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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Dec 22. 2021

쿠팡 뜁니다, 글 쓰려고요.(1)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 후기

    엄마 아빠한테 작가라는 말도 듣고, 용한 사주 선생님께 글 쓰라는 말도 듣고. 이제 정말 글 쓸 일 밖에 안 남았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어디 그리 쉽던가? 글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현실은 당장 쓸 생활비도 없었다. 철없는 척 부모님께 손 벌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제 네 생활비는 네가 벌어서 써라"라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다. 역시 우리 엄마 아빠.


    코로나로 하고 있던 알바마저 잘린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 전 알바도 무려 한 달을 찾아서 구한 것이니 앞으로는 더 요원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당장 먹고살 돈은 궁한데 돈 나올 곳은 없고. 이제 어떡한담? 그때 생각난 것이 '쿠팡'이었다. 로켓 배송의 상징, 택배의 메카!


    내가 쿠팡 알바를 처음 알게 된 건 20대 초반이었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방학 때 그곳에서 일을 했다는 데, 제법 쏠쏠했다나? 호기심이 생긴 나는 -같이 사주를 보러 갔던 바로 그- 친구와 함께 갔다. 결과는 KNOCK DOWN. 우리는 8시간 동안 7만 원을 벌고, 집에 와 3만 원어치 국밥과 순대를 사 먹었다. 그날 우리는 굳게 다짐했다. "이거 도저히 못해먹겠다. 우리 열심히 공부하자." 그땐 몰랐지. 몇 년 후 내가 다시 이곳에 돌아올 줄은. 역시 인생 살고 볼 일이다.  


    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침체되었다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비대면, 온라인 사업은 성행을 했다. 그 수혜를 제대로 받은 회사가 바로 쿠팡이었다. 모아도 모아도 사람이 부족한 것인지, 하루만 일해도 인센티브를 준다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런 회사가? 하루 일하고 나가떨어진 기억은 어느덧 희미해지고, 일당만 눈에 들어왔다. 해보자! 해서 나쁠 건 없지. 그렇게 나는 쿠팡에 가게 되었다.


    일용직 알바가 할 수 있는 업무분담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IB(입고), OB(출고), HUB(상하차)이다. HUB는 그 악명을 익히 들어 무서웠고, 대신 두 번째로 인센티브가 높은 OB를 지원했다. 다음 날 아침 7시, 셔틀버스가 오는 장소로 나갔다. 지하철 역 앞에 검은색 롱 패딩을 입은 망령들이 줄 지어 서있었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버스에 올라타 그대로 잠들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쿠팡 물류창고에 도착했다.


    업무는 지극히 간단다. PDA에 뜬 물건을 정해진 위치에서 가져오면 된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 쉽다. 다만 그 물건들이 물, 세제, 두유, 탄산음료 등이라는 게 문제일 뿐. 살면서 들어본 가장 무거운 물건이 무엇인가? 나는 이번에 쌀보다 더 무거운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고양이 모래다. 분명 이름은 두부 모래인데, 무게는 두부가 아니었다. 주문하는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우리나라에 애묘인이 많다는 걸 실감다.


 한편, 내가 본 가장 신기한 물건은 닭 모가지를 말린 것이었다. 음식에 넣어 먹는 것 같던데,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라 신기했다. 그 외에도 구체 관절 인형이라던가 '퇴마록' 전집도 봤다. '이런 것도 판다고?' 싶은 물건도 많았다. 드넓은 창고에 선반들이 빼곡히 서있고, 별의별 물건들이 그 선반을 가득 채웠다. 온 세상 물건이 전부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주문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팔도에서 온 트럭들 줄지어 서있고, 사람들은 열심히 택배를 날랐다. 쿠팡이 자랑하는 로켓 배송을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재촉해도 밀려드는 주문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바야흐로 쿠팡의 시대였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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