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성숙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사람들이 내게 “깊다, 단단하다”라고 말할 때마다 오히려 씁쓸했다.
그 성숙은 내가 선택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릴 때, 나는 버티기 위해 책을 붙잡았다.
성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혼자 컸고, 혼자 생각했고, 혼자 의미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그 덕분에 강해졌잖아.”
하지만 성숙 뒤에는 설명되지 않는 고독이 남아 있었다.
나는 여전히 현실에서는 서툴렀고, 돈을 잘 버는 것도, 무언가를 이룬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의심했다.
내가 가진 사유의 힘이 과연 나를 내가 원하는 자리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원하는 경제적 현실,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는 삶에 도움이 될까.
작은 행복에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외치던 나는 사실 많은 부와, 명예를 욕망한다. 인정받고 싶고, 보여주고 싶다. 말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 전체로.
좋은 집.
좋은 차.
아무 말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면서도 결국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겉모습이니까.
그런 마음을 품은 채 살아가던 중,
오늘 새벽, 한 문장을 마주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다는 개념은 삶의 모든 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니체의 문장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운명을 사랑하라니.
내 운명은 한 번도 따뜻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문장에 마음이 꽂혔다.
절대 이상형도 아닌 이성에게 끌리는 감정이랄까.
그 문장을 품어보고 싶었다.
한참을 멍 때린 후, 깨달았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개 숙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사랑이기 때문에, 갈등도 포함한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도 끝까지 맞지 않는다.
싸우고, 실망하고, 등을 돌리고, 그러면서도 왜인지 떠나지 못한다.
그 모든 복잡함이 합쳐져 하나의 사랑이 된다.
운명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나는 내 운명과 싸웠다.
실망했고, 원망했고, 수없이 대들었다.
그럼에도 이 삶을 떠나지 않고 살아왔다.
그렇다면 어쩌면, 나는 이미 운명을 사랑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믿는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끝까지 나 자신으로 살겠다는 고백이다.
나는 앞으로 많은 날들을 운명과 싸울 것이다.
비참하게 내가 지는 날이 수없이 있을지라도,
나는 내 운명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가장 인간다운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