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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딜러 한혜미 Mar 12. 2020

1000억 원을 넘긴 유일한 조각가, 청담에서 만나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루이뷔통 재단 미술관, 소장품 전시 리뷰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 컬렉션 소장품 전시, 루이뷔통 메종 서울

/2019.10.31~2020.01.19 전시 리뷰



*

- 불안정한 느낌이나, 동시에 강인하다

- 단상(받침대)까지가 한 작품이다

- 작품명이 군더더기 없이 정직하다

- 작가는 살아생전 명예를 얻었으나, 좁은 작업실을 고수했다

- 미술 경매에 등장한 작품들이 여러 번 1000억 원 이상으로 낙찰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싼 조각가'가 되었다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피카소가 질투한 천재 예술가, 1000억 원을 넘긴 조각가, 세계에서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싼 조각가.. 그를 둘러싼 수식어는 참 화려하다. 살아생전에 부를 누렸지만, 마지막까지 좁은 작업실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간 작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청담에서 만나고 왔다.


그는 로댕의 제자에게 조각을 배웠고 브랑쿠시의 영향으로 실험적인 작품들을 제작했다. 작품들은 언뜻 보기에는 불안정하고, 곧 쓰러질 것 같지만 볼수록 강인한 힘이 있다. 아슬아슬함과 강인함의 경계선. 작품들은 그를 닮았다.


페기 구겐하임은 그를 '사자같이 생겼다'라고 회상했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사자 같은 인상과 스타일의 조각가. 하지만 그는 광활한 작업실이 아닌, 그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좁은 곳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좁은 작업실마저 그는 '처음에는 매우 좁다고 생각했는데, 작품 활동을 이어갈수록 이 공간이 넓게 느껴졌다'라고 했다.


*여담으로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은 자코메티의 작품을 2차 세계대전 중에 구입했다. '비싸지 않았어요?'라는 질문에, '전혀요. 그 시절은 작품 가격을 흥정할 필요가 없었어요'라고 답했다. 그녀의 선구안이 부럽다. 그땐 얼마에 구입했을까. 이럴 땐 또 직업병이 나타난다.





페기 구겐하임이 구입한 자코메티의 작품들, 구겐하임 재단 소장





이번 전시는 총 여덟 점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겨우 여덟 작품 밖에'라는 블로그 후기글에 조금 안타까웠다. 아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전시가 무료인데, 게다가 도슨트 설명까지 있는데! 도슨트 분도 이런 후기글을 의식했던 걸까.


'이번 전시는 총 여덟 점의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대표작입니다. 오늘 이 작품들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좌)베네치아의 여인III, 우)키가 큰 여인II




안내를 받고 들어서면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작업실이 담긴 사진이 배경으로 있고, 그 앞에는 두 작품이 서 있다.


왼쪽의 작품은 '베네치아의 여인 III', 오른쪽 작품은 '키가 큰 여인 II'으로, 작품명이 하나같이 참 정직하다. 보이는 대로다.

(이후 만나볼 작품명도 '걸어가는 세 남자' '남자 두상' 등 군더더기 없이 이름을 붙였다)



아래는 루이뷔통 재단의 안내서와 도슨트님의 설명, 그리고 개인적인 견해를 종합해서 정리한 내용이다.



*베네치아의 여인 III (1956년, 118.7x17.9x35.2cm)

1956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6점의 연작 중 하나로 초기에는 석고로 제작되었다. 누드의 여성은 움직임 없이 앞을 응시하고 있으며, 인물의 두 발은 나란히 함께 붙어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옆으로 길게 내린 팔은 잘 보이지 않으며, 작품의 발은 신체에 비해 매우 크다. 발의 크기와 직사각형 모양의 단상, 그리고 작품의 표정에서 단단함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길고 얇게 팔다리를 만들어서, 인물의 신체에서 분리되었을 때 느껴지는 창작의 위태로움을 표현했다. 구체적인 묘사와 모델에 대한 정보가 없는데, 인물의 형태적 특징을 최소한으로 줄여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 인간과 인간성을 상징하고 있다



*키가 큰 여인 II (1960년, 277x29x57.2cm)

