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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Oct 21. 2017

"너한테 실망이야"라는 말이 가장 싫었어.

"I am dissapointed at you. (너한테 실망이야.)" 


갑자기 가슴에 뭔가 무거운게 툭 얹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농담인걸 알면서도. 



"베입. 농담이야~ 너가 저 말 제일 듣기 싫어해서 일부러 말한거야." 


큰 두려움 중 하나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이란 걸 최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실망했다고 하면, 혹시 뭘 잘못하면 마음이 너무 불편해요. 그래서인지 그 어떤 말보다 저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제 표정이 숨길 수 없이 굳어진대요. 대다수처럼 다른 사람의 인정을 갈구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불안정한 자아를 갖고 있는 건 알았지만, 남자친구가 농담으로 실망이라고 말한 것에 조차 반응할정도로 아직도 형편없을 줄은 몰랐죠.



몇년 전 클라이언트로부터 컴플레인을 받았던 적이 한번 있어요. 그때 클라이언트가 "좀, 뭘 모르시면 빠져있으세요."라고 했던 것 같아요. 책상 앞에서 엉엉울며 좀 더 잘했을걸, 내가 왜그랬을까 자책하며 친한 언니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을때 언니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이상하네. 넌 왜 그 사람이 널 비난한것보다 더 심하게 너 스스로를 비난해? 자기 방어는 일차적인 본능같은건데, 그 사람이 널 비난할 때, 너는 왜 그 비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가. 가장 먼저나와야 하는 반응은  널 비난한 그 사람을 욕하는게 더 맞지 않아?"


그 이후,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부당하게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잡곤 했어요. 그렇지만 아직도 가끔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 표정이 굳고 심장이 두근두근대는건 여전했죠. 


그래서 스승님에게 물어보기로 했어요. 




"왜 저는 다른 사람이 저에게 실망했다고 하는데에 그토록 예민할까요?"


제가 물었고 스승님이 답했어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지. 짐작은 가지만, 일단 너의 어린 시절 얘기부터 해보자." 


30분정도 어릴 때의 기억들을 말했고, 스승님은 맞장구를 쳐주며 들어주었어요. 어린 시절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제가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은, 저는 원하는 것을 얻어낼 줄 아는 어린아이였단거죠. 왜 어릴땐, 어른들에게 좋게보이면 각종 혜택들이 주어지잖아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고 넉넉한 집은 아니었기 때문에 땡깡을 부리기보단 요령있는 아이였단 것을 강조했어요. 


그리고 그가 질문했습니다.



"5살의 아니, 3살의 어린 너를 머릿속에 떠올려보렴. 3살의 너는 그 어린 소녀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니? 그 아이는 즐겁게 웃고 있니? "      



이렇게 느끼는 게 저만은 아닐꺼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나라의 여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브랜딩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소비자로서의 그녀들만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들을 많이합니다. 제가 브랜딩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에요. 그녀의 일기를 보기도 하고, 그녀의 집에 방문해서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삶을 관찰하거든요. 그리고 다양한 나라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런 분석을 하기때문에 거시적으로 문화권, 심지어 나라별로도 확연히 다른 그녀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요. 


한국 여성들의 삶은 그 중에서도 가장 격정적이고, 안타깝고, 매혹적이에요. 또 제가 속한 문화기 때문에 이걸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서 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많은 그녀들의 모습 중, 제 눈에 가장 두드러졌던 부분은 이거에요. 


"She wants to live her own life however she's living with many hats and she is expected and expects herself to be good at everything."

 

그녀들은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지만, 그녀에게는 주어진 역할이 너무 많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다 잘해내길 기대받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자기의 역할과 자신의 가치를 일치시키죠. 중국의 그녀는 1인 1자녀에서 자라온 내가 모든 것의 1번인 공주이고, 조화를 중시하는 일본 여성들이 삶에 밸런스가 무너지면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슈퍼우먼이에요. 좋은 아내, 좋은 딸, 좋은 엄마, 유능한 직원, 유능한 파트너... 그리고 어떤 것이 좋고 유능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답은 존재하죠. 그리고 그 정해진 답 안에 자신을 맞추느라, 그 모든 역할을 성실히 잘 해내려고 발버둥치느라 정작 역할들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거나, 삶의 중심을 자신으로 가져오면서 나머지 역할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그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는거에요. 혹은 그녀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죠. 가장 내 편이어야할 내가, 나에게 더 혹독한거에요. 


