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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에서 일하기
by Alice in wonderland Nov 07. 2017

베트남 출장에서 생각하다

  제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곳은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가장 좋은 호텔 중 하나인 인터콘티넨탈의 자그마치, 클럽 라운지입니다. 바쁘게 누군가를 착취하고, 혹은 알뜰살뜰하게 착취당하는 사람이든 다른 사람들은 흔히 올 수 없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라고 에고에 뽕을 맞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저는 기꺼이 뽕을 맞으며 아침에 눈이 떠지자마자 간지의 여운을 느끼기 위해 랩탑을 가지고 올라온 것이지요. 여기에 계신 나이 지긋하신 남성 비즈니스맨 여러분들은 젊고 아리따운 이 여성이 빠른 성공을 거두고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후후후 알게뭡니까. 제가 브런치에 일기를 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테죠. 이번 주에 저는 베트남에 2박 3일, 그리고 바로 태국으로 2박 3일 출장을 오게 되었어요. 이 모든 프리스티지는 회사가 준 것입니다. 직원들이 출장가면 안전하고 일 열심히 잘하라고 좋은 비행기 태워주고 좋은 호텔에 재워줍니다. 검소한 (혹은 검소해야만 했던) 우리 가족은 한번도 호텔에서 묵어본적이 없기에, 저는 취업전에는 도대체 누가 하루에 30 - 40만원씩이나 하는 호텔에서 자나 궁금했었어요. 회사님, 고맙습니다.



  아무튼, 원래 제가 가장 잘 아는 나라인 한국과 일본만 커버하다가 몇달 전 커버하는 마켓이 추가되어서 저는 비로서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마켓을 커버하는 글로벌 브랜드 빌더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바빴어요. 필리핀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로 뽑힌 연예인과 티비 광고 촬영도 했고, 비즈니스의 장기적 성장방안과 현 상태에 대해 파악하고 전략을 세우고, 각 국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브랜드 비전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소비자들에 대해 이해해야 했으니까요.  


소비자의 이해는 소비재 기업의 펀더멘털이에요. 전 세계 여성 가임인구, 적어도 전 세계의 1/5 혹은 1/4가까이 되는 인구가 매달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동안 피를 흘리는 그 단순한 문제의 솔루션이 뭐가 그렇게 다를까 싶지만, 그게 아시아 안에서만 봐도 너무 달라요.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국가는 탬폰이 주류고, 정서상 탬폰이 꺼려지는 다수의 아시아 문화권 국가 내에서도, 어떤 나라의 소비자들은 오버나이트, 긴 생리대를 왜 써야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어떤 나라는 얇은 생리대는 아무리 흡수력이 좋다고 증명을 해도 불안해서 두꺼운 생리대 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거나, 어떤 나라는 순면감촉을 어떤 나라는 다소 꺼끌꺼끌 하지만 흡수가 빠른 메쉬를 선호하죠. 제가 새로운 나라들을 하면서 가장 신선(?)했던 건,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를 쓰고 물에 빨고 버린다는 것이었어요. 종교적인 이유인데, 어떤이들은 악마에게 피를 먹이지 않기 위해서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무슬림들이 항상 몸과 의복을 청결하게 유지하라고 하는 데서 나왔다고도 해요. 그래서 어떤 무슬림 여성들은 빨기 쉬운 생리대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이런건 그건 그 나라의 소비자와 그 소비자들이 주로쓰는 제품들을 통해서 실제로 보고 알아내야해요. 특히 그 나라에서 자라지 않은 마케터들은 이런 문화권의 특수한, 그렇지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비자들의 행동양식이 익숙치 않기때문에 더욱더 오픈마인드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봐야하죠.


베트남을 마케팅하기 위해서 싱가폴에 앉아서 인터넷만 찾아볼 수는 없으니, 이런 중요한 정보들을 모으고 마켓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출장을 온것입니다. 아침에 도착해서 '트레이드 체크'라고 부르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하는 다양한 채널을 방문해서 경쟁사 동향과, 가격, 선호하는 브랜드, 제품의 종류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 두 보스는 따로 약속이 있어서 나가고 저와 앞으로 가깝게 일하게 될 세일즈 전략 담당자와 둘이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케팅 전략으로 비즈니스 전반에 관한 의사 결정을 하고, 세일즈 전략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유통 전략을 담당하는거에요. 제 물건이 아무리 좋고 가격이 적당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매력적이어도 소비자가 구매를 하는 그 스팟에 제 물건이 없거나,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곳에 배치가 되거나 한다면 아무 소용없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책임지는 일을 하는 그녀와 저는 앞으로 아주 가깝게 일해야 하는 파트너입니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나서 호주에서 일하다가 이번에 싱가폴로 오게 된 그녀는 아직 여성용품쪽 경험이 없기 때문에 차로 이동하는 중 마켓 현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어요. 다양한 생리대의 종류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데 그녀가 물었습니다.


