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루 잘 보내셨나요? 두 번째 글씨입니다.
햇빛이 어제보다 조금 더 너그러운 것을 보니 슬쩍 봄이 오려나봅니다. 시간은 뚜벅뚜벅 갑니다. 누구 사정도 봐주지 않아 야속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다행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따라 살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또 겨울이면 어떡해요.
문득 지난 시간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주로 후회나 안 좋았던 일들이지만, 운이 좋은 날이면 편안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담배를 피우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되는데요. 기분 좋은 기억이 났다 하면 얼른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넣습니다. 몇 안 되는 즐기는 순간이잖아요. 이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소소하고 가볍고 정보 없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옛적에… 하, 하, 옛날이야기 좀 해 볼게요.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이네요, 옛 장면. 다시…
옛날 옛적에, 카페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던 시절에, 세련된 카페는 흡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던 시절에…
별일 없이 마음이 아프면 주로 종로에 나갔습니다. 비교적 가깝고, 카페도 많으니까요. 마음이 조금 더 힘들면 여의도로 갔습니다. 조금 더 멀지만 오가는 시간도 길어 마음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거든요. 여의도 카페 흡연실에 앉으면 대충 저녁 7시, 8시 정도 되었을 거예요. 정말 추억의 장소죠. 지금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당연히 흡연실은 없을 테고요. 추억은 확인하지 않는 게 좋겠죠?
아무튼 그 시간쯤이면 항상 외국인이 한 명 앉아있었습니다. 에스프레소, 탄산수, 두껍지 않은 시가를 앞에 정갈하게 늘어놓고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몸에 딱 맞는 수트를 입고, 무럭무럭 수염도 깔끔하게 정리한 이 멋쟁이는 말이죠.
탄산수를 시원하게 들이키고, 에스프레소를 툭 털어 마십니다. 왜 있잖아요, 참 잘 즐기는 사람, 딱 이 사람입니다. 자, 일단 다 마시고 나면 시가를 달궈 입안에서 돌리며 맛있게 연기를 내는데… 이야, 정말 연기도 풍부하고, 무겁고 달콤한 시가 향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어쩜 그렇게 잘 즐길 수 있는지… 커피도, 담배도요.
그리고 다음 장면은 주차장 혹은 버스 정류장 근처입니다. 그곳을 떠나기 전, 집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 담배를 피우는 제 모습이에요. 겨울에는 추웠고, 여름에는 땀나고 불쾌하고, 무척 피곤하고요. 실내에서 거의 줄담배를 하다 나왔으니 몸이고, 옷이고 전반적인 컨디션이 오죽하겠습니까. 지치고 냄새나는 제가 그렇게 후줄근하게 있을 때…
종로든 여의도든 북적거리고 화려한 도심 거리가 잠깐 고요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무덥고 습도 높아 끈적이는 여름, 텁텁하고 복잡한 시내 거리를 터벅하게 걷고 있는데, 활짝 열린 화장품 전문 매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았을 때랑 비슷한 기분인데요.
정말 기가 막힌 순간이에요. 신음 같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담배도 충분히 남았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다시 시끄러워질라 조마조마하는데 자박이듯 조용히 천천히 그리고 얌전하게, 으르르 타이어의 아스팔트 밟는 소리로 아련하게 마무리가 되면. 그날 밤은 정말 완벽한 순간이 되고, 오늘 같은 날, 운이 좋으면 기억합니다.
커피 좋아하세요? 네, 저도 좋아합니다. 엄청나게 마시는데요. 가만히 보면 카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뭐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되나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장소나 분위기, 같이 했던 사람…
어… 보통은 대화가 이렇게 알맹이 없이 이어지면,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머쓱해집니다. 오늘도 그렇네요. 쑥스럽지만 오늘 글씨로는 이 장면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기억한 기분 좋은 추억 한, 두 장면이었습니다. 어제 같은 오늘이라 이러다 말겠군 하는 조급증이 올라올 뻔했는데 덕분에 잘 넘긴 것 같습니다.
네, 저의 하루는 어제와 별 다름없습니다. 청소, 설거지 같은 생활 노동 말고는 달리 뭐 했다고 할 만한 게 없어요. 그럼에도 늘 피곤합니다. 사는 건 도대체 얼마나 힘든 일인 걸까요?
그래도 살아 이렇게 글씨를 씁니다.
뭐 하면서 살아?
나 글씨 쓰면서 살아.
글씨 쓰면서 사는 삶은 어떨까요. 모르겠으니 알아보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지만, 여기는 괜찮으니 어떤지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