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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일기
by Alice in wonderland Feb 24. 2017

지금 아니면 언제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는 좋아하는 언니가 있다. 인생이 내 야망껏 안풀릴 때, 언니에게 카카오톡 전화를 한다. 언니는 현재도 그 누구보다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더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자기를 채찍질하기 때문이다. 저번에 통화를 했을 때 언니의 호된 채찍질은 실리콘밸리의 미션으로 사는 (mission driven) 사람들과의 비교였다. 구글 본사에서 일하면서도 일을 지루해 하며 세상을 바꿔야한다고 설파하고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니는 무던히도 '나도 미친 듯 행복한 일, 세상을 바꾸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타트업을 우러러보는 실리콘밸리에서 전통적인 대기업에 일하고 있는 언니는 그것이 또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변화가 빠른 곳에서 프로세스가 느린 회사에 다니니까. 같이 맞장구를 치며 우리는 세상을 언제 바꾸냐고 수다를 떤 지 어언 한달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카톡을 보냈다.


나: "언니 ㅋㅋㅋㅋㅋㅋ ㅅㅂ 잘지내요?"

언니: "와 죽겠다잉 잘지내는가 앨리스"


나는 언니에게 아직도 같은 회사에 있냐고 물어보았다. 언니는 "난 못나간다잉 목줄 묶여서"라고 대답을 했다.근데 그 말을 하는 언니는 예전보다 덜 초조해보였다. 실제로 마음도 편안하다고 했다. 한달 전 언니와 통화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그 때 언니는 당장 내일이라도 회사를 뛰쳐나가 언니의 염원이었던 사회적 기업을 만들 기세였는데! 뭐가 바뀌었을까?


"도날드가 H1 비자의 연봉 기준을 바꾸고 사인 전이야. 난 이 회사 나가면 미국에서 일하는 비자문제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딱 붙어 있어야 해."


내가 좋아하는 오쇼는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재난이 닥치면 그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게 된다. 삶은 늘 부서지기 쉽고, 모든 사람들이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상적인 삶에서 너무 쉽게 잠들기 때문에, 그대는 현실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대는 계속 꿈을 꾸고, 미래에 다가올 아름다운 것들을 상상한다. 하지만 위험이 임박하면, 미래나 내일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대에게는 오직 그 순간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다.


  따라서 재난이 닥치면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런 순간은 세상에 그 어떤 새로운 것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대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도록 만들어줄 뿐이다. 그런 순간이 그대를 일깨운다. 이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미쳐버릴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대는 깨어날 수 있다.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것은 진실이지만, 세상에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어제 혹은 내일 안에서 살아간다.  



Mindfullness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지금 현재를 살라'인데, 나를 현재를 살게 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고 재난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예전에 헤드헌팅을 할 때, 호주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오일&가스 엔지니어링 전문가 분의 이력서를 찾고 전화를 걸었다. 아주 좋은 이력서였다. 오일을 생산하는 오너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한국 회사에서만 일했다면 갖기 어려웠을 경험들을 갖고 있었다. 이런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을 한국 대기업들은 굉장히 탐낸다. 왜냐하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영역으로 사업의 밸류체인을 올리려면 결국 외국의 선진사들의 경험이 필요한데, 외국인은 국내 기업문화에 적응하고 의사소통하는데에 아무래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분의 이력은 분명 한국 대기업에서 모셔갈만한 이력서였다. 이런 사람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인터뷰를 보내는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 채용팀이 그분이 있는 곳으로 만나러 와서 식사를 하며 관계를 다지는 자리를 마련해주면 된다.


나: "한국의 XX회사에서 정말 관심있어 할거에요. 혹시 대화라도 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분: "한국 회사는 제 연봉 못 맞춰줍니다."

나: "아 그런데, 요새 아시겠지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가려고 정말 그룹차원에서 신사업을 준비하고 밀어주고 있어요. 어쩌구 저쩌구."

그분: "그거 안될거에요. 왜냐면..."


안그래도 무뚝뚝한 목소리여서 긴장되었는데, 완전 단칼이었다. 그래도 나의 목표는 이분을 저녁식사 자리로 보내는 것이었다. 정말 좋은 인재라면 회사에서는 이분을 알고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회사에 진절머리가 나고 문화가 아무리 싫다한 들,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알게 모를 짠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분도 시큰둥한 목소리로 벌써 한시간 째, 왜 한국회사들이 그 신사업에서 망할 수 밖에 없는지 설명을 해주고 계시지 않은가!


나: "그러면 회사는 조인 안하시는 걸로 하셔도 괜찮아요. 그런데 한국 회사에서 사람들이 호주로 가는데, 혹시 식사라도 같이 한끼 해주시면 어떨까요? 저에게 지금 해주셨던 얘기를 그분들이 필요로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성사된 저녁이었다. 나중에 식사 자리에 있던 인사담당자를 통해 말을 들으니, 그 자리에 나갔던 한국회사 부장님들은 이 분의 건빵진 태도에 처음에는 팔장을 끼고 허리를 뒤로 젖히고 '그래 얼마나 말하는지 들어나 보자'라는 태도로 임하셨다가, 그분의 수려하고 논리정연한 말과 업계에 대한 혜안이 나오니까 팔짱을 풀고 점점 식탁으로 몸을 기대더니, 이내 "선생님! 그러면 어떡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비록 그분을 회사로 모셔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 사람의 삶에 대해서 들으면서 모두 느끼는 바가 많았던 저녁식사였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그 분의 삶이란 어떤 것이냐면, 이분이 호주로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마켓이 한창 안좋아졌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오일&가스 산업이란게 업황을 많이 타는 업계라서 워낙 계약직도 많고, 프로젝트 베이스의 채용도 많다. 그런데 이 분이 호주에 있었던 초반에 업황이 많이 나빴던 것이다. 더구나 산유국 국적의 사람들이 주도하는 이 업계에서 한국에서 온 외국인 엔지니어는 비즈니스가 좋지 않을 때 참 쉽게 자르기 좋은 존재였다. 그리고 외국인은 워킹 비자를 스폰서해주는 회사에서 일자리를 잃으면 비자가 없어서 나가야 하는 신세다. 그래서 그 때 이 분이 간신히 기회를 잡아서 일했던 회사의 계약서는 6시간 해고통보였다. 6시간 해고 통보!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해고를 할 때,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최소한 약 한달정도는 기간을 주고 통보를 한다. 그렇지만 이분이 했던 일은 언제든 회사가 해고통보를 하면 6시간만에 짐싸서 나가야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말그대로 언제 짤릴지 모르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을 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순간에, 그 하루에 온전해졌을것이다. 그건 거의 정신 수양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그런 삶을 거치고 나니 이 분이 그렇게 내공이 탄탄한 분이 되었던 것이다.


위기와 재난은 우리를 현재에 집중하게 도와준다. 그리고 현재에 온전히 있으면 엄청난 힘이 생기거나, 평안해진다. 지금 마음이 힘든 것은 아직 닥치지 않은 위기와 재난을, 미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난이 막상 닥치면 어떻게든 살 것이다. 그리고 그 재난을 극복하면 우리는 더 성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진리는 기다리지 말고 무엇을 하든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즐기라는 것 밖에 없다. 아직 미래를 '걱정'하는 단계라면 크게 똥된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사실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쁠게 없는 상태일 수 있다. 이 마음으로 나는 내일 출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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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의 저자 앨리스입니다. eBook 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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