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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ESI Jan 26. 2022

지금 쓰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

작가가 미친 듯이 간절해야 독자는 겨우 공감한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랑 좀 하겠습니다. 저번 주에 올린 '현대인의 저장강박증, ctrl+S' 조회수가 터졌습니다. 라이킷도 30이 넘었네요. 유명 작가님들이 보시기엔 별 거 아니겠지만 제겐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서요. 제 글을 읽으러 와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이런 날이 언제 또 올지 모르니 즐길 수 있을 때 조금만 즐길게요. 하하하












 지난 한 주동안 고민이 많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나름대로 목표가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알리고 싶었고,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길 바랐다. 이 시간이 나의 최종 목표-글먹(글로 먹고 살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랐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이걸 잘 살려보고 싶었다. 왜 요즘 그런 게 유행이지 않나. 인사이트를 분석하라는. 하지만 표본이 너무 적은 탓인지 분석이 불가능했다.


고백할 게 있다. 나는 7년 차 블로거이다. 파워블로거는 아니지만, 운영 기간이 길다 보니 조회수 높은 게시글을 몇 개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글들이 다 제각각이다. 주제며, 내용이며,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다. 내가 파워블로거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이것저것 다 올리는 대책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7년 동안 블로그를 했는데도 사람들이 어떤 글 많이 읽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내 블로그에서 조회수가 많이 나온 글들의 공통점이라곤 단 하나였다.


지금 당장 쓰지 않으면
내가 못 배길 것 같은 글

가끔 "이건 당장 써야 해! 지금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벼락 맞은 사람마냥 온몸이 짜릿하다. 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신들린 듯 춤을 춘다. 오, 이게 바로 영감이라는 건가? 떠오르 문장들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 한 문장이라도 놓칠까 무섭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느 대작가도 부럽지 않다.




그렇게 '쓰고 싶다는 열렬한 감정'에 휩싸여 쓴 글이 인기가 많았다. 독자 분들도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주셨다. 독자와 통했을 때의 그 짜릿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을 차마 숨길 수 없다. 내가 어떻게 쓴 건데. 조회수가 이것밖에 안 나오나? -건방지지만 솔직한 생각이다.- 내 모든 걸 털어 넣은 결과가 이 정도에서 그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이게 내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글을 잘 쓴다는 것, 글로서 마음을 전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한다.









'언더 나인틴'이라는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있다. 슈퍼주니어 은혁이 멘토로 나와 연습생들을 가르친다. 중간 평가 때 은혁은 연습생들에게 '무대라고 생각하고 하길' 요청하지만, 연습생들은 중간 평가라는 생각에 대충 한다.


은혁이 말한다. "너희가 120%, 150%로 해야 무대 때 한 80% 나와." 이 영상의 댓글들이 참 인상 깊은데, 그 영상이 지워져서 아쉽다. 댓글에 나타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무슨 일을 하든 120%를 해야 80%가 겨우 나오더라고.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명장면. 안무가 배윤정이 묻는다. "소혜야 가수가 하고 싶어?" 당연히 하고 싶으니까 하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험한 소리 들어가며 거기 있을까. 그런데도 배윤정은 김소혜에게 가수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무대가 간절하지 않은 가수는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다. 써야 한다는 열망이 없는 작가가 독자를 감동시킬 수 없듯이. 배윤정은 김소혜에게서 그런 간절함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참고로 김소혜는 아이오아이 해체 이후로 연기자로 전환했다. 김소혜는 정말 가수가 하고 싶었던 걸까? 배윤정의 선구안에 감탄하게 된다.












지난 글에서 아래 문장을 소개했다.


그래도 쓰고 싶다, 쓰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 라는 사람이 소설을 씁니다. 그리고 또한 지속적으로 소설을 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처음 이 문장을 봤을 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쓰고 싶어 견디지 못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왜 그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작가는 '쓰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는 마음이 들어야 하구나. 작가의 인생을 뒤흔들 만큼 열렬한 감정을 갖고 써야 겨우 독자에게 닿을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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