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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Nov 24. 2016

발리에서 서핑과 사랑에 빠진 그녀

내 친구 다나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다나와 처음 친해지게 된 계기.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갔을 때, 새로운 반 친구들을 만났고, 아직은 서로 서먹서먹했다. 음악 시간이었다. 점심에 먹은게 뭔가 잘못되었던지 배가 싸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직감했다. 오장육부가 꼬이는 이 느낌을 멈추려면 뀌어야 한다. 다행인건 여자 중학교 인지라 잃을 것이 크게 없다는 점이었다.


소리 없이 강한 놈이었다.


3초 정도 후 아이들은 참을 수 없음에 "어우~~ 아 누구야??"를 외치기 시작했고, 향의 근원지를 찾다보니 내쪽으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입에서 "다나 너지!!!"가 나왔고 여론은 내 짝꿍인 다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다나는 "야 나 맹세코, 나 진짜 아니야!"라고 항소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나는 다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다나야 난 너를 믿어."라고 속삭였다. 5분 후, 애들이 교과서로 신나게 부채질을 해준 덕분에 빠르게 향기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평안을 찾았지만, 다나는 음악시간이 끝나갈 때까지 억울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날 집에 가는 길, 같은 방향이던 다나와 나는 같이 후문을 나섰고 나는 다나에게 고백했다.


"다나야, 음악실 그거 사실 나야."


다나는 정말 황당해하면서 "야 내가 진짜 얼마나 억울했는데! 너 진짜, 진짜.."하더니 겁나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는 나 혼자 자기를 믿어줘서 진짜 착한 애라고 생각했다며 실컷 둘이서 웃은게 다나와 내가 친해지게 된 계기였다.


다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살다 왔다. 외국에서 살다 온 애들에게는 영어를 시켜보는게 유치한 중학생들이 꼭 하는 거였는데, 내가 다나에게 "다나야 영어해봐, 영어해줘, 뭐라도 말해줘"라고 했을 때, 다나는 "뭘 말해?"라고 당황했고, 나는 "사과, 그거 사과를 영어로 해봐"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다나가 그 단어를 말했을 때, 내 볼에 정말로, 진짜로 눈물이 흘렀다.


"아뽀."


애플이 아니고 아뽀였다. 내가 알고 있던 영어는 다 거짓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다나 발음의 신봉자가 되었다. 우리 영어 선생님이 When을 '휀'으로 Where을 '훼어'로 Penis를 '페니스'로(다나는 이걸 피너스라고 했다) 발음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한국 사람 입에서 나온 캘리포니아식 발음은 나에게 너무나도 신세계였다. 그게 가능하구나!!!


캘리포니아 걸의 소울을 가지고 있던 다나는 공부를 잘 안했다. 내가 보기엔 못한 것이 아니고, 얘는 뭔가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데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억지로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의 경쟁적인 분위기에 부모님께 졸라서 학원을 가고, 선행학습을 하고, 시험공부를 했지만 다나는 그렇지 않았다. 다나는 꼴리는 만큼만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고 서로 토론하는 걸 즐기며 몇시간이고 수다를 떨었다. 다른 아이들과 하는 대화와 다나와 하는 대화는 분명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다나는 호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대학을 철학과로 진학을 했다. 도대체 철학과를 누가 선택을 한단 말인가!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한건가? 그러나 늘 다나는 자기 꼴리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4년을 공부한 다나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걱정이 되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을 받아줄 회사는 어딜까?


다나가 선택하고, 다나를 받아준 회사는 '탐스'였다. 나는 그 때 탐스가 뭔지 잘 몰랐는데, 다나가 신나서 말했다.  "신발 하나를 사면, 다른 하나를 신발이 없어서 발을 다치는 어린아이들에게 회사가 기부해주는 거야." 다나는 그곳에서 마케팅을 했고, 회사의 철학을 정말 가슴깊이 믿었다. 그런 나머지 발등에다가 'one for one'이라는 회사의 미션을 문신하기도 했다.


다나는 다나였다. 그녀는 항상 꼴리는대로 한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초반에 가지고 있던 영혼을 잃기 시작하면서 다나는 약 3년을 다닌 회사를 퇴사한다. 그리고 받은 퇴직금으로 발리를 거쳐 유럽여행을 할 생각으로 길을 떠난다. 그런데, 아뿔싸, 그만 서핑을 해보고 만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서핑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그렇듯 그녀는 유럽 여행이고 나발이고 1개월만 더, 하다가 그것이 2개월이 되고, 딱 3개월까지만 하다가 9개월이 되고 만다.


