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 든 길이 나를 이끈 곳은 결국 사찰
처음부터 사찰에 갈 생각은 아니었다.
템플트립은 보통 이다까씨와 함께 다녔고 마침 운문사도 가까운 후보지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다음번 트립에 가겠거니 하고 있었다. 그저 가을이 되어 햇사과가 나오길래 가까운 밀양 얼음골에 사과를 사러 나선 참이었다.
어딘가 교차로에서 살짝 길을 잘 못 든 것 같았는데 가다 보니 멋있는 산들이 있고(나중에 보니 무려 영남 알프스!) 그 한 자락 끝이 운문사에 닿아있었다. 여행지를 알리는 갈색 도로표지판에 '처진 소나무'라고 쓰여있었고, 처진 달팽이도 아닌 처진 소나무가 뭔지 보기는 해야겠다 싶어 결국 운문사길에 들어서고야 말았다.
지난번 사찰의 문을 공부하면서(<번외 편: 사찰의 문> 참고 https://brunch.co.kr/@handsup/14) 배운 대로 일주문부터 차례로 확인하며 지나가려 했으나 운문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운문사는 일주문도 금강문도 생략한 채, '호거산운문사(虎踞山雲門寺)'라고 적힌 현판을 단 범종루부터 시작되었다. 같이 간 이에게 얕은 지식 자랑하던 나는 아직 더 배우라고 부처님한테 딱밤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범종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바로 그 ‘처진 소나무’가 있었다. 어떤 물리력으로 옆으로 자라게 한 것이 아니라 원래 나무 자체가 옆으로 넓게 자라는 종이라고 한다. 소나무의 나이가 400년이 넘었다는데 높이는 4~5m밖에 안 되고 솥뚜껑을 엎어놓은 양 완만한 능선으로 떨어지는 모양이 아주 멋있었다. 이것 역시 내가 가지고 있던 소나무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은 느낌이다. 오늘은 기존에 내가 알던 지식과 경험은 내려놓고 사바세계의 순리대로 따라가 보리라.
처진 소나무 옆으로 벽이나 문이 없이 사방이 탁 트인 건물인 만세루가 있다. 넓은 마당 앞에 사방이 트이고 층고가 높은 누각이 있으니 공간감이나 개방감이 다른 전각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사찰에서의 누각건물은 큰 법회 시에 대웅전에 들어가지 못한 대중들이 대웅전을 향하여 법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만든 건물이라고 한다. 이 너른 누각이 스님들과 불자들로 가득 차면 얼마나 멋있을까 상상해 본다.
큰 규모의 대웅보전에는 불상과 탱화가 여럿 모셔져 있었다. 불상으로는 연등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이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고, 뒷면 탱화로는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어 다양한 부처님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은 다른 대웅전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윤장대가 불단 양측에 있었다. 윤장대는 말하자면 책장인데, 팔각형으로 된 책장에 밑에는 바퀴를 달고 중앙에는 기둥을 세워 궤를 돌리면 찾고 싶은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든 책궤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편리함을 위한 기술을, 한편으로는 불교미술의 예술성을 볼 수 있었다.
대웅전에서 나와 돌담을 따라 크게 돌아보니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전각들이 많았다. 규모는 작지만 각각의 목적에 따라 특징을 갖고 있었다.
오백전의 오백명의 나한은 처음에는 오열을 딱 맞춰 앉은 각에 살짝 기가 눌렸다가 각각의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달라서 다시 한번 놀랐다. 피부색이나 수염모양 등도 다양해서 역시 불교는 세계 종교다 싶다.
작압전에는 석조여래좌상과 부조 사천왕상이 있다. 작은 전각 안에 5가지의 불상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원래 이들의 자리가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한데, 언제 어떤 이유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어 신비감을 더했다. 양쪽에 세워진 부조사천왕상은 금강문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모양인데 사각형모양으로 깨끗이 잘린 것이 다른 조형물에서 떼어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제법 큰 전각이 나와서 현판을 보니, 어랏? 또 '대웅보전'이라고 적혀 있다.
아니 이 절은 대웅전이 두 개란 말인가??!! 뭔가 큰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은 전각 앞에 세워진 설명판에 자세히 적혀 있었다.
『운문사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한 신승이 창건하였다. 608년(진평왕 30)에 원광 국사가 제1차 중창을,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이 제2차 중창을 진행했다고 한다. 3차 중창은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 뒤 귀국하여 운문사에 들어와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소실되었다가 1690년 (숙종 16) 설송(雪松) 대사가 제4차 중창을, 1835년 운악(雲岳) 대사가 제5차 중창을, 1912년 긍파(肯坡) 대사가 제6차 중창을 하였다. 1913년 고전(古典) 선사가 제7차 수보 하였고, 비구니 금광(金光) 선사가 제8차 수보를 하였다. 1977에서 98년까지 명성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대웅보전과 범종루와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는 등 경내의 면모를 한층 일신하였다.』
요약하면 신라시대 지어져 아홉 번에 걸친 중창을 통해 절의 규모가 커졌고 지금의 대웅보전은 1977년 현대에 들어서 지어진 전각이란 얘기.
대웅전 내부에는 석조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는데 뒤로 보이는 탱화가 조선 후기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삼신불회도(三身佛會圖)다. 한 화폭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등 삼신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을 함께 그린 삼신불회도로서 처일(處一)과 성징(性澄), 유성(有性), 포관(抱寬) 등 19명의 화승이 함께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탱화 미술계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분들이라는데 저는 모르옵니다. 죄송...). 오래된 만큼 색의 선명도는 떨어졌지만 많은 색채를 사용하지 않아서도 각 존상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또한 구도에서는 총 40구에 달하는 많은 인물들을 표현하면서도 위로 갈수록 인물을 작게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어 공간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여기서 잠깐! 위의 비로자나불 측면 사진에는 운문사 대웅전의 숨은 보물이 있다. 이를 힌트 없이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눈썰미가 좋거나 불심이 뛰어나서 알아챔이 남다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운문사 대웅보전의 스타는 바로 이 '악착동자'다. 가만 보면 양측에 용머리가 달린 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이 악착동자(악착보살)의 전설은 이렇다. 옛날 어느 마을에 청정하고 불심이 아주 깊은 사람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반야용선이 도착했는데 이 용선을 타야 할 어떤 이가 자식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길게 나누다가 늦게 배를 타는 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이에 울면서 배에 태워 줄 것을 간절히 빌자 배의 사공이 밧줄을 던져주었고 보살은 던져 준 밧줄에 악착같이 매달려서 마침내 서방 극락정토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악착보살’이다. 우리가 '악착같다'라고 말할 때의 악착이 바로 이 악착인 것이다.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보게, 못 알아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게, 특별한 설명도 없고 크기도 코딱지만 해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어떻게든 악착같이 붙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도 어쨌든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절 굿즈는 그만 사라는 동행자의 만류를 귓등으로 듣고 '악착같이' 반야심경 반지와 목탁을 구매하고 절을 나왔다. 잘못 들어선 길도 좋은 길이 된다는 걸 하나 더 배워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