역할은 우리가 갖는 여러개의 껍데기중 하나에요. 껍데기 몇개가 좋지 않다고해서 그것이 그녀의 본질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해할 수는 없는데 사람들은 그 껍데기로 판단하고, 이내 그녀도 스스로의 가치를 껍데기로 판단해버리고 마는거에요. 역할 수행여부를 나 자신의 가치와 연결시키면 안돼요. 일을 더럽게 못하는 직원이어도, 프로젝트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어도, 남편의 밥을 차려주지 않아도, 아이가 유기농제품을 쓰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니까요. 



스승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매일 스스로에게 애정을 주는 시간을 가져보렴. 너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받아줘야해. 너가 너의 부모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좋겠구나(Reparent myself). 네 안의 작은 소녀는 너의 사랑을 필요로한단다. 너는 너 스스로를 가장 사랑해야해. 관세음보살이라고 알고있니? 그녀의 마음과 너의 마음은 하나란다. 그렇기 때문에 너의 진짜 자신, 진아(眞我)가 가장 아름답고, 다른 사람에게 잘보이려 꾸며낸 행동은 자연스러운 너보다 항상 못할수 밖에 없단다. 


출근할때나 퇴근할 때, 지하철안에서라던가, 너가 잠시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그 두살짜리 어린아이를 품안에 안아 무릎에 앉혀놓고 그 아이를 안아줘. 그리고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이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렴. 가슴에 손을 올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사랑해라고 말하고 숨을 내쉬며 모두 괜찮아라고 말하는거야. 너는 부다처럼 강한 사람이란다. 괜찮아. 이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전하는거야.


네가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즐겁게 하려고 계속 노력한다면,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지만, 너는 너의 본성대로 살 수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알고싶다고 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은 본성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야. 얕은 욕망과 원함은 듣지 말고, 정말 너의 깊은 마음의 소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야한단다. 너의 유일무이한 그 마음은 무엇을 원하고 있니? 넌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그저 좋은 직원이 아니야. 너의 진심은 무엇이니? 넌 정말로 무엇을 원하니? 그건 너 스스로가 깊게 살펴봐야할 내용이란다. 스스로의 마음을 듣는것을 시작하렴. 


매일 하루를 보내며, 너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거나, 만족시키기위해 뭔가를 하려하면 그 순간을 눈치채고 일단 멈춰봐. 그리고 그 진실의 순간을 마주봐야해. 'Do I really need to please this person?'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그로인해 나를 좋게 생각하도록 하려는 노력들은 내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의 방해물이 된단다. 일종의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통로 사이에있는 미들맨같은거지. 그리고 그런 미들맨들이 많을수록, 내 스스로의 진짜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나와 내 마음 사이에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해. 


이는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말란 얘기가 아니야. 자신을 보기 전에 남을 먼저 의식하지 말란 얘기지.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서 부처를 본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부처를 발견하기 때문에 남을 해할 수 없거든."



많은 일들을 잘해내려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시작인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역할을 '잘'해내려 하는 것, 다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려고 무리하는 것(I like to please other people),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을 의식적으로 멈추려고 합니다. 그건 부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래서 내가 온전히 나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자신이 가치없다고 느낄테고, 인정을 받아봐야 그 고양된 감정은 어차피 오래가지 못하죠. 계속 또 인정을 받아야만 나의 가치가 유지될테니까요. 삶의 중심을 역할들이 아닌 그 역할을 수행하는 유일무이한 나를 중심으로 가져와야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실망과 비난은 나를 감정적으로 흔들어놓지 않을 거에요. 그것이 부당한 것이면 무시할 수 있고, 그것이 내 역할을 더 잘 수행하는데에 타당한 것이면 역할 행동을 수정하면 될거에요. 그렇게 간단한거에요. 


You, yourself, as much as anybody in the entire universe, deserve your love and affection.

그래서 저는 "너 스스로는 온 우주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너의 사랑과 애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라는 부다의 말을 현재에 살라는 말만큼이나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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