서핑은 밀당이 장난아님. 너무 좋았다가도 너무 싫고. 지금 배워서 아무리 잘 타봤자 얼마 타겠느만은 세계 챔피언 영상 보면서 자세 분석하고. 참나, 이게 뭐라고. 그냥 살면서 이렇게 좋아할 수 있는게 있어서 감사함. 젊고 건강하고 시간 많은 백수일때 실컷 해야겠음.


오늘 서핑 포인트에서 우리말고 물놀이 즐기는 귀염둥이 발견. 저러고 한 이십분 있었나. 물에 몸 반 담그고 인생 고민하는 사람처럼. - 다나의 페북에서



나는 파도가 크면 무섭다. 무서운 이유는 단 하나다. 내 생명줄 리시가 끊길까봐... 파도를 잘못 맞거나 타다 넘어지면 그만큼 론드리/워싱머신이 심하다. 작은 날에는 여유롭게 수영해서 올라오면 되지만. 물속에서 생각보다 길게 대굴대굴 돌다 보면 살짝쿵 당황과 함께 수면 위가 그렇게 간절할 수 없다. 그럴 때 발목에 있는 리시를 잡고 보드로 올라간다. 하지만 이것이 툭 - 하고 없어지는 순간 오는 멘붕...을 실제로이러나기도 전에 상상하면서 더 겁을 먹는 거 같다. 하지만 솔직히 생각해보면 말리다 죽을 파도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리시가 끊겨도 패닉하지 않고 누가 도와줄때까지 소금물에 둥둥 떠있으면 된다. 리시 끊길 걱정하다 재미있는 파도 다 놓친 내가 참 어이없다. 어차피 산지 두달 밖이 안됐는디. - 다나의 페북에서

 

다나의 글은 내가 쓸 수 없는 글이다. 관찰하고 분석하고 가정하고 확인하고 내 머리는 항상 100가지의 다른 주제로 가득차있다. 다나는 꼴리는 하나에 집중하고 본질적이고 단순해서 좋다.


아무튼 그렇게 9개월 바다와 살던 다나는 나에게 '서핑이 섹스보다 좋아'라는 명언을 남기고, 매일 1000원짜리 짬뿌리 (인도네시아 로컬 음식)을 먹고 버텼지만, 퇴직금과 모아둔 돈을 다 쓰게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회사에서 정말 일하기 싫었던 어느날, 나는 다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일 시작안했으면, 돈은 어떡하고 있어? 안 불안해?"


"어 난 괜찮아. 그냥 서핑가고 싶을 뿐이야. 우리나라만큼 중고장터가 잘되어있는데가 없어~ 내놓으면 금방 팔려. 통장 잔고가 0원이었는데, 얼마전에 팔 수 있는 거 이것저것 다 파니까 한 120만원은 생겼어~ 엄마 집에서 자고 밥먹고 밖에 나가서는 일주일에 2만원정도 밖에 안써서 괜차나. 그리고 통장에 한 500만원있을 때가 최고조로 불안했던 것 같아. 오히려 한 100만원 있으니까 마음이 편해 ㅎㅎㅎ"


내 머리는 항상 미래를 생각한다.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나는 어떻게 거기에 맞춰야 하는지, 회사는 언제 그만두고, 다음엔 뭘할지, 내일은 어떡하고 내년에는 어떡할지. 다나는 항상 나에게 '너 꼴리는 대로 해~' 라고 말한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즐기면서 하면 더 잘할 것 같다고. 사람이든 일이든 취미든,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일지 모른다.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고 잘 되는 걸 하고 싶기 때문에. 뭔가가 좋아지기 전에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게 옳은지 그른지, 이래도 되는지 안되는지, 생각이 많기 때문에 단순하게 마음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과 계산의 함정에 빠지면 온전히 현재를 살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것은 '현재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 어제는 지나갔기에 바꿀 수 없고,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일찍 신년 다짐을 하면, 2017년은 좀 더 꼴리는 대로 살아봐야지. 그리고 내가 아는 확실한 한가지는 결심과 행동이지 않는가? 어차피 모든 고민들은 일단 꼴리는 대로 결정을 하고 행동하고 나면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다쓰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난 또 지금의 행복을 내년으로 미뤘다. 앨리스 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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