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 사이, 엄마관찰소설
얘가 왜 나랑은 안 자지?
그녀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사실 그녀는 지금 섭섭한 거다. 도대체 왜 나하고만 '안 자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자고로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 이쁨은 제가 받기 마련이다. 앞에 와서 애교를 떨고 챙겨주고 나하고만 놀면
사람들은 그에게 내 마음의 지분 몇 %를 슬쩍 내준다.
이런 관계는 완전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에 가깝다.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함께 밥 먹을 것을 제안하며, 우스개소리를 해야 시작되는 건지...
그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함께 차 한잔할 것을 제안하며, 유행어로 장난을 걸어야 시작되는 건지...
나중에 친해지고 난 후에 기억을 더듬어보면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기 십상이지만
어쨌든 친해질 사람들은 친해지고, 내 마음의 공간을 차지할 사람들은 차지하게 된다.
이리 와~ 같이 자자~
하지만 내 제안을 단칼이든, 서서히, 못 들은척이든 거절하면 내 마음 지분의 몇 배를 위약금으로 청구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를 멀리하고 뒤에 가서 그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며 내 잣대를 강요한다.
그녀도 그랬다.
그녀가 원했을 때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기가 아쉬울 때만 살살 애교를 떤다는 이유로,
김씨 앞에서 종종 서운함을 토로했고 당사자 앞에서 타박했다.
그런데 그녀가 모르는 게 있었다.
단지 둘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자고 싶을 때 그는 가고 싶지 않았고, 그녀가 안고 싶을 때 그는 답답했다. 그러니 서로 조금의 거리를 두고 시간을 두고 서서히 불일치의 타이밍을 맞춰가는 노력을 해야 했던 거다.
사실, 그 역시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녀는 믿지 않았지만 추후 김씨가 증거사진을 들이밀었을 때 누구보다 행복하게 미소짓던 그녀였다. 누군가 '몰래한 사랑'에 마침표를 찍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타이밍이 잘 들어맞았던 그들과의 사랑의 순간을 알려주고 싶었다.
자기 전 김씨 엄마 옆으로 오라고 오라고 해도 안 오던 멍멍이들은...
엄마가 잠들고 난 뒤 슬그머니 그녀 옆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마치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는 듯
그 모습으로 그녀처럼 잠들었다. 그녀가 보지 않는 틈을 타 나름의 고백이라도 하는 걸까?
같은 모습, 같은 모양...데칼코마니 사랑을 하고 있는 그들.
아니, 개칼코마니인가..?
희한한 점은
그들이 김씨 엄마와는 개칼코마니가 되면서 김씨의 다른 형제들과는 개칼코마니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이~ 너 또 나처럼 잘 거냐?
더 이상 그녀는 사랑을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보는 앞에서 사랑을 보여달라고, 그녀의 잣대만 들이대면서 증명해 보이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그냥...그렇게 산다.
서로 하고픈대로, 자고픈대로...
13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그들은 서로를 잘 알게 되었고, 사랑의 타이밍도 접점을 찾아
거의 잘 맞아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