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내가 바라보는 나인데, 주로 자가진단검사를 통해 분석한다.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린- MBTI가 대표적인 자가진단검사이다. (MBTI의 신뢰도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MBTI가 잘 맞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바라보는 자기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타인이 바라보는 나이다. 내담자의 지인을 상담하거나, 제 3자(상담자 내지는 연구자)가 관찰,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요즘 예능에서 보이는 관찰카메라 기법이 이에 가깝다.
그리고 가끔 나는 타인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그리고 그들이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글을 읽으면 그 글쓴이에 대해 알 수 있다. 오랫동안 고심해 고른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그이의 체취가 듬뿍 묻어나기 마련이다. 자주 쓰는 단어, 문체, 이미지, 전개 방식에는 그의 생각과 취향, 분위기가 배어 있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쓰는 나의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쓰는 어휘와 어법은 내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에, 그 안에 배어있는 향기와 풍경을 나는 느낄 수 없다.
그 점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되어 나를, 나의 글을 바라보고 싶었다. 완벽한 타인이 되어 내가 그린 세계를 탐험하고 싶었다. 처음 보는 것처럼.
타인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내 생각과 거리가 멀 때가 종종 있다.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할 때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내가 그런 이미지라고?'
그들이 보는 게 나인지, 내가 생각하는 게 나인지. 꼭 생판 모르는 타인을 듣는 기분인 것이다.
상담사 분께서 내게 "xx씨는 학구적이시네요." 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공부를 좋아하는 이미지인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공부인데.
당시에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뒤로도 비슷한 말을 몇 번 더 들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떤 분야에 대해 깊숙이 빠져드는 모습이 학구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그걸 그냥 ‘덕후 마인드’라고 생각해왔는데, 누군가에게는 학구적으로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한편,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대인관계를 넓히고 싶어 내가 가진 모든 사교성과 붙임성을 끌어모아 열심히 사람들을 만났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상대방으로부터 "역시 무심하네요."라는 답이 돌아오고 말았다. 나의 최선이 그의 다정함에 닿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절망스러웠다.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을 몇 번 더 겪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간극을 깨닫자 더더욱 완벽한 타인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싶어졌다. 내 글을 읽고 싶어졌다.
글을 쓰고 나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짜릿한 일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세계를 누릴 수 없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