"긴 생리대는 왜 쓰는거에요?"


저는 직감했습니다.


'아, 그녀는 역시 탬폰유저군.'


그래서 나중에 둘이 저녁을 먹을 때, (아, 저녁먹으면서도 생리대 얘기해요... ㅠㅠ), 물어봤어요.


"뿅뿅이, 탬폰 유저인가요? 아까 길이가 긴건 왜 필요하냐고 해서 생각했어요."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피임약을 먹고 있어서, 생리를 안한지 몇년 되었어요."


언니, 그거 잘못 복용하는거 같은데? 그거 일주일정도 쉬어줘야하잖아?


제가 피임약을 먹어도 일주일 정도는 쉬고 생리를 하고 난 후 다음 사이클을 시작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일주일을 쉬고 생리를 한 후 다시 피임약을 복용하는 건 기본적으로 에스트로겐 성분으로 되어 있는 피임약인데, 내가 먹는건 테스토스테론 성분으로 되어 있는 피임약이에요. 에스트로겐은 유방암이나 각종 여성 암을 유발하는데 관련되어 있는 호르몬이라 꺼림직하더라고요. 테스토스테론으로 되어있는 이 피임약은 복용하면 몸을 임신한 상태로 인식하게 해서 피임도 되고 그걸 먹는 동안은 생리도 안하게 되요. 아주 간혹 약이 잘 안맞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동안 별 문제가 없어서 몇년째 복용하고 있어요. 약이 귀찮으면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는 작은 장치를 자궁 가까이에 장착할 수도 있어요. 아주 미세한 양의 테스토스테론만 분비하기 때문에 몸 전체가 아닌 자궁에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다른 문제는 없어요. 영국에서 제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이걸 이용하고 있는데, 호주에 오니까 그 약 처방전을 쉽게 구할 수 없고, 산부인과 의사랑 상담하라는거에요! 영국에서는 GP (general doctor)에게서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전 영국에서 약을 사다가 계속 먹고 있어요."



예전에 소비자의 행동 분석을 하는 동료와 함께 여성용품의 What's next innovation? 에 대해서 토론한 적이 있었어요. 저에게 다음 혁신은 어디서 올 것 같냐고 그 친구가 질문을 했었거든요. 지금 현재 나와있는 제품 중에 우리가 흔히 아는 펄프나 젤 타입의 흡수체 말고 플렉스 메모리폼을 사용하는 제품도 있고, 순면커버 제품도 있고, 월경컵도 있지만, 패드가 필요없는 생리 팬티도 나왔거든요. 특수한 팬티라서 그냥 하루종일 입고 있다가 빨면 되는거에요.  (아 저는 참고로 월경컵에 굉장히 회의적이었어요. 다들 저에게 생리대가 받을 타격을 물어봤지만, 소비자의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보통 쉬운것이 아니거든요. 그 습관을 바꿀 정도로 다른 형태의 솔루션을 제공하려면 그것이 정말 코딱지를 파는 것만큼 쉬워야하는데 패드를 쓰던 사람이 질 안에 뭔가를 넣는 형태로 넘어가는 건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요.)


그런데 이리 저리 생각해보다가 저는 생리대 업계를 뒤흔드는 혁신은 생리대 제조업체에서 나올 것이 아니라 헬스케어 산업에서 나올거라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생리의 궁극적인 솔루션은 이미 배 아플거 다 아프고, 기분 구릴거 다 구리고 나온 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가 아니고, 아예 생리를 안하면 되는거잖아요? 혼자 그 결론에 다다르고 생리대 제조 업체들이 두려워 해야할 것은 경쟁사가 아니고, 경쟁사가 아닌 다른 산업의 Problem solver들이구나라고 이 기특한 생각에 뿌듯해하면서 지금의 변화 속도라면 생각보다 그 순간이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미 우리 회사 동료가 기술의 진보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을 줄은 몰랐던겁니다.


예전에는 소비자의 격차는 그래봐야, 프리미엄 생리대와 휴지정도 였을거에요. 지금은 물론 아직도 휴지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생리를 안하기 위해 기술의 도움을 받습니다. 아직도 한동안은 생리대와 탬폰이 생리기간의 가장 주된 솔루션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영국같은 마켓에서 여성용품은 인플레이션에 의해 가격이 올라가는 정도로 마켓이 성장하지만, 마켓 페네트레이션(penetration) 즉, 생리대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다고해요. 기존의 솔루션인 탬폰이나 생리대가 아닌 기타 등등의 솔루션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때문이죠.



지금까지 시대가 큰 소비시장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큰 플레이어들이 주도하는 시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솔루션이 더욱 다양해지면서 규모의 경제가 가능했던 플레이어들이 다양해진 소비자들의 니즈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모든 것들이 언번들 (unbundle)되며 많은 신생 비즈니스가 생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다시 필드로 나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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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의 저자 앨리스입니다. eBook 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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