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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딜러 한혜미 Mar 12. 2020

누군가의 그림을 샀다. 그리고 꿈이 생겼다

아시아프 애프터 리뷰, 전시에서 만난 신진작가를 응원하며


많은 것들이 빠르게 디지털로 '대체'가 되던 시간이 흘러, 이제는 '디지털 시대'이다.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성통화만큼이나 영상통화가 자연스러워졌고, 일상의 소통까지도 영상으로 공유한다.


미술계도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취향에 발맞추어 판매가 아닌 '그림 대여'를 하는 갤러리가 늘어났고, 더 나아가 유명한 명화들을 모니터에 등장시켜서 액자 속 그림의 역할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영상이 아닌 글로 담고 있다. 더 나아가 그림 사는 사람이 줄어든 시대에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그림을 샀다.









그림을 사기 위해 방문한 곳은 '아시아프 애프터'이다. 이 전시회는 신진작가(:경력이 짧은 작가, 가수로 예를 들면 신인가수)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국내 최대 청년 미술축제인 '아시아프'에서 작가를 추린 후 열리는 애프터 전시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유망작가를 발굴하는 전시 2nd' 볼 수 있다.


아시아프는 신진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퀄리티에 비해 작품 가격이 낮다. 가격은 약 10만원~300만원 사이로 주최 측 기준을 참고하여 작가가 직접 본인 그림의 가격을 책정한다. 일반적으로 작품 크기와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천만 원~억 단위를 호가하는 중견/블루칩 작가들에 비한다면 '가격 자체'로는 메리트가 충분히 있다.

(미술로 재테크까지 생각하는 분이라면 작품과 작가를 함께 봐야 한다. 미술 작품 가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작가라는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지속적인 작품 활동 여부와 사생활 등에 따라 상승과 하락을 오갈 수 있다)


그러나 가격보다 더 중요한, 아시아프의 가장 큰 장점은 '미술애호가와 신진작가의 오작교' 역할이다. 더해서 '그림을 사볼까' 생각하는 일반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장도 없다.


 역시 미술 애호가로서 아시아프 애프터를 '그림 구매'목적으로 방문했고, 몇 가지 기준미리 정했다.



*

1. 작가: 스스로 마케팅을 잘하는 작가(=sns상에서 앞으로의 작업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

2. 작품: 눈에 담기는 작품(=매력적인 작품), 마음에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작품(너무 바빴던 시기라 힐링되는 그림 희망)

3. 가격: 100만 원 이하(그러나 꼭 갖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변동 가능)









(직업 특성상 이들을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기에, 위의 작가들을 미리 검색해봤고 sns가 활발한 작가 몇 분을 저장했다)


전시장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층에서 진행되었고, 오픈 당일 오픈 시간에 가깝게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sold out을 의미하는 '빨간 스티커'가 붙여진 작품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나 역시  놓치기 전에 빠르게 스캔에 들어갔다.


작품 구매 시 기본이자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보는 것'이다. 특히 소장용이라면 더더욱. 전시회를 열어본 경험상 도록의 '사진빨'도 어느 정도 있기에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직접 보고 마음에 든다면 기억용 사진은 필수! 다양한 분야의 작가가 참여하는 만큼, 눈으로 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기억용 사진으로 남기면 후회 없는 선택을 할 확률이 올라가는 것이다.


아래는 후보군 스캔을 위해 촬영했던 사진들.

(sold out 된 작품도 마음에 들었다면 우선 촬영했다)







위의 오른쪽 작품은, 내가 생각한 1번 기준(작가 마케팅)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사진으로 보고 기억했던 작품인데 역시 sold out이었다. '그림을 누가 사' 시대라면서, 살 사람은 다 사고 있다.







생각보다 좋은 작품이 많았고, 미리 찜했던 작가가 기대에 못 미친 경우도 있었다. 


'그래, 신진작가라면 전시회 나가고 그림에 몰두하기도 바쁜데 언제 마케팅까지 한담!'


그렇게 1번의 조건은 덮고, 2번으로 바라보자 후보군이 몇 작품밖에 안 남았다. 그렇게 [김승겸 작가님, 시간의 형상-2]로 결정했다.






구매신청서, 내가 찜한 작품에 빨간 스티커가 붙여졌다




작품 구매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원하는 작품에 빨간 스티커가 붙기 전에, 전시장 내에 계시는 관계자분께 구매 의사를 밝히면 된다. 작품 설명이 있는 란에 작품 가격까지 함께 기재가 되어있기에 굳이 가격을 물어볼 필요는 없다.


'구매 신청서'에 구매자 정보(성함/생년월일/연락처)를 기재하면 담당자분께서 작품 정보(작가명/작품명/사이즈/작품 가격/구매 일시)를 적어 '구매 확인서'를 주신다. 결제는 다음날 낮 12시까지 해당 계좌에 입금하면 완료다. 그 후에는 작가의 연락을 기다리면 된다.


내가 산 김승겸 작가의 작품은, 초기에 눈여겨봤던 작품 중 하나와 시리즈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평면과 입체- 그 사이에 있는 작품으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명상할 때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최종 선택을 했다. 어느 정도 결정되자 작품 가격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이 작품.. 가격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16만원.


가격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재료값만 넣었거나 보기보다 아주 쉽고 빠르게 만든 작품이 아닐까'였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 한 달 정도 몰두했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의 소득이 16만 (거기에 주최 측과 수수료를 나눌 텐데)이 되는 것인데 어찌 그런 생각이 안 들까.




구매 후 김승겸 작가님께 연락을 받았다




미술작품을 좋은 가격에 구매했지만, '가격 책정 기준'은 여전히 궁금했다. 실례가 안된다면 작가님께 직접 고 싶었고 그렇게 작품을 받을 겸 뵙게 되었다. 내 직업 특성상 풀고 싶던 의문이자, 미술 애호가로서 든 궁금증이었다.


작가님의 답변은 심플했다. '호당 가격'이었다. 일반적으로 신진작가의 1호(작품크기)를 3~5만 원으로 측정하는데, 3만 원은 너무 낮고 5만 원으로 하기엔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4만 원으로 책정한 것이었다. 내가 산 작품이 4호이니, '4호x4만원=16만원'.


그리고 나는 이날 가격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열정을 마주한다는 일은 참 설레는 일이라는 걸, 오랜만에 느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운 좋게도 이분의 꿈과 비전까지 듣게 되었는데, 그건 이미 내게 작품 이상의 가치이자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고민하며 쏟아부은 작품을 소장하게 되다니'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더해서 내가 지불한 돈으로 창작활동을 이어갈 모습을 상상해보니 이미 그의 꿈과 비전에 동참하는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그림을 사는 또 다른 매력 아닐까. 설사 그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지라도, 참 설렜다.

  





내가 산 작품, 역시 실물이 훨씬 낫다




나 역시 이날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꿈을 향해 나아갈 이들을 후원하고 싶어 졌다. 물론 그러려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금보다 더 나아야겠지. 고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꿈이 생겼고, 그 꿈의 이유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그림을 샀는데 꿈이 생겼다.


앞으로도 그림을 살 예정이다.

그리고 이 감동을 다른 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누군가의 비전에 동참하고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일,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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