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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Jun 03. 2018

미래의 시어머니, 한국 방문하다

어쩌면 유럽에서 선방할지 모르는 사업아이템

두근대는 심장을 난 간신히 진정시키며 택시에 올랐다. 난 지금 제주도까지 와서 원하던 음식을 못먹은 한을 풀기 위해 가는 중이었다. 해산물, 튀김, 양념된 그 어떤 음식도 안먹는 필립네 엄마와 함께 한국을 여행하느라 제주에서 속시원하게 먹고 싶은 것을 못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그냥 그 둘을 호텔 수영장에 버려두고 혼자 뛰쳐나가 우리나라 1호 해남이 운영한다는 일통이반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성게알과 보말죽 주세요."



행여 배가 불러질까 물도 술도 안먹고 바지 버튼 풀고 겸허하게 먹었다. 이게 두사람 양이라는걸 알고있었다. 소화제가 필요할 것이라는 걸. 그래도 좋았다. 진짜 세상 맛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맛을 만들어낸거지? 성게알 짱팬인 나에게 일통이반의 성게알과 보말죽 조합은 내가 2018년에 먹었던 음식 중 제일 맛있었고, 음식값 43,000원은 가장 값쓰게 쓰여진 돈이었다. 진심 최고. 숟가락에 미역을 올리고 나물을 올리고 톳을 올리고 절인고추를 올린다음에 성게알을 올리고 참기름을 세 젓가락 떠묻히고 와사비 소스를 한 젓가락 찍어 한입에 넣으면 비린내 하나 안나는 고소하고 깊은 성게맛에 바다의 향이 입안에 퍼지는데 그 자칫 비릴 수 있는걸 고추가 잡아준다. 그걸 좀 입에서 섞다가 보말죽을 한숟가락 떠서 같이 먹는다. 정말이지... 난 감자와 스테이크만 먹을 수 있는 호텔에 있는 나의 미래의 남편과 시어머니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필립은 중국에서 6년, 싱가폴에서 4년을 살면서 아시아 음식에 대한 입맛을 길렀기에 괜찮았다. 그러나 필립네 어머니 클레어가 한국에 와서 제일 맛나게 먹은 것은 파리바게트의 샌드위치... 파리바게트가 한국 곳곳에 없었다면 아마 그녀는 영양실조에 걸렸을 수도 있다. 그녀가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한식, 중식, 일식은 대개 못먹었다. 해산물도, 튀김도 못먹는다. 서양식 음식이라고해서 '우리나라에도 피자나 파스타가 맛있는 곳은 많잖아!'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들에게 피자와 파스타는 이탈리아 음식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녀가 먹을 수 있는 서양식은 무엇인가? 스테이크, 시저 샐러드, 닭 스테이크, 연어스테이크 따위였다. 고향에 가면 온갖 구수한 것을 먹으리라 들떠 있던 나에게 이는 불행이었으며, 이 음식도 저 음식도 입에 안맞는 클레어에게도 불행이었다. 


여행은 쉽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먹는 것과 쇼핑을 빼고나니, 봄날의 따뜻한 햇볕외에는 도무지 클레어가 좋아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부산에서 비마저 왔다. 비오는 부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우리는 전국 최대 규모의 찜질방 신세계 스파랜드를 가게 되었던 것이다. 70세이지만 나보다 우월한 체력을 자랑하는 클레어는 더블린의 동네 스포츠센터의 단골이다. 요가, 필라테스 등 다양한 클래스를 매일 참석하고, 클래스가 끝나면 습식 사우나에서 따뜻한 기운을 쐬는 것이 그녀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다. 다만 더블린의 사우나와 온탕은 남녀가 같이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리고 사우나가 끝나면 칸막이로 나눠져있는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찜질방으로 가는 길에 클레어는 이런 말을 했었다.


"가끔 샤워를 끝나고 수건으로 몸을 가리지 않고, 그냥 나체로 락커룸을 활보하는 여자들이 있어. 정말이지, 앨리스 넌 그러지 않지? 난 잘 모르겠어. 몸매 자랑하려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러는지 말야."


클레어는 이제 곧 수십명의 나체쇼를 보게 될 차였다... 본인 포함.


아니나 다를까, 여자 탈의실과 목욕탕에서 펼쳐진 광경에 클레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곳은 만민평등주의 나체쇼의 현장이었다. 어릴때부터 엄마와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간 목욕탕에 익숙해서 우리는 그런 광경이 대수롭지 않지만, 모든 샤워실은 칸막이로 가려져서 최대한 서로 몸을 안보여주면서 자란 서양인들에게는 이것은 굉장히 이국적인 풍경일것이다. 그래도 이것이 해산물을 먹는 것보다는 덜 곤욕스러웠던지 그녀는 이내 목욕탕 문화에 수긍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찜질복을 입고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서 필립을 만났다.


이후에 찜질방은 그녀에게 멋진 신세계였다. 만국 공통 나이많은 여성들의 행복은 뜨겁게 몸을 지지는데에 있나보다. 9개에 이르는 방을 우리는 모두 들어가보며 신나게 지졌다. 식혜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녀는 망고 쉐이크와 딸기 요거트 쉐이크를 컵 바닥이 뚫릴까봐 걱정될 정도로 좋아하며 마셨다. 찜질방 투어가 거의 끝났을 무렵, 필립이 제안을 했다.


"코리안 스크럽을 받아볼래 엄마?"


각종 스파와 마사지를 좋아하는 클레어는 필립이의 나이스한 단어에 솔깃하여 흔쾌히 응했다. 그렇고 그런 스크럽인줄 알았을터이다. 우리는 예약을 위해 각각 남자 탈의실과 여자 탈의실로 흩어졌다.


