다가 고향에 머문 지 사흘째 되던 날(이번 연휴는 날씨마저 궂어서 동네 산책도 포기한 채로 '먹고 자고 티브이보고'만을 반복하며 신발 신는 법을 잊을 때 쯤이렸다) 남편이 "근처에 용암사 있는데 내일 새벽에 가볼래?"라고 물을 때 발딱 일어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러마 했다.
사실 그때, 딱히 묻거나 따질 것은 없었지만 최소한 날씨는 체크했어야 했다고(흰 구름 밖에 안 보이는 사진을 찍어 동무들에게 보여주었더니 흰 도화지를 찍고 구름이라고 속이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으므로) 나중에 뒤늦은 후회를 조금 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용암사는 너무 좋았다. 일단 고향집에서(남편의 고향집이다) 매우 가까웠고, 대도시에서 가깝다거나 다른 관광 요소가 있다거나 하는 편의가 없어서인지 관광 명소라기엔 너무 한적했다. 시골 동네의 뒷산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용암사라는 작은 절 위에 운무대(雲霧臺)라는 일출명소가 있어 새해 첫날에는 꽤 붐빈다는데 일단 추석 연휴 셋째날에는 아무도 없었다.
용암사는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지어진 이름인 만큼 가파른 벼랑의 측면에 지어진 절이다. 주차하다 후진 잘못하면 벼랑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주차장을 지나 좁은 측벽사이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여기쯤이 끝인가 하고 고개를 들어보면 시선 끝에 대웅전이 걸렸다. 이른 아침이고 안개가 꽉 차 내려앉은 날씨라 모든 게 어둑하고 침침한 가운데, 환하게 불을 밝힌 대웅전의 아미타래여좌상이 사바의 빛을 받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용암사는 천축국(天竺國)에 갔다가 귀국한 승려 의신이 552년(진흥왕 13)에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찰명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용암사로 이름 지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손에 용바위는 파괴되어 현재에는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대신 대웅전의 목재 아미타여래 좌상은 1880년에 불상 안에서 1651년에 만들어진 다라니경이 발견됨에 따라 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600년을 넘게 절에서 중생들을 만난 부처님의 온화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슬픈 마음이 들었다. 밖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에 맑은 공기, 청아한 새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곳인데 부처님은 그저 잠시 스치는 바람, 멀찍이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짐작해야 하는 처지이지 않은가.
하지만 찾아와서 경배하고 소원을 비는 많은 불자들의 마음으로 이미 세상 모든 것을 보고 계시려나? 내 협애한 생각이 불평불만만 많은 건가?
혼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며 부처님의 얼굴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조금은 앳된 보이는 부처님이 맞다 다 맞다 해주시는 것도 같다.
용암사의 두 번째 시그니처는 대웅전에서 왼편으로 조금 올라간 언덕 바위에 새겨진 여래입상이다. 전체적으로 선명한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서 관찰하기가 좋았다. 서있는 모습이 균형 잡혀 있었고 옷의 주름이나 표정이 적절히 양감이 있었다. 지면에서 다소 떨어져 암벽의 중간에 새겨놓아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인 것도 재미있다. 발 밑에는 예의 귀여운 동자상들이 놓여 있는데, 개구진 표정들이 곧 여래부처님의 발끝을 간질이기라도 할 것 같았다.
불상 앞에 세워진 설명을 읽어보니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 용바위에 올라가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마의태자를 추모하였던 신라의 후손이 염불 하는 태자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미륵불을 조각했다고 한다. 통곡한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는데 신라의 마지막 임금의 아들이니 이후에 신라는 멸망했고 마의태자는 결국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과 나라의 슬픈 운명 때문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다.
사찰을 지나 드디어 일출 명소라는 운무대에 올랐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오르막을 올라온 중생의 땀을 식혀 주었다. 옥천이라는 소도시를 부감하는 아주 좋은 장소였다. 다만, 날씨가 협조적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던 작은 절을, 옥천을 들락거린 지 10여 년이 지난 후에나 와보았다는 질책, 혹은 다음에 또 오라는 격려라고 생각한다.
회사 홍보실에서 내가 보낸 포토그래퍼는 이곳 용암사에서 세상 멋진 일출사진을 찍어왔더랬다. 일출사진, 나도 꼭 한번 찍어보자.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이 찾아오겠습니다, 부처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