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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에서 일하기
by Alice in wonderland Oct 07. 2017

나만의 스타일

비운의 천재 화가 반 고흐를 너무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그 친구도 반 고흐의 그림뿐만 아니라 고흐의 삶까지도 가슴 아파하며 좋아했죠. 자살하기 위해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지만, 총알이 심장에서 빗나가 즉사하지 못하고 며칠을 더 고통속에 있다가 숨을 거두며 나는 어떻게 죽는 것에도 서투냐며 슬프게 죽은 고흐를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다고 했었어요. 고흐의 많은 작품들 속에서 그 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고흐의 작품은 Absinthe가 그려진 작품이에요. 이 그림은 고흐의 열정을 상징하는 작품같대요. 

 반 고흐는 노란색을 사랑했던 화가였어요. Absinthe는 알콜도수가 40에서 70도까지 되는 독한 술인데, 이 술을 잔뜩 마시면 고흐의 세상은 노란색으로 물들었다고해요. 몸과 정신의 건강이 안좋았던 고흐에게 의사는 계속해서 압셍트를 마시면 죽을 수다고 있다고 경고했지만, 고흐는 노란색에 미친 열정을 끊을 수 없었듯 이 압셍트도 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미화된 알콜 중독자의 얘기일 수도 있지만요 후후) 그래서 고흐를 사랑했던 그 친구에게 이 그림은 반고흐의 열정의 상징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별과 그림, 사진, 이야기를 좋아하던 아티스트 기질이 다분한 이 친구는 대개의 아티스트들이 그러하듯 세상을 자기 꼴리는 대로 살았죠. 한국에서 정상적인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이렇게 자기 꼴리는대로 시험 성적과 수능에 연연하지 않기 어려운데, 이 친구는 정말 연연하지 않았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 미술과 지구과학만을 자발적으로 공부했을 뿐 나머지 과목은 놓아버렸죠. 


이 친구는 미대로 진학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 과정에서 정규적으로 미술 공부를 하지 않은 자기는 성격으로보나 뭐로보나 한국 미대보다 미국 미대에 합격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파악하고 미국 미대를 준비했대요. 한국 미대는 정확하게 잘 그린 작품,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을 기준으로 심사하지만 미국의 미대는 '이 사람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느냐'로 판단한다고 해요. 


한국의 미대 실기시험에서 작품을 고르는 심사위원들

그래서 한 5개내지 6개의 작품을 골라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포트폴리오라는게 자기가 그린 작품중 가장 잘그린 작품 6개를 내는게 아니고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어요. 왜냐면 이 포트폴리오의 핵심은 '나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느냐를 입증해야하기 때문이에요. 여러 사람의 다양한 그림들을 늘어놔놓고, 여기서 이 대여섯개의 그림은 한 사람의 작품일것이라고 느껴지게 만들어야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의 작품은 다른 사람의 작품들에 비해 독창적이며 재밌지만, 동시에 자기 작품들안에서는 특정 컨셉과 어떤 일관성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대요.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매주 미술 수업을 들으면서도 '도대체 그래서 중요한게 뭐야?!'에 대한 대답을 알 수 없었는데, 이 친구에게서 그림에서 중요한것은 '나만의 독창적 스타일'임을 한번에 배웠어요. 


그 이후로 제가 미술관에 가면 이 작가의 스타일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관람을 해요. 길을 가다보면 '아, 이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만한 작품들이 눈에 띄고, 그럼 어김없이 그들은 고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인기 스타 작가인거죠. 


루이뷔통과 콜라보를 했을만큼 요새 핫한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들을 보면,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망정 '아, 그작가꺼!'라는 느낌을 주죠. 


Bruno Catalano라는 프랑스 작가는 동상을 만드는데, 항상 중간에가 뻥뚫리고 큰 손가방을 든 조금 쓸쓸해보이는 사람들을 만들어요. 전 세계 어디서든 그의 작품을 만나면, '아, 그 중간에 뻥뚫린 동상을 만드는 작가!'라고 일관성을 찾아낼 수 있어요. 