메뉴를 쭉 보니, 20분짜리 때밀이부터 75분짜리 때밀이 + 아로마 오일 마사지 + 머리감기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난 한 40분짜리를 생각했는데 클레어의 의중을 물어보니, 아무래도 풀코스 경험이 궁금하다고 해서 둘다 75분 풀코스로 예약을 하고 찜질방으로 돌아왔다. 필립은 좀 더 시간이 걸려서 30분 정도 후에 돌아왔는데, 예약이 없어서 벌써 20분짜리 때밀이를 받고 왔다고 한다. 그렇게 필립이가 때밀이 먼저 경험을 공유했다.


"완전히 벗고 침대 위에 누워야해. 타월을 손에 끼고 온몸을 구석구석 미는데, 허벅지 안쪽에 할때 그가 내 불알을 잡고 들었어 (he grabbed my balls and lifted)."   


 


우리가 예약한 차례가 돌아왔고, 클레어는 걱정 반 기대 반을 하고 있는게 보였다.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클레어는 나에게 세신사에게 꼭 'down there'는 수건으로 덮어주기만 해주시라고 부탁해줄것을 당부했다. 우리는 예약시간 20분 전에 가서 욕탕에서 때를 뿔리고 있었다. 우리의 이름을 불르는 소리가 들렸고, 클레어가 먼저 세신사님의 손에 붙들려 세신실로 들어갔다. 내가 통역을 혹시 해줘야하나 싶어서 같이 갈려고 하니까 세신사님은 세상 쿨하게 "제가 알아서 잘 해드릴게."라고 하셨다. 


15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내 차례가 되어서 세신실로 들어가니, 클레어는 벌써 몸을 뒤집고 있었다. 몸을 뒤집으면서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 동안 내가 제대로 씻지 않았나봐...(I don't think I washed properly)"


70년을 매일 잘 씻고 살아왔다고 생각한 할머니에게 뼈아픈 자기성찰의 기회를 준 세신사님은 무심하게 계속 클레어에게 물을 끼얹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옆에 있으면 통역을 해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주 어릴때 말고 처음받는 세신인지라 이게 어떤 건지 잊고 있었다. 그 동안의 내가 받았던 마사지가 "차갑습니다~"로 시작하는 정중하고 조심스럽고 점잖은 마사지였다면 이곳의 세신과 마사지는 마치 이불 빨래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하나의 이불이었다. 밟히고 내동쳐지는 느낌. 깍쟁이같은 클레어가 당황하면 도와줄라고 하는데 내가 정신이 없었다. 팔을 밀고 팔을 훅 던진다거나, 동작이 절도가 있다. 처음에는 빨개벗고 누워있는게 부끄러웠는데 절도있는 그 동작과 프로세스 앞에 겸허해지는 것이었다. 


옆에서는 이따금 클레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웁스 우웁스." 나중에 클레어가 말하길 이게 너무 사적인곳까지 손이 오거나 아플때 그런 소리를 냈는데, 이미 자기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 있는 신속함을 보여서 뭐 말을 할 기회도 없었다고.


와, 근데 너무 시원했다. 때 밀리는 것도 시원하고, 뜨거운 물을 끼얹을때도 시원하고, 마사지할때도 시원했고, 머리감겨주실때도 시원했다. 정말 75분간의 종합예술이었다. 


먼저 시작한 클레어가 먼저 끝나고 나가는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더풀, 판타스틱! You did really great job!"


그 목소리는 진심이엇다.


밖에로 나와서는 클레어는 입에 침이 마르게 세신사님을 칭찬했다. 


"그 스태프는 자기가 뭘 하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  그녀가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때 단 한번도 주저함이 없었어.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딴짓하지않고,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뭘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모든걸 끌고나갔어. 나는 나의 스파를 아는 사람이란 말이지. 하와이에서도, 시드니에서도, 베이징에서도, 스위스에서도 아주 많은 곳에서 스파 서비스를 받았어. 그런데 여기는 정말 탑랭크야. 난 단연코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겠어. 나 한 1스톤은 가벼워진 것 같다. 정말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너무 훌륭한 서비스였어."


세상에는 다양한 마사지 종류가 있는데, 물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마사지는 없다. 난 그건 되게 유니크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 스크럽, 마사지같은 지압까지 섞여서 이건 총체적인 만족감을 준다. 나와 클레어는 세신에 반한 나머지 더블린에 때밀이를 열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세신 학원을 알아보았다. 뭘 배워야 할테니까. 그러다가 이런 좋은 기사를 찾았다.



박씨의 손은 이후로도 한참 동안 몸 구석구석에서 춤을 추듯 미끄러졌다. 손놀림이 빠르지 않은 수강생에게 박씨가 조언했다.

" 몸의 굴곡대로 따라 미는 게 중요해요. 내가 원하는 사람만 손님으로 오는 건 아니에요. 장관 부인도 오고, 낼모레 돌아가실 분도 와요. 내가 끌고 가야지, 수줍게 말하면 안돼요. '뒤로 도세요. 옆으로 하세요' 당당하게 말하세요 내가 몸을 가지고 있잖아."


아, 애초에 교육에서도 이렇게 가르치시는구나. "She/He knows exactly what she/he is doing"이라는 말은 프로페셔널들에게 칭찬이자 중요한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세신을 해주셨던 분의 물에 뿐 손에서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어찌 이 나라에는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많으실까. 


그리하여 그녀의 한국 방문을 통털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때밀이었다는 결론. 누가 나대신 때밀이를 고급화해서 유럽에 데려가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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