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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Dec 28. 2017

암스테르담의 자유는 게이클럽에 있더라

"Why so serious face?"


45유로씩이나 주고 한시간동안 혼자 섹스쇼를 멀뚱멀뚱이 보고 나와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를 걷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Don't worry. I am gay."


경계하지 말라는 의미로 그가 말했다. 마침 혼자 홍등가 관광도 질렸겠다, 아저씨에게 재밌는 게이바가 없냐고 물어봤다. 아저씨는 마침 자기가 게이바에 가는 길이라고 같이 가자고 했고 나는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와이낫이란 마음으로 오케이했다. 몇년 전 런던의 게이클럽 헤븐에서 천국을 맛본 후 나는 게이들의 밤문화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젊고 잘생기고 정말 매력적인 런던의 게이를 친구로 둔 덕분에 런던 소호에서 공주 대접을 받았던 적이 있었으니. 그때 기억이 떠올라, 아저씨에게 "게이클럽은 런던이 최고죠."라고 했는데, 암스테르담 토박이라는 아저씨는 대흥분을 하며 "오오오오 다아r링, 전 세계의 게이클럽을 가보았지만 최고는 암스테르담이야. 내가 오늘 다 데려가줄게!"라고 Fire에서 공민지처럼 말했다. 내가 저 끄으읏까지 데려갈게 팔로팔로미.

그리하여 홍등가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인 40대 중반 게이아저씨 댄과의 게이바/클럽 크롤이 시작되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채 나는 아저씨와 함께 걸었다. 아름다운 암스테르담의 골목길을 걷다가 우리는 어떤 바에 도착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너무 붐비지 않는 바였다.


"다아아r링, 내 친구들을 소개시켜줄게. 스카이와 탐."

20대 중반처럼 보이는 두명의 귀여운 남자애들이었다.  


"따라와. 2층으로 올라가자."


특이하게 바의 입구가 아닌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코트를 벗어 맡기는 카운터가 있었고 거기서 코트를 받아주는 사람이 길을 막았다.


"댄, 숙녀분은 안되는거 알잖아요."

아저씨는 능구렁이처럼 웃어넘긴다.


"얘는 나와 함께 왔어. 괜찮아~ 우린 그냥 스모킹룸에만 있을거야. 괜찮지? 올라간다?"


그러면서 나를 계단으로 밀었다. 쫄보에다가 싱가폴의 법과 규율대로 사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정말 가도 되냐고 우물쭈물하면서 등떠밀려 겨우 올라갔다. 계단 위에는 아주 어두웠고 미로처럼 되어있었다. 그리고 앞에 있은 문을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눈에 들어온건 격하게 키스를 하고계시는 두분.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 살짝 비켜주셨다. 각종 스모킹을 할 수 있도록 환기가 되는 작은 공간이었다. 아저씨가 말했다.


"여기 있는 이 다른 문으로 나가면 다크룸이야. 이 바에서는 다크룸에는 여자들은 출입을 못하게 하고있지. 걱정마! 조금있다가 가는 클럽에서는 너도 다크룸에 들어갈 수 있어."


다크룸이 무엇인고 하니, 게이클럽이나 바에 있는 별도의 공간으로, 그 형태는 다양한데 대부분 옷가게의 탈의실처럼 생긴 룸들이 여러개 있고 그 안에서 각종 성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80년대부터 암스테르담에는 많았는데 예전에는 20개정도 클럽과 바에 다크룸이 있었고 요새는 많이 없어져 6개의 클럽과 바에만 다크룸이 있다고. 원래 나는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나 또 아저씨와 친구들이 손잡고 데려가는 바람에 나는 한바탕 다크룸을 구경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탈의실에 검은 가죽 해먹과 체인이 매달려있는 것을 상상하시면 되시겠다. 대화를 하면 그들의 오픈됨의 차원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이건 공개적으로 차마 쓸수가 없어서 자체 센서를 해야지 ^.^...


댄은 다소 이른 시각이지만 나에게 다크룸과 더 많은 자유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더 기다릴 수 없었는지 클럽 처치 (church) 로 출발하자고 재촉했다. 런던은 헤븐이고 암스테르담은 교회다 . 게이클럽의 이름이 다 왜이런 것인가...


댄과 함께 걸었던 암스테르담의 골목길


클럽을 가는 길에 댄과 많은 얘기를 했다. 댄은 나의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나에게 말을 걸었고 같이 있으면 느껴지는 에너지가 좋다고 했다. 그리고 아까 친구들과 같이 말하면서도 모두가 느꼈지만 내가 자기를 비롯해 사람들이나 이 모든 상황을 전혀 judge하지 않아서 좋다고. 그래서 모두가 편하게 나를 그룹으로 받아줄 수 있었다고 말이다.


댄이 말했다.

"난 정말 삶을 사랑해!"


(그 뒤에 그는 또한 '고추는 정말 아름다워...'라고도 했지만 이건 더 언급하지 말자..)