친구가 제출했던 작품 중 저에게 정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었요. 제출해야할 작품의 주제가 '무거움을 표현하라'였대요. 무거움을 표현하라... 어떤 사람은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할머니를 그리고, 어떤 사람은 무거운 돌을 지고 있는 인부를 그렸대요. 




어떻게 무거움을 표현할까요?









그 친구는 '무거움'이란걸 어떻게 표현할까 계속 생각을 하다가, 그 순간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대요. '아, 창작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크고 하얀 캔버스 앞에 앉아서 이 새 하얀 도화지에 점을 하나 찍으려는 그 순간, 이 순간이 너무 무겁다.' 라고요. 그래서 그걸 미술 선생님께 말하고 연필 (혹은 붓)을 잡아서 캔버스에 점을 하나 찍으려는 그 동작을 비디오로 녹화했다고 해요.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던 그친구는 결국 미국의 유명한 미대에 합격했어요. 그렇지만 진학하지 않았어요. 자기는 절대 고흐가 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대요. 미대를 졸업해도 아주 소수의 작가들만 물질적 성공을 거두는데 자기는 고흐처럼 미술에 미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대요. 그리고는 결국 다른 나라의 경영대로 진학해버리죠. 먹고는 살아야 한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크고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많이 있었음에도 그는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그런 회사들에 취직을 하지 않았어요. 한동안 여기저기 스타트업에서 마케팅을 하던 친구의 소식이 들려온건 얼마전이에요. 요새 엄청 핫한 앱중에 하나의 창업멤버라고 하더라고요. 그 앱을 보고, 프로덕트에 담긴 스토리를 읽으면서 제가 가장 부러웠던 건, 그 앱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성공했단 것이 아니였어요. 


그 프로덕트가 너무 얘다운거에요.


정말 그 제품을 보는 순간, 이건 정말 얘가 만든거구나... 할 수 있을 만큼 너무도 얘다운 제품이었어요. 프로덕트도, 브랜드 스토리도, 그 모든게요. 그게 너무너무 부러운거에요... 


큰 회사에서 브랜딩을 하다보면 모든 브랜드에는 브랜드 가이드라인이란것이 있잖아요. 브랜드 피라미드라고 브랜드의 성격을 정의한 것이라든가, 브랜드 가이드라인처럼 좀 더 비쥬얼에 치중한 것등 결국 브랜드는 이 브랜드를 다른 사람들이 살짝만 보고도 '아, 이건 코카콜라의 보틀', '이건 티파니의 민트색!'이라고 알아챌만한 스타일을 'own' 내가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것이죠. 우리 브랜드의 캐릭터, 브랜드 스토리, 브랜드의 색 이 모든 것들은 마케터들이 사람들에게 우리 브랜드를 알릴 때 가이드라인이 되어줍니다. 브랜딩을 잘하는 회사들은 이런 모든 factor들을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녹아내죠. 


물론 이런게 큰 회사가 정말 세계적인 레벨에서의 브랜드를 만들려면 필수적이에요.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프레임을 갖춘 회사들이 존경스럽기도 하죠. 마켓셰어를 고려할만큼 큰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논리적인 접근을 하게 됩니다. 그게 당연한거에요. 정말 이곳에서는 '소비자가 그렇게 생각하는지'에서 출발하고, 모든것이 소비자에서 시작해서 소비자에서 끝나죠. 또 워낙 회사가 굉장히 민주적이어서 모두의 동의를 얻은 결정을 중시하죠. 보스가 정해버리면 끝날 일을, 모든 사람의 인풋을 받고 논리적인 피드백 세션을 거치고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고려한 후에 결정을 합니다. 그렇게 똑똑한 여러 사람의 최선을 다해서 내놓은 제품은 마켓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확률이 그렇지 않은쪽보다 높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브랜드와 사랑에 빠지는 건 안되더라고요. 


이건 정말 개인적인 직업적 선호인데요, 큰 회사의 높은 직함을 가진 브랜드 빌더가 되기보다는 나의 개성을 표현하며 자연스럽게 나만의 스타일이 녹아들어간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좀 더 제가 하고 싶은 방향인 것 같아요. 전략적 마케터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를 만드는 아티스트말이에요. 제품과 서비스에 한 사람의 삶이 느껴지는 그런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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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의 저자 앨리스입니다. eBook 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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