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행정고시를 준비했었다. 뜻한 바가 있었고 그걸 이루려면 저 위로 올라가야 했다. 행정고시를 보기로 선택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겁 없이 행시에 도전했다가 1년도 못되어 관둔 사람들이 별처럼 많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이야 붙든 말든. 나만 붙으면 되는 거잖아?' 내가 바라는 것은 모두 이뤄지리라 생각한, 세상이 만만해 보이던 나이였다.
행정고시는 어려운 시험이었고 수험생도 많지 않았다. 당연히 정보 격차도 심했다. 아는 것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중 그해 행시 합격자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나는 기대에 가득 찼다. '어떤 꿀팁을 알려줄까? 뭘 물어봐야 할까?'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내가 기대한 것과 조금 달랐다.
그는 행정고시를 보겠노라 호기롭게 이야기하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행시를 보는 건 좋아. 그런데 수험생활을 하기 전에 내가 말하는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왜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지, 그중에서도 왜 행정고시여야 하는지 생각해볼 것.
행시를 쳐야 하는 이유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적고 생각해볼 것.
행정고시를 공부한다면 몇 년을 할 것인지 가족들과 상의할 것. (이 기간 동안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는 확답을 받을 것.)
정해진 수험기간이 끝나도 합격하지 못할 경우,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해 둘 것.
만약 시험공부 시작 전까지 기간이 남았다면, 실패했을 경우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둘 것. (ex. 학점, 스펙, 자격증 등)
이 모든 것들의 정리가 끝나고, 그래도 행정고시를 보겠다면 도전해라.
단, 공부를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앞서 한 모든 생각들은 지워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전부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오로지 공부만 해야 한다. 정해진 수험기간 동안 미친 듯이 공부만 하고, 약속된 시간이 끝나면 미련 없이 떠나라. 합격을 했든 못했든."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제법 단호했다. 커피 한 잔 하며 즐겁게 얘기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한 나와는 다르게. 수험생활을 끝낸 지 얼마 안 돼서 일까? 그의 눈에는 단호함과 독기,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어려있었다. 내가 생각한 행정고시 합격자는 당당한 장원급제자의 모습이었는데 그는 승전국의 패잔병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직전, 그는 원래 3년만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2년을 더 공부해 붙을 수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너는 안 그랬으면서 나는 왜?' 생각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났나 보다. 그는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사무관 업무를 아직 시작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내가 공부해보니까 행시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더라. 그냥 시험이야, 시험. 수많은 시험 중에 하나일 뿐이고, 살면서 한 번쯤 도전해봐도 좋지만 여기에 평생을 걸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여기에 낭비하더라고. 나도 그중 하나였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시험 준비한다는 사람한테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자기는 붙었으면서.' 그가 부러웠던 걸까? 합격자의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해버렸다. 그는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았더라면 무언가 바뀌었을까?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똑같을 것 같다. 당시 나는 머리에 든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머저리였으니까. 그의 말을 이해하기엔 아는 것도 겪은 것도 없었다.
그 후 나는 고시 폐인의 테크트리를 그대로 밟았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행시를 관뒀고, 공시에 집적거리다 그마저도 포기하게 되었다. 나의 20대는 실패로 점철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꿈꾸던 청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변명만 늘어놓는 패배자가 되었다. 내 인생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어느덧 나도 그때의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이제 그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선택 집중 포기
나는 내가 나이가 들면 선택할 일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나이가 들 수록 선택해야 하는 것도, 책임져야 하는 것도,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아졌다. 그러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나에겐 '선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공무원 시험을 포기했을 땐 죽을 만큼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한 건데 포기하고 나서 더 힘들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고작 여기서 포기하는 사람이었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 자책, 절망, 회의, 두려움 속에서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다. 수험 생활을 그만두고 나서도 1년 넘는 시간 동안 수험서를 버리지 못했다. 버리지도 펼치지도 못하고 방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다. 그걸 꺼내는 순간, 내가 의지박약이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복학을 하고 나서야 겨우 책을 버릴 용기가 생겼다. 버려야지 마음먹고도 이게 맞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아 며칠을 끙끙 앓았다. 마침내 수험서를 버리는 날, 나는 공무원 시험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나는 소설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완전히 포기하고나서야 새로운 길이 보인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때론 포기도 선택이 될 수 있다고. 포기하는 건 실패하는 게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하기 위한 단계일 뿐이라고.
한국 사회는 '포기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쉽게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는 건 나약한 거야' 라며 포기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집중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과 '포기하지 않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해 이루지 못한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그건 후회라는 감정이지 선택이 아니다. 후회한다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포기는 다르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을 포기해야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행시 합격자의 말처럼 모든 것을 뒤로 한채 최선을 다해 달려들어야 한다. 그러고도 아무런 결과가 없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포기해야 한다. '이거 내 길이 아니었어. 하지만 어디엔가 나에게 맞는 길이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다른 길을 향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후회와 선택의 틈 사이에 끼어서 자신을 괴롭히며 시간만 죽이게 될 것이다. 그 어느 날 내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