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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Dec 22. 2021

제가 글을 써도 될까요?

압구정 사주 후기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교회도 있고, 성당도 있고, 절도 있고, 신당도 있고, 이태원에는 이슬람 사원도 있다고 한다. 가보진 않았지만.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신묘(?)하며 가장 한국적(?)인 것을 꼽자면, 단연 사주가 아닐까?


    '사주팔자(四柱八字)'란 무엇인가. 사주(四柱)는 인생의 네 가지 기둥으로, 태어난 연월일시를 이야기한다. 각 기둥에는 두 가지 글자가 있는데, 천간()과 지지()이다. 쉽게 말하자면 하늘과 땅을 의미한다. 각 기둥마다 2개씩 총 여덟 개의 글자가 있으니, 이것이 팔자(八字)이다. 이것들이 무엇인지는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고,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이렇게 우리네 인생을 표현하는 여덟 글자를 '사주팔자'라고 한다.

    사주가 맞느냐 틀리냐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검증된 데이터베이스라는 둥, 모 기업 회장과 똑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거지로 살더라는 둥, 별의별 이야기가 내려온다. 확실한 건 사람이 살기 힘들고 가슴이 답답해지면 한 번씩 생각난다는 것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이들의 최악의 구직난이라고 했던가. 하필 코로나까지 겹치니 다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나 보다. 오죽하면 20대들 사이에서 사주나 신점을 보러 가는 게 유행이라는 기사가 나오겠는가. 한반도의 20대답게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밤하늘을 보면 그보다 깜깜한 내 미래가 생각나, 밥 한 술 넘기는 것도 맘 편히 자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김영하 작가가 소싯적 점쟁이에게서 글로 먹고 살 거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마침 역학을 공부하는 분이, 압구정에 정말 유명한 사주 가게가 있다며 알려주길래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고민 고민하다가 가게로 연락했다. 하지만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도 답이 없고... 겨우겨우 연락이 닿으니 하는 말, 이미 3개월 치 예약이 꽉 차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신뢰가 갔다. '정말 용하긴 용한가 봐!' 가장 빠른 날짜로 얼른 예약을 잡았다. 차마 혼자는 못 가겠어서, 친구 한 명을 꼬셨다. 그리고 약속의 날, 친구와 함께 압구정으로 향했다. 압구정 한복판에 있는 사무실을 보니 더더욱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들어가 -엄마에게 미리 물어본- 내 생년월일시를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아이패드(!)로 만세력을 검색했다.

    "아이패드 쓰시네요. 책 같은 거 볼 줄 알았는데... 신세대시네요."

    "요즘 누가 책을 봐. 다 아이패드 쓰지. 나 이거 쓴 지 10년이 다 돼가요." 선생님은 신세대셨다.


    선생님은 내 사주팔자를 보고 무언가 쓰기 시작하더니, 내게 물어보았다.

    "자,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백수인데요."

    "앞으로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은 깜짝 놀라시더니, 작가가 되면 성공할 테니 그 길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오, 정말인가요?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선생님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 선생님 왈, 26살에 등단해 30살에 대박이 날 거라나 뭐라나. 몇 년 안 남았는데? 대박. 나 성공하는 거야? 나는 신이 나 이것저것 더 물어보기 시작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도 친구도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내가 작가가 되면 잘 될 거라는 것, 그게 우리가 그날 들은 유일하게 좋은 이야기였다. 친구는 그래도 너라도 잘 되는 게 어디냐고, 나중에 붙어먹을 거라며 웃었다. 어떻게 웃으며 넘기긴 했지만, 하루 종일 마음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내 사주를 풀어주시던 중 갑자기 내게 죽은 형제가 있냐고 물어보신 것이다. 내가 없다고 답하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집에 가서 부모님께 물어봐."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등골이 오싹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아빠한테 여쭤봤다. "죽은 형제는 무슨, 아무도 없어! 원래 그런 사람들이 과거는 잘 맞추는데, 그 사람은 과거도 못 맞추는 걸 보니 돌팔이인가 보네." 라며 박장대소를 하시는 게 아닌가! 팍, 김새버렸다.


     나의 사주 후기는 여기까지이다. 이 선생님이 용한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영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나 작가로 성공 못 하는 건가? 안되는데! 선생님 말씀이 맞는지 궁금해서라도 서른까지 버텨봐야겠다. 그때가 되면 이곳이 어디인지 밝힐 수도...? 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꼭 대박 났으면 좋겠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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