감각에 대한 찬양, 사랑과 관계에 대한 찬양,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그가 진심으로 삶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지하게 의미를 찾으며 산다기보다는 삶이 주는 모든 달콤한 쥬스를 마시며 그 맛에 감탄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가 왜 그렇게 행복한지 아냐고 물어봤고, 나는 대답했다.


"Let me guess, let me guess!!


아마 너가 처음 게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니 그보단 처음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 챘을 때, 넌 스스로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했을거야. '난 누구지?', '나는 왜 태어난 거지?', '왜 나는 남들같지 않지? 남들과 난 뭐가 다르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가 누군지에 대한 자아 정체성을 찾는 질문을 하는데, 넌 아마 평범한 사람들보다 다섯배는 더 많이 그 질문을 던졌을거야."


댄이 말했다.

"삼십배는 더 했을걸."


내가 이어갔다.

"자기가 누군지를 알고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야. 그런데, 넌 그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한 스텝을 더 나아갔어. 어느 순간, 너는 니가 일반적인 대다수의 사람과는 다르다는 사실, 즉 니가 게이라는 사실을 'accept', 인정하고 받아들였을거야. 대다수의 사람들은 큰 결함이 없으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주지 못할 수 있는 너의 진실한 부분을 스스로 받아들인거야."


댄은 들떠서 잠깐 자리에 멈춘 상태로 말했다.


"맞아! Acceptance is the key! 날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난 내가 해방되는 것을 느꼈어. 난 자유로웠어."



 어느새 우리는 클럽 처치에 도착했다.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입구에서 그는 말했다.


"암스테르담의 자유의 클래스를 보여줄게."



클럽 처치의 입구에 붙어있었던 오늘의 이벤트 안내. 다른 포스터는 더 대단했는데, 자체검열.



입구부터 대단했다. 입장료를 받고 코트를 받는 사람들이 삼각팬티만 입고있었다. 그들은 그 어떤 클럽의 직원보다 친절했고 다정했다. 술한잔 잡을 시간도 없이 자유가 눈을 덮쳤다.


내 눈앞에 수많은 덜렁이들이 펼쳐졌다. 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홀딱 벗고있거나, 그부분에 구멍이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니 거기에 구멍을 낼거면 바지는 왜입는건데?) 근데 야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정신차릴 틈도없이 나는 댄의 손에 이끌려 다크룸을 구경가야했으니... 이곳의 다크룸은 훨씬 커다란 공간이었다.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인기척을 느낄 수는 있었다. 그리고 다크룸 옆에는 역시 탈의실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탈의실 사이에는 주먹이 오갈만한 구멍이 있었다. Guess what.


댄은 나에게, "손을 넣어보렴!^^"이라고 했는데 아주 격하게 사양했다. 댄은 내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딜 용기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꾸 부축였다. 나는 그 상황을 피하려고 나는 고추보다 가슴을 만지겠다고 했다가 그를 졸지에 레즈비언 윙맨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 후에 댄은 사람들의 미묘한 바디랭기쥐를 읽는 법이나, 사람들의 접근을 유도하는 방법들을 알려줬는데 난 이 모든것이 굉장히 본능적이고 동물적이라 감탄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공연이었는데 핑크의 'so what'으로 첫 무대를 열었다. 그리고 감탄했다. 난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무대를 본적이 없다. So what은 이날 생명을 얻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를 살면서 크고 작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며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혹는 나도 판단을 받을까 두려워하며 산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그 시선과 이유없는 비난과 비판의 도마에 놓여진다. 그들은 그저 자기 취향대로 사랑하고 행동할 뿐인데, 그 삶을 다른 사람들이 판단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하는 성역이었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나로 존재하고 다른 사람들에 'give a zero fuck' 할 수 있는 곳. 내가 입고싶어서 브라를 입고 진한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쓰지만, 수염은 존나 멋지게 길러서 남긴다. So what? 이곳의 공연에는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자유와 해방의 에너지가 있었다.


난 댄에게 소리쳤다.


 "I feel full of lives!! This stage is filled with the energy of life!!!"



이 삶에서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다. 이곳의 에너지는 그 유한한 시간을 자각하고 현재의 감각에 충실하는 것 같은 강력함이 있었다. 이어진 노래는 don't cry for me Argentina. 그녀는 멋지게 봉춤을 추었는데 그걸 못찍은게 아쉽다. 그리고 we are the world노래와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던져주었다.


댄이 나에게 말했다.

"넌 정말 최고야! You are my best friend, ever!"


댄이 어딘가에서 즐겁게 놀고 있을 동안 난 슬쩍 클럽에서 빠져나와 새벽 3시, 비가 오는 암스테르담 거리를 걸었다. 베스트 프렌드이긴 하지만 우린 그 어떤 연락처도 교환하지 않았고 사실 댄은 가명이고 그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게 중요한가? 이 멋진 삶 속에서 우리는 우연히 교차했었고 그는 나에게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려준 멋진 안내자였다.


암스테르담, 넌 정말 자유롭구나 그래서 삶은 아름답구나.



+ 마지막으로 묵었던 호텔의 로비에 있었던 Great customer service award 트로피를 보라. 이 나라의 가벼움과 유쾌함이 너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한테 실망이야"라는 말이 가장 싫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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