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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일기
by Alice in wonderland Aug 06. 2017

How was your weekend?

싱가폴 직장인의 소소한 8월 첫째주 주말 

"Do you have any plan for this weekend? (주말에 뭐할거야?)"


다국적, 다인종이 섞여 일하고 있는 이곳 싱가폴의 싱글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말을 재미나게 보내야할 것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만히 있어도 나를 귀찮게 해줄 불알친구, 가족들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여 공휴일이라고 껴있다면 단 하루의 휴가라도 레버리지를 하기 위해 인근 나라로 바삐 휴가 계획을 세운다. 소비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생각보다 돈이 안모여서 철저히 텅장을 조사해 보니 범인은 1위 집값, 2위 여행비로 밝혀졌을 정도이니까. 그래서 오피스에서 동료들과의 대화는 금요일엔 "주말에 뭐할거야?"로 끝나서, 월요일에 "주말에 뭐했어?"로 시작된다. 요새 승진아닌 승진을 하게 되어, 담당 마켓이 한국에서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으로 늘어나게 되며 졸지에 진정한! APAC ABM으로 거듭나는 바람에 글을 쓸 시간도, 그보다 더욱더 쓸 재료도 동이나 브런치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새 이야기 껀수가 생기기 전까지 아무 말도 안할 수는 없기에,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소한 이번주말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금요일 저녁 8시: 전 회사 동료의 집 루프탑에서 야구 경기 관람을 핑계로 한 수다모임

뭐야 너네 집 옥상 너무 좋잖아...

주말에 싱가폴에는 "우리집에 놀러와" 모임이 이곳 저곳에 많다. 어떤 사람들은 몇 주 전에 계획을 해서 페이스북 이벤트를 만들고 치밀하게 초대장을 보내고 참석할 수 있는 인원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기도 하고, 이번 금요일 저녁에 있었던 일처럼 그날 저녁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포테이토칩과 나초 몇봉다리에 맥주 한박스와 이메일, 메신저 한통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우리집에 놀러와 이벤트가 한국에 비해 유독 많은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크게 네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우린 독립하여 집세를 내고 살고 있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서 친구들을 잔뜩 불러와서 파티를 하긴 좀 불편하잖아. 근데 여기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직장인들은 방을 빌렸든, 플랫을 통채로 빌렸든 독립적인 자기 공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이벤트가 많다. 실제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싱가폴 친구들은 이런 이벤트를 주최를 거의 안한다. 


둘째, 많은 주거 공간이 이런 먹고 파티를 할 공간을 갖추고 있다.

이런 자기만의 수퍼 나이스한 루프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정부아파트인 HDB가 아닌 콘도에는 대부분 수영장과 그 옆에 BBQ공간, function room을 구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파티는 이런 BBQ핏 + 수영장을 끼고 이루어진다. 


셋째, 음식 만들기가 쉽다. 

숯불과 고기, 빵, 야채, 술만 있으면 별다른 준비가 필요없다. 한국 집들이 할때처럼 음식을 재우고, 반죽하고, 준비하고 손이 가야하는 음식들이 아니라서 개최자의 부담이 덜하다.


넷째, 우리는 외롭다.

위에도 썼지만, 가족과 친한 친구들로부터 떠나 새로운 나라에서 덩그러니 시작하는 삶이라 좀 더 적극적으로 친구를 찾아 나서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보니 미국에 이런 BBQ 문화, 이웃사촌 알고지내는 문화, 사교문화가 발달한 것도 그곳이 이민자의 땅이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데에 익숙해진다.  



옆집의 벽을 스크린삼아 프로젝터로 보는 야구중개는 화면은 선명했지만 참, 재미없었다. 어느새 집주인만 야구를 보고 나머지 사람들은 밤새 수다를 떠는 거다. 더운 나라지만 밤에 불어오는 바람은 신선했다. 


토요일 오전 11시30분: 늦잠, 간단한 아점, 그리고 노래 부르기

커텐을 치고 깜깜하게 하면 해가 중천에 떠도 모르고 잘 수 있다. 눈이 조금 일찍 떠져도 주중에 늦잠을 얼마나 자고 싶을까를 생각하며 늘어지게 잤다. 간단히 계란과 콩으로 아점을 먹고, 감자와 노래를 부른다. 감자가 코드를 검색하고 기타를 치면, 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내 몫이다. 힘차게 노래를 불러도 아직 옆집에 항의가 없는걸 봐서는 방음이 아주 좋거나, 내가 노래를 잘하거나 둘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감자는 나에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노래들을 "ah, tune! (아 좋은노래!)"이라고 하며 가르쳐주는데, 이 노래는 정말 특별했다. 


Belinda Carlisle의 Heaven Is a Place on Earth. 가사를 보고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이 터졌다. 내가 하도 잘 감동받고 맨날 울어서 감자는 이제 내가 울어도 담담하다.

Ooh, baby, do you know what that's wo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They say in heaven, love comes first
We'll make heaven a place on earth
Ooh, heaven is a place on earth

...

In this world we're just beginning
To understand the miracle of living
Baby, I was afraid before
But I'm not afraid anymore


천국은 지금 내가 있는 이 지구에 있고, 그리고 천국에서는 사랑이 우선이야.
우린 이곳을 천국처럼 만들거야.
우리는 이제 막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기적같은지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베이비, 예전에는 난 두려웠지만 지금은 더이상 두렵지 않아.  


이 중에서도 날 가장 많이 울렸던 부분은 'They say in heaven, love comes first'였다. 워낙 잘 감동받고 랜덤하게 결심하지만, 이것이 내가 정말 살고 싶은 삶이다. 답은 사랑이다. 언젠가 때가 오면 사랑이 부족한 곳으로 가 그곳의 사람들이 더욱 이곳을 천국처럼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삶을 살아야지. 


