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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May 10. 2018

나도 언젠가 바지에 똥을 쌀 수 있을까?

정체성을 찾고 있어요

저는 똥에 대한 페티쉬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때부터 성인이 된 후까지도 똥 얘기가 그렇게 웃기고, 영어를 잘하게해주면 똥이라도 먹겠다고 글도 썼고, 얼마나 돈을 주면 똥을 먹을거냐는 질문을 좋아하거든요. (요새는 프로세스가 많은 기업에서 시달리고 단련되다보니, 얼마만큼의 똥을 먹어야 하느냐, 건조된 바삭바삭한걸 먹어도 괜찮느냐 이런 디테일을 묻기도 합니다만...)


여기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똥쟁이가 있습니다. 권오철 작가님입니다. 권오철 사진 작가님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천체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이시래요.


저는 감각이 꽤 둔해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예술적 감각이 풍부한편이 아니에요. 시각적 자극보다는 언어적 자극, 그 중에서도 문체의 아름다운 것보다는 생각의 자극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는 것보다도,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것인데 그걸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거에 무릎치는 걸 좋아한달까요. 그래서 작품 자체보다도 그 작품의 의미, 스토리에 더 많은 감동을 받아요. 제가 이분을 좋아하게 된 것은 4년 전에 읽었던 이분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어요. 



바로 이 기사에요.


기사의 메인 포인트는 이분이 3년간의 노력끝에 울릉도에서 독도 일출 사진을 찍었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분은 울릉도에서 독도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셨는데, 그 두 섬사이의 거리가 92km로 가시거리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20 - 30km를 훨씬 넘어서는 거리인거죠. 세종실록기록에는 사람들이 그걸 볼 수 있다고 했고, 일본 사람들은 안된다고 했는데, 이분은 방법을 찾아낸거에요. 


"해는 지구와 1억5천만㎞나 떨어져 있는 데도 보이잖아요. 바로 그 해 앞에 물체가 있으면 아무리 멀어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독도가 해 앞에 위치하는 그 순간을 포착한 거죠. 날씨와 고도와 온도와 습도가 모두 충족되는 바로 그 결정적 순간, 투우의 용어를 빌면 ‘진실의 순간’을 포착하게 된 겁니다." - 인터뷰 중 


그런데 제가 감동받았던 부분은 이게 아니었어요. 


인터뷰어: 촬영에 성공한 순간의 기분은 정말 굉장했겠네요.

권오철 작가님: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한 순간이었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바지에 똥을 싸고 말았어요. 괄약근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몰아의 경지에 들어갔던 겁니다.”


...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어요?

이분이 인터뷰 글을 읽다보면 굉장히 냉철한 분이시거든요. 전공도 공대를 나오신 분이에요. 그런데 똥을 지릴만큼 황홀함을 살아서 느껴볼 수 있다는 건, 그 몰아의 경지라는 건 도대체 어떤것일지... 제가 살면서 들었던 황홀경을 표현한 모든 것들 중 가장 파워풀한 표현이었어요. 




저는 요새 부쩍 아트, 아티스트 타령을 하고있어요. 빈틈없이 짜여진 계획이나 절차와 프로세스는 저를 숨막히게 하는데, 효율성과 논리로 무장한 큰 회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까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나의 생각과 개성을 표현하는걸 좋아했는데, 그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혹은 계획과 논리로 제품을 만들지만, 정말 하고 싶은건 그게 서비스든 물건이든 그걸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거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대학교때 은사님을 얼마전 뵈었는데, 논리와 데이터로 무장해야하는 경영학 교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음악을 사랑하여 가곡을 자곡해서 음반을 내시는 분이에요. 교수님께서 예술과 비즈니스의 공통점을 말씀하셨어요. 


예술은 예술을 만드는 아티스트와 그걸 감상하는 사람의 교환과정이고, 비즈니스는 물건/서비스를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교환과정이고, 공통적으로 예술을 잘하고 싶거나 비즈니스를 잘하고 싶으면, 감상자나 소비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명작을 만들어야 한다구요.


"교수님 그러면, 감동은 어떻게 줄 수 있나요?"


라고 여쭈어봤더니, 감동 위계 피라미드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어요. 

