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 3. 김천 수도암

완전한 고요, 완전한 침묵을 만나다

by 김벼룩

요즘 들어 절에 꽤 많이 다니고 있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곳은 처음이다. 간간이 마주치는 비구니 스님들 외엔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여기는, 경북 김천 수도산 자락의 수도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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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암은 조계종 청암사 부속암자다. 통일신라 헌안왕 때(859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뒤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 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나 6·25 때 공비 소탕 작전을 펼치면서 전소된 뒤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공비가 출몰할 만큼 깊은 산속에 있어서인지(해발 900m가 넘는다!), 산 하나만 넘어가면 한국 3대 사찰 중 하나인 해인사가 있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작은 절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우리를 빼면 관광객 하나 없이 조용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서도 송곳은 날카롭고, 진흙 속에 피었어도 연꽃은 아름답듯이 조용한 이 절에도 빛나는 보물은 있었다. 바로 법신불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약사여래불로 추정되는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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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에서 배운 것을 조금 복습해 본다. 비로자나불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진리로서의 부처님이다. 비로자나불상은 진리를 감아쥐듯 손가락을 감아쥔 손모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 정말이다, 손가락을 쥐고 계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이 수도암 비로자나불좌상은 높이 251㎝로 장대함에 있어서는 석굴암 본존에 버금가는 거불(巨佛)이라고 한다. 사각형의 풍만한 얼굴은 위엄 있지만 옷 주름은 느슨하고 형식적으로 표현되었고, 위축되고 탄력성이 줄어든 조각 기법은 고려시대 석불로 넘어가는 통일신라시대의 과도기적 불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진리의 부처님께 정성스레 참배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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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바로 옆 건물(^^;;;) 약광전에 있는 보살좌상이다. 앞서 약사여래불로 ‘추정’된다고 했는데, 마모가 심해서 학자마다 조금 다르게 해석해서 그렇다. 머리에 문양 없는 원통형 관을 쓰고 있고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아 보주(寶珠) 같은 것을 들고 있어서 그런 모양인데(약사여래불은 병을 치유하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부처님으로 손에 보주나 약기(藥器)를 든 모습이라고 역시 <번외편>에서 배웠다), 또 다른 학자들은 연꽃무늬나 받침을 봤을 때 아까 봤던 비로자나불과 같은 비로자나불로 보기도 한다. 정확한 건 천백 년 전 석공과 부처님만이 아시겠지 하며 참배 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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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앞마당의 동·서 삼층석탑과 선원, 나한전 등을 다 둘러보고 나오는데도 역시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다. 사람소리 차소리가 없으니 그 빈 공간을 풍경소리, 새소리가 채운다. 사찰을 구성하는 요소에 사찰 건물이나 불상, 탑이나 탱화뿐 아니라 ‘소리’가 들어간다는 걸 처음 알았다.


주차장으로 나오다 보니 개울 건너에 또 절이 보인다. 본 절인 청암사다. 희한하게 수도암은 청암사의 부속암자인데 소속 절인 청암사보다 유명하다. 뭐 그런 일이야 살면서 종종 있기는 하다. ‘주객이 전도’되기도 하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기도 하고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더 푸르’ 기도 하니까. 청암사의 작은 마당에는 초파일의 흔적인 연등이 아직 그대로다. 그런데 그보다는 조용한 가운데 징 소리, 목탁 소리 같은 것들이 박자에 맞춰서 들려오고 있어 발걸음을 끌어당겼다. 조심히 대웅전에 다가서니 비구니 스님 셋이 징과 목탁, 북(작은 북으로 보였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으로 합을 맞추고 있었다. 단순한 악기들의 조합이 은근히 매력 있다. 특히 목탁이 악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 더욱 신선했다.


나오는 길에 공양미 무인 판매대의 작은 쌀주머니가 귀여워 보고 있자니 이다까씨가 다가와 묻는다.

“저거 사가서 집에서 밥 해 먹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답하려다가 생각해 보니, 공양미용으로 따로 포장되어 팔리는 것이라 딱히 맛 좋은 쌀은 아니겠지만 부처님께 바쳐질 쌀로 밥을 지어먹으면 어쩐지 부처님과 한솥밥 먹는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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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중국집에서 콩국수 한 사발 때리고 카페 검색했더니 다행히 나왔다. 시골 커피숍의 커피 퀄리티를 궁금해하며 들어간 산촌 카페의 바리스타는 뽕잎을 다듬고 계셨다. 손님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뽕잎을 살짝 밀어놓고 앉았다. 뽕잎 덖는 솜씨로 커피콩을 볶으시나 보다. 커피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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