토요일 오후 3시: 명상

명상의 효능에 대해 지난 5년간 귀가 따갑도록 듣고난 후에야 비로소 명상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구루네 아슈람에서 명상을 할 때 "3, 2, 1 명상시작" 이렇게 안하고 종을 세번쳐서 명상의 시작과 끝을 알리곤 했는데, 우연히 방문한 인도네시아 고물상 집에서 구루가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한 종을 찾았다. 티벳 승려들이 명상할 때 사용하는 종이라고 했다. 한동안 먼지가 뽀얗게 쌓이도록 두다가 얼마전에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종을 올리고 막대로 종을 치면 청아한 종소리가 나고, 막대기로 입구주위를 둥굴게 문지르면 보울이 진동하며 우우우우웅하는 소리를 낸다. 그걸 계속 듣다가 눈을 감는 것이다. 


이렇게 명상을 30분 하고 나면 뻥 좀 보태서 이메일도 잘써진다. 


토요일 오후 4시: 스카이프 캐치업 with 사이드 프로젝트 팀

지금으로부터 일년 전 출판이 결정났을 때, 나는 '혹시 책이 너무 잘팔려서 일을 그만둬야만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진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고민을 한적이 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대학교 4학년 1학기에 혹시 지원한 모든 회사에 붙으면 괜히 나중에 못가서 미안할까봐 5개 회사만 지원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개망상이었다. 그때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책을 출판할 때 너의 가장 큰 이득은 인세가 아니고, 너의 글을 통해 너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와줄 사람들이란다."라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사람 중에 순위권에 오르는 이를 꼽으라면 단연 주뇽씨가 되시겠다. 실리콘벨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주뇽씨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는데, 내 브런치 글을 보고 연락을 줘서 싱가폴에 왔을 때 만나게 된 케이스이다. 그는 그동안 알뜰살뜰하게 훌륭한 엔지니어들을 모아 언젠가 사업, 혹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 그룹에 내가 끼게 되었고, 우리는 매 주말 스카이프로 커넥트를 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일의 진행 상황을 체크한다. 이 네명은 각각 고프로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아마존 본사의 개발자, 개발자 백그라운드의 프린스턴의 뇌과학 박사님과... 나로 이루어져있는데 내가 이 팀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인간미라는 것을 이번 주말에 깨달았다. 내가 이 똑띠들과 현실세계의 커넥션이다. 이 팀에 인간미, 인류애를 더하는 것이 나의 소명인 것이다. 관세음보살. 


그들은 한국어임에도 자주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는데, 주뇽씨가 친절하게 대화 내용을 정리해준다. 우리 같이 세상을 이롭게 하자.  


토요일 저녁 7시: 감자네 축구팀 BBQ 파티

토요일 저녁은 또다른 BBQ 파티가 있었다. 감자네 축구팀 리그 우승기념으로 다같이 모여서 축하 바베큐 파티를 한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감자에게 '진보 사회주의'특강을 듣고 계신 두분 되시겠다. 논쟁은 2시간이 넘도록 지속되었고 빨간 모자쓴 애는 나중에 뿔나서 모자를 벗을 정도였다. 


UPS의 마케팅 VP와 지금은 넘쳐나는 물량으로 격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앞으로 아마존이 물류에 진출하면 어떨지 고민이라는 얘기도 나누고, 23살의 국제관계를 전공한 독일 친구와 이 전공으로 참 이곳에서 직업을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눴다. 


그래도 이번 BBQ에서 가장 마음이 잘 맞았던 애는 국적을 물어보니 Isle of Man에서 왔다고 답한 Sam이었다. 난 생전 듣도보도 못한 나라라 송구하게, 그게 어드메 있는 나라냐고 정중하게 물어봤다. 나중에 알고보니 영국에 속해있는 주인데, 스코틀랜드처럼 독립을 원했으나 끝내 하나의 나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영국주였다. 아마 그의 여권은 영국여권이겠지만 그는 자기는 Isle of Man 국민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creative director로 디지털 광고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지만, 과거에 다양한 나라에서 스타트업도 만들고 다양한 산업에 근무했던 그는 온 몸에 자기와 관련있는 나라와 그 나라에서 자기가 배운 것들, 혹은 영감을 받은 가치들을 문신으로 새겨 갖고 있었다. 


Ikigai: 내가 살아가는 이유, 존재의 이유, 내가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를 뜻하는 일본의 컨셉인데, 아마 한국어로 소명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한 컨셉을 잘 몰라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밴다이어그램이 나왔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배웠다고 한다.

JA: 덴마크에서 일할 때 배운건데, 덴마크어로 JA는 YES라고 한다. 어떤 선택의 상황, 기회가 왔을 때 항상 YES맨의 모자를 쓰고 YES를 하자, 기회와 변화에 Open minded로 살자는 정신을 배우고 싶어서 새겼다고 한다. 


3 legs: Isle of Man, 얘가 온 나라의 국기에 있는 문양이다. 그리고 의미는 Isle of Man의 모토이기도 한, "Whichever way you throw me, I shall stand. (당신이 나를 어떻게 내던지든, 나는 일어설것이다.)"라고 했다. 아, 이 모토 정말 멋져. 그래서 세개의 다리구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Isle of Man에서 온 나라 사람들과 역사를 얘기하다보면 강대국 옆에서 얻어 터지면서 끝까지 나라를 지켜냈던 국민성에서 공감대가 형성될때가 많다.  



그렇게 지나간 8월 첫째주의 주말, 좋았다. 

magazine 앨리스의 일기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의 저자 앨리스입니다. eBook 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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