비즈니스로 예를 들어보면 이렇대요. 기능성은 이름에서 알려주다시피 기능으로 승부를 보려는 제품이죠. 우리 생리대가 5배 더 흡수가 빠르다고 한다거나, 때가 잘빠져서 2배더 옷이 밝아진다거나 위계단계의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자기 기능은 해야죠. 그리고 한단계 올라가면 감각적 관능성, 즉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제품과 서비스들이 있대요. 이왕이면 다홍치마랄까요. 여기까지 가는 기업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아티스트와 오래가는 브랜드 혹은 팬이 생기는 브랜드의 제품/서비스의 시작은 창작자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것부터 아닐까 싶어요. 제가 예전에 쓴 글에도 있듯이, 좋은 아티스트는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해서, 그 사람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 사람의 스타일이 드러나거든요. 고흐의 그림들은 고흐가 그린 것 같고, 니키 미나즈 노래를 들으면 딱 니키 미나즈 노래같잖아요. 애플 제품들은 딱 애플 제품들 같고, 나이키 광고는 항상 나이키 광고 답죠. 


문제는 현존성입니다. 정체성이 굉장히 뚜렷한 작품이나 제품을 만났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공감을 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도까지 나아가는 거래요. 예시로 디즈니를 들어주셨어요. 디즈니가 감상자의 현존성을 건드린 작품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디즈니랜드를 뽑아주셨어요. 올란도에 있는 디즈니랜드는 현존성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대요. 가족이 다같이 여기를 갔을 때, 부모들은 내가 부모노릇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창궐을 하게 된대요. 그러면서 부모로서의 존재의식을 건드릴 만큼 감동을 주는 곳이라는 거에요. 


* 김효근 교수님의 이런 생각이 더 알고싶으시다면 최근 저술하신 '경영예술'이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다시 권오철 작가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무래도 저는 요새 제 삶에서 저만의 정체성을 찾고, 갈망하는 단계에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권오철 작가님께서 사진도 굉장히 잘 찍으시고, 기교도 많이 있으시겠지만, 저는 이분의 정체성은 사진보다는 별, 우주, 자연이 주는 감동에 대한 애정이 더 핵심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은 그걸 표현하게 해주는 도구인거죠. 인터뷰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면요, 



인터뷰어: 천체사진을 통해 별을 대하게 되면 평범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우주의 모습을 접하게 될 것 같아요. 그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작가님: “우리의 존재 역시 별의 부스러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별과 우리가 같은 ‘오리진’에서 태어난 것이죠. 인간은 별을 딸 수 없으나, 죽음을 통하여 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요. 별은 우리의 고향이죠. 우주의 크기는 그러나 상대적인 거예요. 1천억 개의 별과 은하가 있다 해도 거꾸로 말하면 내 눈에 비치는 게 전부죠. 그것은 내가 인지하는 범위 안에 있다는 거고요.

사실 우주 입장에서 보면 인류 역사, 지구, 개인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예요. 모든 게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중 하나 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론 그렇지 않다는 거죠. 생명체 입장에서는 내가 죽으면 우주가 끝나는 것이니까 그 생명에는 존엄함이 부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어: 별과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이 있겠죠?

작가님: “별은 딸 수가 없으니, 그게 정말 다행이구나 싶어요.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사진으로밖에 못 담으니까요. 그렇게 좋은 사진을 찍어서 갤러리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제 사진뿐만 아니라 세계 천체 사진가들이 자신의 사진을 전시하는 걸 최고의 영예로 여길 정도로 좋은 천체 사진 박물관을 만드는 거죠. 그러면 죽은 뒤에도 별과 함께 영원히 사는 거니까요.”



사실 이분의 정체성은 우주와 별, 자연 그 중에서도 밤하늘에 대한 사랑이고, 그것이 사진이라는 표현 도구와 가장 잘 맞아떨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에서 말씀도 엄청 잘하셨던 것처럼, 그게 글이 될수도 있고, 비디오가 될 수도 있고, 다른게 될 수도 있겠죠. 정말 멋지고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바라옵건데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도 빛나는 정체성이 있으며 언젠가 그것을 찝어내어 그 감동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똥으로 시작했으니 똥으로 마무리하자면, 똥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면, 저는 도서관이나 서점처럼 책이 많은 곳에 가면 똥이 마려웠던 것 같아요. 사실 검색해본적도 있는데요, 저뿐만이 아니더군요. 제가 수천권, 수만권의 많은 책사이에서 느끼는 그 감정은 인류의 시작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의 역사와 사건, 발견들이 가득한 이 지식과 지혜의 공간에서, 무엇부터 집어서 무엇에 대해서 더 알게 될지 신나고 설레서 그런 것 같아요. 여기에 저의 정체성에 대한 힌트가 있을까요? 저도 감동과 전율로 똥을 지릴 그날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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