누드의 여성을 표현한 마지막 연작이다. 자코메티의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뉴욕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건물 앞 광장에 설치할 작품을 제안받고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뉴욕에 한 번도 방문해보지 못했던 자코메티는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높이로 작품을 제작했고, 이 작품을 본 그의 지인이 '그곳에 전시하려면 지금의 몇 배가 되어야 한다'라고 얘기해줬단다. 경사진 받침은 위로 뻗어 나가려는 인물의 움직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실루엣과 과장된 발은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영원에 대한 고찰을 제안하는 작품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키가 큰 여인 II




'먼 훗날인 지금 한국에서, 이 작품이 작가의 의도대로 햇빛을 받고 서있는 것이 흥미롭다 '고 말씀 주신 도슨트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밤에 달빛을 받으면 그렇게 또 특별하다는데,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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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 쓰러지는 남자




*쓰러지는 남자 (1950년, 59.1x26.5x27.5cm)

'작품의 단상까지 한 작품'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계속해서 함께 보게 된다. 만약 이 작품의 받침대(단상)가 동그란 원형이 아니라 사각형의 낮고 넓었다면, 위태로운 느낌이 지금보단 약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전쟁 파리로 돌아와서 완성한 작품으로, '단지 서 있기 위해 엄청난 기운을 들여 버티는 듯한 인물의 묘사'로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구부정한 다리, 무기력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긴 팔은 활처럼 휘었고, 뒤로 살짝 젖혀진 머리에 이르기까지, 균형이 깨진 인물의 디테일에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 얼마나 잔인한지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모티브는 1940년대 자코메티가 겪었던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균형이 깨지는 찰나의 순간, 그리고 안정과 추락이 교차하는 순간에 있는 인간의 모습 특징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장대 위의 두상



*장대 위의 두상 (1947년작)

1921년 스위스의 한 호스텔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여행 친구(피터 반 뫼흐)를 떠올리며 제작한 작품이다. 자코메티는, "움푹 꺼진 뺨 사이로 그의 코는 더욱 두드러져 보였고, 거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입을 벌려 가까스로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밤이 가까이 찾아오자 이러한 옆모습을 그리면서 친구가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그 이후로 모든 것은 바뀌었고 이 여행은 나에게 끊임없는 강박감을 주었다"라고 회상했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소리 없는 울음'을 연상시키는데, 입체 적인 조각 작품임에도 바라보는 측면에 따라서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느낌이다. 위의 사건은 향후 모든 작업에 영향을 미쳤으며, 1956~58년에 '장대 위의 두상'을 주제로 동일한 제목의 연작도 선보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걸어가는 세 남자




*걸어가는 세 남자 (1948년, 71.1x40.1x41.5cm)

전후 재건 시기에 다시 활기를 찾은 파리의 실존적 고독을 표현한 작품이다. 자코메티는 3명의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도시 풍경을 표현했는데, 흥미로운 점은(사진에는 없지만)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가서 본다면 세 남자가 손을 잡는 듯한 모습이다.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작품으로, 자코메티가 조각한 여성 작품은 지극히 성스럽고 미동이 없는 것에 반해, 남성 조각상은 움직임이 담겨있다. 자코메티는 걷는 동작이 주는 움직임, 정처 없이 거니는 행동의 인식을 통해 작가로서의 존재 의미와 세계에 대한 탐구의식을 은유적으로 표출하고자 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남자 두상(1964~1965년 제작)




*남자 두상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59년에 들어서야 그의 모델들을 고정적이고 일정한 형태로 묘사하는 방식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는 여러 초상화를 합한 것이 인물에 대한 가장 완벽한 인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자 두상의 모델이 모두 동일인물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세 가지 흉상은 모두 완벽히 전면을 향해 있으며, 손으로 무릎을 잡고 있는 모습은 무릎을 꿇은 고대 이집트 사제를 연상시킨다. 작품의 모델로 알려진 엘리 로타르(Eli Lotar)는 포즈를 취하지 않을 때 자코메티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사진은 소수에 불과하다










여담으로, 루이뷔통 메종 서울의 건축가는 '프랭크 게리(Frank Gehry)'다. 현대 건축의 거장인 그의 대표작은 스페인 빌바오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침체된 도시를 인기 관광지로 만든 그의 건축을 청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와봐야 할 이유가 이미 충분했다.


여덟 점의 작품이 있는 공간과 분리된 곳에는 에곤 쉴레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집과 장 미셀 바스키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상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갔던 시기는 추운 겨울이라서 그 장소에 오래 있진 못했지만, 다시금 방문해서 즐겨보고 싶다.


1000억 원을 넘긴 유일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피카소가 질투했던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다시 느껴볼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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